Archive for the ‘일상의 기록’ Category

일본 방문

Monday, March 3rd, 2014

내일은 학회에 참가하기 위해 5박 6일의 일정으로 도쿄에 간다. 다른 곳과 한국을 오가며 비행기를 갈아타느라 지나친 것을 빼면, 일본에 제대로 가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출발점은 좀  달랐지만, 어쩌다보니 나는 양자군의 표현론이라는 분야에 발을 들여놓게 됐고, 그로 인해 몇몇 일본 수학자들과 인연이 생겨났고, 이런 기회도 갖게 되었다.

호텔방도 예약해주고, 비행기표도 예매해주니 성가신 일도 없이 편하고 좋다. 오전에는 까페에서 커피를 한잔 시켜놓고 내가 얻은 결과에 대한 발표자료를 다듬었는데, 이걸 갖고 한 시간 이야기를 하며 지식을 나누는 것이 초청을 받은 대가로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학부생 시절에 나는 애써 여행할 기회를 찾지 않았다. 나중에 수학자가 되면, 그러한 것들은 자연스럽게 나를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물론 수학자로서의 인생이 벼랑 끝처럼 느껴지는 지금과 같은 날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치 못했지만.

그래도 요 며칠은 무거운 생각을 좀 내려놓고, 비슷한 연구 분야의 동료 수학자들에게 좋은 것들을 좀 많이 배워왔으면 한다. 대학원생 시절과 비교하면 남들이 뭔 얘기를 하는지 알아듣는 빈도가 확실히 늘었다. 이러한 인생의 좋은 때를 스트레스에 짓눌려 날려 보내기엔 좀 아깝지 않은가.

누워서 컴퓨터 쓰기 2

Thursday, February 27th, 2014

누워서 컴퓨터 쓰기의 새 작품

책상은 1200(mm)*600*700 사이즈의  강화유리책상

유리에는 약간 검은색이 들어가 있는데, 문의해 본 결과 수입제품이고 색이 들어있지 않은 것은 없다고 하여, 할 수 없이 선택. 사용해보니 모니터 화면을 보는데는 별 지장이 없다.

키보드를 받치고 있는 것은 프라임디렉트 T3 노트북 받침대. 이걸 위해 주문한 것은 아니었는데, 이렇게 써도 괜찮을 것 같다. 전에 것보다 낫긴 하지만, 키보드의 위치는 여전히 썩 맘에 들지는 않는다. 전보다 손을 하늘로 덜 뻗고, 바닥에 팔꿈치가 닿기에 힘이 덜 든다는 점에서 개선.

책상을 하나 더 쓰기 위해 강화유리를 따로 주문 제작. 이것은 배송을 받아 설치를 한 이후에 다시 포스팅.

서울

Wednesday, February 26th, 2014

창으로 서울대입구역이 내려다 보이는 방. 앞으로 몇 달은 여기서 지내게 되었다.
두 발로 서지 못하고 고향같은 땅을 밟는 마음이 쓰리다.

먼지로 뒤덮여 앞이 보이지 않는 서울의 뿌연 하늘같은 미래를 놓고 패자부활전을 시작한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이 무대에 남을 것인지 내려 갈 것인지 알 수 있겠지.

아픈 몸과 마음을 고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오늘 하루

Friday, March 1st, 2013

낮에는 논문 하나를 저널에 제출했다. 굳이 오늘을 선택한 것은, 오늘과 내일은 나에겐 또 많이 다른 날이어서. 내고나서 올해들어 제출한 논문이 세 개라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두 개는 써놓고 미뤄둔 것을 매듭지은 것이었지만.

밤하늘에 빛나는 별만 좇으며 살아왔는데, 그조차 안개 속에 가려질 때면 마음이 초조해진다. 드넓은 바다에 홀로 둥둥 떠있는 돛단배같다는 생각을 일주일에 열세번은 한다. 도대체 내가 지금 어디쯤 있는지, 육지는 얼마나 먼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살아서 땅을 밟기 위해 힘을 내고 있다. 하루하루 절박한 마음으로.

논문은 욕심을 보태 좀 좋은 저널에 제출했다. 20여년의 세월 동안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에 균열을 냈고, 결과가 아름답다는 것에서 이미 작지 않은 내면의 만족감을 얻었지만, 떠돌이 생활이 견디기 싫어 승부수라는 생각으로 던져 버렸다.

'11개월의 씨름' (2000년 11월 5일) 에서처럼, 이 문제 역시 오랜 시간의 인내와 끈질긴 도전을 필요로 한 것이었다. 다듬어진 논문에선 찾아볼 수 없겠지만, 결정적인 문제의 열쇠를 발견하게 되는 여러 번의 중요한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 중요한 순간 중에선, 어깨가 아파 제대로 앉아 있을 수가 없어, 누워서 볼 수 있도록 한 모니터를 보며, 내가 짠 코드를 실행하여 누운채로 왼손으로 마우스를 클릭하며 실험을 하고 우연한 발견을 했던 그런 때도 있었다. 남의 인정을 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어쨌든 이것은 내가 가진 부족한 재능과 그로인한 모든 결핍까지 끌어모아 만든 내 젊은 시절의 결정이다.

내 궁핍한 날들의 벗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고 싶다. 살아서 다시 만나자.

세상 속으로

Thursday, January 24th, 2013

늘 마음에 오래 전에 옮겨 놓은 디외도네의 한 마디

A mathematician, then, will be defined in what follows as someone who has published the proof of at least one non-trivial theorem.

가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새 논문의 초고가 점차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제야 짓눌린 어깨가 좀 가벼워진다. 세상의 인정과 무관하게, 지금 나는 내가 해낸 것에 만족감을 느낀다.

(악명 높은 E.T. Bell의 글인 만큼 진실인지 의심되지만) 야코비가 했다는 다음과 같은 말도 잘 잊혀지지 않는다.

Young mathematicians ought to be pitched "into the icy water to learn to swim or drown by themselves. Many students put off attempting anything of their own account until they have mastered everything relating to their problem that has been done by others. The result is that but few ever acquire the knack of independent work."
--E.T. Bell, Men of Mathematics (in describing the opinion of Carl Jacobi)

나는 정말로 얼음물에 던져진것 같았고, 수학자가 되기 전에 빠져 죽을 위기의 순간들이 지금까지 계속되었다고 느껴지는데, 그래도 이젠 마침내 수영하는 법을 터득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제부터 시작이지만.

이제는 골방에서 나와 세상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사람을 키우고 싶다. 학생들도 가르치고 싶고, 아이도 키우고 싶다.

세상은 나를 사 가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