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정치’ Category

정운찬과 사회적자본

Friday, November 20th, 2009

사실 내가 사회적자본이라는 개념을 인지하게 된 계기는 정운찬씨의 글을 읽으면서였다. 그 이후에야 나도 관심을 갖고 조금 살펴봤는데, 그동안의 생각을 나름대로 정리를 해보자면 사회적자본을 늘린다는게 결국 규칙을 준수하며, 합의를 장려하고, 이를 통하여 사회의 예측가능성과 구성원들 사이의 장기적 신뢰를 높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러고 나서야 다시 보게 된 것이지만,, 참여정부의 국정원리가 바로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 로서 바로 사회적자본을 겨냥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세종시 원안고수가 반드시 사수해야 할 가치라고 보지는 않는다. 문제가 있으면 고쳐야겠지. 행정비효율 문제는 우려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헌재가 관습헌법으로 깽판놓기 전의 원래 계획으로 돌아가는게 순리에 맞다고 보지만.

지금 정부는 행정도시 정책을 바꾼다고 너무 큰 무리수를 두고 있다. 기업도시고 과학도시건간에 그런게 옳은지 그른지는 일단 둘째치고, 이런 식으로 정부정책이 뒤집히면 당연히 기업들은 일단 투자계획을 요구하는 정부에 바로 거스르기는 힘들어도 눈치보기와 시간끌기 모드로 갈수밖에 없다. 정부가 바뀌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정책을 뒤집어도 되는 것이라면, 지금 정부의 정책은 왜 믿어줘야 되는데? 이런 사회에서 무슨 신뢰가 형성되고 장기투자같은 것이 싹틀수 있을까. 너나할것없이 거위배를 가르는 어리석은 사회가 되어갈 뿐이다.

정운찬씨는 어쩌다가 이런짓하는데 같이 껴서 앞잡이 노릇을 자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세종시가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채워줄 수단으로 단단히 보였나본데, 지금 정말 삼류짓하고 있음을 좀 알았으면 한다. 이런 사람의 글을 통해 '사회적자본'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되었다는게 참으로 민망할 지경이다. 머리가 빈게 아니면 긴장좀 합시다.

이거 보니까 갈수록 가관인데...

‘막가는 세종시…’ 의료단지 선정해 놓고 ‘8배 큰 의료도시’ (김광호·장관순·정혁수, 경향신문, 2009-11-20)

전재희 “의료시티 전혀 몰랐다” 야당 “장관 몰래 추진 말이되나” (이용욱·강병한, 경향신문, 2009-11-20)

이러다가 정말 노빠들과 박근혜의 연대설 나오지 않을까 심히 우려되는 바이다. 복수한답시고...

정치에 대하여

Monday, October 12th, 2009

정치에 대하여 생각한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더욱 뜻 깊고 위대한 일이에요. 좋은 정치를 편다면 몇 천만 국민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으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중에 그만큼 고귀한 게 어딨겠어요? 그래서 다른 직업보다 고양된 심성과 통찰력, 책임, 용기, 희생을 요구해요. 성인의 고귀함이 있는 영역이죠. 근데, 정치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짐승의 비천함이 있어요. 야수적 탐욕도 함께 있고요. 그래서 하루하루가 너무나 괴로워요. 정치를 하려면 국회의원직을 유지해야 하니까 효도잔치 가서 노래하고 초등학교 총동문체육대회 가서 텐트마다 돌며 소주 먹고 하는 거죠. 그런 일을 즐기는 정치인도 있으나 그런 사람은 성인의 고귀함에 도달하기 어려워요. 반면 정치에서 고귀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런 일상이 괴로워요.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기 위해 야수적 탐욕을 상대하며 짐승 같은 비천함을 감수하는 일, 절대 아무나 못하는 거예요. (유시민 인터뷰, 시민광장, 2009-6-10)

나는 저 유시민 장관의 괴로움을 이해한다. 아마 노무현 대통령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서민정책이라고 시장에 종종 가서 사진찍는거 좋아하는 이명박님이 계시는데, 사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기간 이러한 것을 가능하면 피하려 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생색내기 쇼보다는,  정말로 그 사람들을 위해 펼치는 정책이라고 봤기에...

나중에 듣기로는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직후에 봉하마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도, 처음엔 밖으로 나가서 인사하고 그러는 것이 필요한 일일까(가령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고민하면서 좀 망설인 것들이 있다고 안다. 그런 생각을 달라지게 한 것은 그곳에 아이들도 찾아왔다는 것...

한국 정치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문제는 대중들이 옳은 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듣고 싶어 하는 얘기를 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래 문장의 철학자를,  정치인으로 바꿔 읽으면 대략 적절할 것이다.

당신이 철학자가 되고 싶다면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합리적인 정당화와는 무관한 믿음의 세계 속에서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과 어떤 한 사람의 믿음의 세계는 다른 사람의 그것과는 일치하지 않기가 쉽기에, 그 둘 다가 옳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의견은 보통 그들의 마음에 편한 쪽으로 형성된다. 진실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두번째 고려 대상이다.

The first thing to realize, if you wish to become a philosopher, is that most people go through life with a whole world of beliefs that have no sort of rational justification, and that one man's world of beliefs is apt to become incompatible with another man's, so that they cannot both be right. People's opinions are mainly designed to make them feel comfortable; truth, for most people is a secondary consideration.

2p, The Art of Rational Conjecture, The Art of Philosophizing: and Other Essays by Bertrand Russell

http://books.google.co.kr/books?id=oEoi0HnF7j0C&pg=RA1-PA535&dq=russell+The+first+thing+to+realize,+if+you+wish+to+become+a+philosopher&source=gbs_toc_r&cad=7#

좋은 정치가 실현되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기준은 결국 그 조건 아래서 얼마나 옳은 것에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되겠다. 그 불일치가 괴로운 사람들에게 정치란 형벌일 수밖에 없다. 수학이야 말귀를 못알아들으면 못알아듣는 쪽이 부족한 것이라 하면 그만이지만, 정치는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그가 짐승의 비천함을 말하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시험문명

Monday, October 12th, 2009

시험문명 이라는 항목을 작성중이다. 시험을 잘 본다는 것으로, 사회에서 엄청난 특권을 얻는다는 문제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교육개혁부터, 공공부문 개혁, 사법제도, 외교관, 교원임용 등등 많은 부분에 걸쳐 있는 핵심적인 문제이다. 경쟁없는 과소시장의 문제 와도 직결된다.

시험이라는 것으로부터 평가할 수 있는 인간의 자질과 능력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일까?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천년전 한반도에 도입된 '과거제도'라는 그 당시로는 매우 혁신적인 제도에 기반한 문명이 지금껏 지속되어 왔다는 생각이다.

아무튼이러한 화두를 부여잡고, 과거제도에 대한 역사를 탐색하다가 미야자기 이치사다의 책 맨 마지막 페이지에서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1960년대에 쓰여졌다는 것을 고려하니 참으로 놀랍다는 생각이다.

중국의 과거제도는 그 이전에 존재했던 귀족제도의 대안으로 고안되었고, 일본의 학교제도는 봉건제도가 붕괴한 직후 주로 관리양성의 목적으로 설치되었다는 점에서 무언가 공통적인 면을 갖고 있다. 그리고 사회 저변에 근대적인 조건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는 점도 아울러 지적해야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오늘날 일본사회에는 아직도 매우 봉건적이고 전근대적인 요소들이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 특히 노동시장이 협소하기 때문에 종신 고용제가 사회 도처에서 시행되고 있는데, 바로 이점이 입시 지옥을 만들어 낸 사회적 기반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중국 전통시대의 관리는 전형적인 종신 피고용자이다. 관리가 되면 죽을 때까지 그 지위가 보장되는 반면 다른 일로 전업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러한 지위의 획득을 최종 목적으로 하여 과거라는 지난한 시험에 세상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다. 오늘날 일본도 이와 유사한 바가 있다. 종신 고용제이기 때문에 최종 학교의 졸업과 취업이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즉 한번 취직을 하게 되면 그 후로는 전업이 어려울 뿐 아니라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 놓인다. 재무부의 관리가 되면 평생을 재무부에서 보내고, 스미모토 회사에 입사하면 평생 스미모토맨으로 통한다고 하면 일생의 운명은 거의 졸업의 한순간에 정해지게 된다. 이점 과거와 서로 성격이 대단히 비슷하다. 따라서 졸업하고 취직하는데 가장 유리한 대학으로 서로 앞을 다투어 들어가려 한다. 또 그러기 위해서는 그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야 한다. 이리하여 고등학교를 위해서 중학교를 선택하고 중학교를 위해서 초등학교를 선택하며 초등학교를 위해서는 유치원을 선택한다고 하는 일련의 고달픈 경쟁 코스가 어느 사이엔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하여 선택된 한곳으로의 집중, 편재가 시험지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취업의 기회가 많아서 일생을 한 관청, 한 회사에서 보내는 사람이 오히려 이례적이며 심지어 무능력자라고 여겨진다. 이에 반하여 유능한 사람은 여기저기서 스카우트하려는 사람이 오기 때문에 좀더 유리한 조건으로 직위를 바꿀 수가 있다. 만일 이러한 사회 상황이라면 어느 누구도 무리해서까지 특정한 대학에 필사적으로 입학하려고 집착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일본의 시험지옥이라는 사회 현상의 근저에는 봉건제와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종신고용제가 놓여 있고, 이것이 일본 사회에서 진정한 의미의 인격의 자유, 취직의 자유, 고용의 자유를 빼앗고 있다. 이런 사정은 큰 관청, 대기업일수록 심하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곤란하다.
회사는 학교를 갓 졸업한 신입 사원을 뽑을 때 미리 평생 동안 고용할 의도로 충성을 요구한다. 그것은 인간적인 성실이 아니라 봉건적, 몰개성적인 충성이다. 만일 자기 일신상의 이유로 그 회사를 나오게 되면 배신자처럼 대우받게 될 것이다. 만일 훨씬 더 유리한 조건으로 고용하겠다는 고용주가 나타나면 의리나 인정을 내세워 극구 만유하려고 할 것이다. 이는 노동력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인격까지 산 것을 의미한다.
비단 회사만이 아니다. 가장 진보적이라고 하는 대학에서조차 교수를 정년까지 고용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일본사회의 완전한 근대화가 진정으로 시작될 것인가?
학생이라는 신분이 또한 종신 고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힘들게 입학한 학생이므로 조금도 공부를 안해도 졸업 연한까지 어떻게든 재학할 수 있으며 성적이 아무리 나빠도 적당한 선만 유지하고 있으면 졸업이 된다.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학교는 다만 입학하기 위해서 존재하며 거기서 공부하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조차 나온다. 좀더 비판적으로 말하자면 우수한 대학의 실체한 특별히 뛰어난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거기에 모여든 사람들의 우수한 자질에 힘입고 있음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종신고용제란 현실의 사회상황 위에서 발생했음에 틀림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이러한 실태로 놓아두어서는 사회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 현상의 타파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착수하면 좋겠는가? 나는 이것을 실업계에 기대하고 싶다. 왜냐하면 종신 고용제는 사실상 오늘날 일본의 사회 실태로부터 발생한 것이지만 그보다도 거기에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의 봉건적인 사상에 의해 운용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데 가장 실리주의적인 것인 실업계이다. 나는 실업계에서 나름대로 인재 선발 경쟁을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사회적으로 직업의 전환 자체가 별로 이상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기성 관념도 바뀌면서 현실의 불합리성이 점차 개선되어 갈 것이다.
또한 학교측도 단지 입학생을 받아 졸업시키는 것만을 능사로 여겨서는 안된다. 그보다 재학 중에 충분한 공부를 가르쳐 가령 어려운 시험을 치르고 입학한 학생이라도 그 수학 과정을 견뎌내지 못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다시 수학하도록 조처해야 한다. 동시에 충분한 공부를 시키기에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설비와 교수의 확보에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입학의 난관이란 수용 가능한 수의 절대적 부족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아직 전문화되지 않은 중등교육기관인 고등학교에서 나타나는 설비의 부족에 대한 해결책은 앞의 경우와는 약간 방법을 달리한다. 단 그 대답은 극히 간단하다. 원래 교육에 돈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설비가 부족하다는 것은 어쨌든 정치력 부재에 원인이 있다. 또한 그것은 학부모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세상의 부모들은 개인적인 부담, 예를 들면 자녀의 학원 공부 등에 들어가는 비용이라면 얼마든지 감수하지만 전반적인 교육에 대한 투자에는 대개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개인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실로 자기만 잘 되면 좋다는 과거 수험자의 태도와 같다. 결국 수험생의 친형제로서 개인적으로 격려하면서 가정 교사를 붙여주고 참고서를 얼마든지 사주며 수험장까지 따라갈 정도의 눈물나는 노력을 하지만 실은 이러한 부모들이야말로 의외로 시험지옥의 제조원인 것은 아닐까? 그들이 이러한 노력을 하면 할수록 시험지옥은 심하게 될 뿐이다. 그러나 만약 진실로 그들이 교육에 열심이라면 좀더 교육을 중요시하는 국회의원, 대통령을 선출하면 일단 결말이 날 것으로 생각한다.

중국의 시험지옥 과거(중국학술사상 15), 241p

  • 미야자키 이치사다,  청년사, 2001-04-24

경쟁시장, 신분이동, 교육개혁, 사회안전망 문제가 단순한 개혁 차원이 아닌 새로운 문명으로의 전환임을 발견한다.

정도전과 이성계의 만남 중에서

Saturday, October 3rd, 2009

http://ko.wikipedia.org/wiki/정도전

1375년(우왕 1) 원나라 사신이 왔을 때 원나라의 사신을 맞아들이는 문제로 조정에서는 신흥사대부와 권신들 간에 대립이 일어났다. 이인임과 지윤 등은 사신을 맞아들이자고 한 반면, 정도전을 비롯한 신흥사대부들은 이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인임 등은 그들의 주장을 물리치고 원나라 사신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이인임은 정도전을 영접사로 보내려고 했다.[5] 이에 정도전은 “사신의 머리를 베든지, 그렇지 않으면 묶어서 명나라로 보내버리겠다.”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하여 정도전은 이인임·경부흥(慶復興) 등의 권신의 진노를 사 나주의 속현인 회진현(會津縣)으로 유배되었다.
1377년에 유배에서 풀려나 4년 간 고향에서 지냈다. 그 뒤 북한산 아래에 초가집을 지은 뒤 ‘삼봉재’(三峰齎)라 이름을 짓고 그 곳에서 인재 양성에 힘썼다. 이때 정도전이 즐겨 읽었던 책은 군주도 잘못하면 신하가 벌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맹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권신들이 계속해서 그를 괴롭히는 바람에 회진현(會津縣) 거평부곡(居平部曲) 등으로 9년 동안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1383년 정도전은 함주에 있던 동북면도지휘사(都指揮使) 이성계(李成桂)를 찾아갔다. 외적의 침략을 물리쳐 고려의 새로운 영웅으로 떠오른 동북도 지휘사 이성계를 만나기 위해 함경도로 직접 찾아가 사귀었다. 혁명을 하기 위해 이성계의 군사력이 필요하였다. 이 당시 정도전은 이성계의 무예와 통솔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고, 이성계도 정도전의 학식과 포부에 감탄해 마지 않았다. 정도전은 이성계 휘하의 동북면 군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군령이 엄하게 지킬 뿐 아니라 무기들 또한 잘 정비되어 있으며 훈련에도 열심히 임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정도전은 이성계를 훌륭하다고 칭찬하며 “이 정도의 군대라면 무슨 일인들 성공시키지 못하겠습니까?”라고 넌지시 떠보았다. 평생 전쟁터를 누벼 온 이성계가 정도전의 말뜻을 알아채지 못할 리 없었으나, 무슨 일을 말하는 거냐며 모르겠다는 듯이 반문했다. 이성계가 만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정도전은 재빨리 얼버무렸다.

오늘의 상황에서 이성계의 이 훈련된 군사에 대응되는 것은?

도대체 공화란 무엇이냐

Monday, September 28th, 2009

한글 위키의 http://ko.wikipedia.org/wiki/공화국 를 보면 그 어원에 대하여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영어로 공화제, 즉 리퍼블릭(republic)이란 말은 '공적인 일'을 뜻하는 라틴어인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에서 나왔다.
한자 문화권에서 사용되는 공화(共和)란 말은, 중국 주나라 여왕(厲王)의 폭정으로 반란이 일어나자 왕은 도피하고 제후들이 힘을 합쳐 나라를 다스렸다는 “공화시대”에서 유래하였으며, 19세기 일본의 학자들이 republic의 번역어로 채택하였다.

(누가 편집했을까? ㅋ)

서양에서 지금 사용되는 말의 어떤 모델들을 제시하고 구현했다면, 일본의 번역문명은 republic에 해당하는 '공화'라는 말을 고대 중국의 단어에서 찾아냈다.

이것이 사람들이 무슨 마법의 부적 주문처럼 외치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 할 때의 '공화'라는 단어의 기원이다.

이에 대해서는[박영철의 잡학사전] ⑧ republic과 공화제(共和制) (박영철, 주간조선, 2009-6-15)과 [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며](2) 공화국이란 무엇인가 (上) (김상봉, 경향신문, 2009-1-18)를 참고.

이후 대한제국의 몰락, 한일병합, 3·1운동을 거치며 급속히 성장한 공화주의 의식과 운동은 마침내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지요. ‘대한’과 ‘민국’, 당시의 최초 결합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때 비로소 ‘민주공화’라는 말이 처음 헌법 제1조로 등장합니다. 90년 전 1919년 4월11일 제정된 대한민국 임시헌장에서였습니다.(“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흥미롭게도 3·1운동의 해에 대한민국과 민주공화라는 말이 동시에 헌법에 등장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한말 이래의 근대국가 건설운동, 특히 당시 아시아 최대의 공화주의 민중운동이었던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등장한 최초의 근대적 공화정부였지요.

첫 등장 이래 헌법1조는 바뀐 적이 없습니다. 2차개헌(1925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 3차개헌(1927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국권은 인민에게 있다”, 5차개헌(1944년):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제4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인민전체에게 있음”. 1919년 9월 1차개헌에서는 제2조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한인민 전체에게 재함”이 추가되었지요. 촛불 때 부른 현행 헌법1조(1·2항)의 원형은 건국 훨씬 이전에 등장했던 것이지요. 그만큼 대한민국의 정신·원칙·비전의 고갱이가 오롯이 들어 있는 조항입니다. 놀랍게도 1919년 대한민국 임시헌장과 1948년 대한민국 헌법은 헌법정신은 물론 헌법의 구성·편제·순서까지도 거의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높은 유사성은 현행 헌법까지 이어집니다. 미군점령하에서 만들어졌음에도 건국헌법에 미국의 영향이 거의 없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며](3)헌법 1조-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上) ,박명림, 경향신문, 2009-2-8

박명림교수는 다소 감격스러운 어조로 말을 하지만, 과연 저기에 사용된 저 '공화'라는 말이 과연 무엇을 의미했을까. 아마도 세습군주제의 폐지정도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최장집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헌법은 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규정하면서 정체의 성격을 밝히고 그 정당성을 천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일찍이 매디슨이 미국의 정체를 규정하기 위해 불러들였던 “공화정”이란 말이나, 알렉산더 해밀턴이 최초로 명시적으로 사용했던 “민주공화국”이라는 말은 민주주의와 구별되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의미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여러 국가들이 규정하듯, 한국의 정체는 그저 단순히 민주주의국가라고 규정할 수도 있고, 매디슨과 해밀턴이 강조했고 또 프랑스에서처럼 공화주의의 이념적 표현으로서 공화정이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헌법의 저자가 어떤 의미로 한국국가를 민주주의국가나 공화정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이라고 불렀는지를 알지 못한다. 지금도 한국민의 대다수는 공화정이라는 의미를 잘 모르고 있다. 분단국가의 정치적 조건에서 왜 공화주의적 권력분립,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필요했는지, 또는 그것이 매디슨적 민주주의의 이념과 제도를 따른 것이라고 한다면 왜 단원제를 택했는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요약] '미국헌법과 민주주의'에 담긴 최장집 교수 서문 , 오마이뉴스, 2004-11-18

나름대로 공화라는 단어의 정의가 무엇인가 알아보려 했지만, 참 어렵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알아본 것으로 하자면,  '공화주의'라는 것은 '애국심' 이라는 것에서 크게 멀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애국심이라고 하면 보통 좌파들에게는 두드러기를 일으키게 되므로, 이 애국심에 적당한 조건을 붙여 '애국심의 근원을 시민적 권리와 공공의 가치를 담고 있는 훌륭한 헌법을 만들어 그 헌법이 잘 지켜지고 있다는데 두는 것' 이라는 헌법애국주의의 개념을 빌려오고 싶다. 요 언저리에서 '공화'라는 단어를 받아들이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