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시사일반’ Category

엄마의 대학교

Sunday, January 10th, 2010

엄마는 지난해부터 한 전문대에 다니기 시작했다. 집안사정으로 젊은 시절에 공부를 충분히 하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남아서였을까.  이 얘기는 담으로 미뤄두기로 하고.

이 학교에선 성적을 어떻게 주는건지 좀 의아한 점들이 있는데, 엄마의 성적은 모든 과목이 A+에 어쩌다 그냥 A이며, 많은 학생중에 한손가락 안에 드는 등수를 받는다고 한다.  집안에 있는 크고 작은 일들 때문에, 공부를 제대로 하는 것은 커녕 가끔은 기말시험도 못보는 과목도 더러 있는데도 그렇단다. 사정을 얘기하고, 레포트같은 것으로 때우는 방법이 있다나.  나는 이거 대학이 어째 이상하다며 놀리기도 하는데, 아무튼 그렇다.

학생들의 질이 그렇게 높지 않을 것임은 이런저런 얘기들에서 추측해볼 수 있는바, 엄마도 가끔 답답한 마음에 같은 교실에 있는 어린 학생들에게, 어떻게 이렇게 나이를 먹은 사람보다도 못하냐면서 꾸중을 하신다지만, 아마도 애초에 공부와는 별로 상관없는 아이들이 많이 들어온 탓일터.  교육이 아니라 사업을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먼저 강하게 드는 것이 사실인데, 이 학교가 교육에 있어서 그래도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일지 궁금하여, 얼마전 대화중에 한번 질문을 해보았다. 이 학교가 어떤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바가 있으며 정말로  필요성이 있는 것 같냐고 슬쩍 물어보면 엄마의 대답은 꽤나 단호하게  '이 학교는 없어져도(야?) 돼' 라고... 늦은 나이에 재밌게 다니는 대학이라 했지만, 대학에 대한 평가는 그랬다.

대학들이 너무 많아 학생들 모집에 경쟁이 치열하다지만, 사람들은 그래도 이 학교가 당장 망할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는데, 그 이유는 이 학교가 수도권에서 아주 멀지 않은 거리에 있기 때문이란다. 아침마다 서울에서 수십대의 관광버스를 타고 올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서울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는 것이 바로 이 학교의 경쟁력인 셈이다. 기꺼이 대학졸업장을 구매할 용의가 있는 학생들도 충분하고.

우스개소리하며 농담처럼 나눌수 있는 대화였지만, 그 속에 비춰지고 있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병리현상들은 하나도 우스운 것들이 아니다. 이 꼬인 실타래들을 풀기 위하여 뭘 해야할 것인지, 누가 이에 답할 것인지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의료민영화와 산업화 - 동의어와 관계어

Monday, November 23rd, 2009

의료민영화, 의료상업화, 의료시장화, 의료산업화, 신자유주의

저 단어들 중에서 과연 어떤 것들이 동의어이고 아니면 동의어는 아니어도 어떤 관계를 가지는 것일까.

참여정부에서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라는 것을 두어 활동하고 그를 바탕으로 보건의료 정책에 대한 수정을 시도한 것은 맞다.  이름도 분명 누군가에게는 경기를 일으킬만하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의료의 민영화를 겨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의료산업화가 의료민영화가 같다고 보지 않는데,  의료산업과 관련해서 영리병원같은 첨예한 보혁갈등의 이슈가 있지만 그 이외에도 의약품산업, 의료기기산업, 의료관련R&D 등도 논의의 주제가 된다.

첨단의료단지 사업 배경과 기대효과 (유경수, 연합뉴스, 2009-8-10) 라는 기사는 의료관련 무역적자를 이렇게 적는다.

우리나라 의료산업은 그동안 제약이나 의료기기 분야에서 선진국에 과도하게 의존하며 낙후상태를 면치 못했다. 의약품·의료기기의 무역수지 적자가 2001년 1조6천억원 규모에서 2007년 4조5천억원으로 6년만에 3배 가까이 커졌음은 이를 반증한다.

참고로 나는 CT와 같은 기계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바인데,  MRI나 CT와 같은 고가장비의 경우 국내생산력이 어느정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다 수입해서 쓸거라고 본다.  과연 이러한 분야에 대한 성장에 정부가 관심을 갖는 것이 의료의 민영화 및 공보험 붕괴와 직결되는 것일까.  당연하게도 이 점은 명백하지 않다. 따라서 적어도 의료산업화라는 단어를 쓸때는 의료민영화라는 단어와 등치를 시켜서는 안된다. 이슈를 더 쪼개야 할 것이다.

정부의 정책목표는 복합적인 것인데, 경제의 성장, 국민의 복지, 과학의 발전, 지역의 균형발전 과 같은 것들이 수많은 이해관계들과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건강보험 단상

Monday, November 23rd, 2009

대한민국의 총 국민의료비지출액의 변화추세는 이렇다.

  • 2000년 26조5000억원
  • 2006년 54조5000억원
  • 2007년 61조 3000억원, GDP 대비 국민의료비 비중 6.8%(OECD 평균 8.9%), 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27위

의료비 비중 자체는 상대적으로 아직 크지 않지만, 문제는 이 비용의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는 것이다. 의료비 상승속도는 일년에 9.2% 상승으로,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빠르다.  (OECD Health Data 2009Korea)

국민의료비 중 공공재원 비중(건강보험+국고보조)은 이렇게 변하였다.

  • 1997년 36%
  • 2007년 55%

OECD 평균 공공재원 비중은 73% 로서, 아직 형편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체 의료비 자체가 상승 중임을 고려하면, 대한민국의 의료비지출에서 공공재원의 비중이 상승하는 속도도 아주 형편없는 것은 아니라고 보인다.

건강보험의 국고지원도 복지부 예산과 담배에 대한 세금에서 나오는데, 건강보험의 재정안정화에 대하여 과연 기존의 정부들이 그리 무책임했을까.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이 5조정도 규모라는데, 복지예산의 규모와 추이를 보면,  참여정부가 이 문제를 회피하고 민영화를 밀여붙였다는 주장이 옳은 것일까.

health

(보건복지부 예산현황)

그리고 건강보험의 보장성만을 건강보험 정책의 목표로 두기 어려운 현실적인 여건들이 있다. 보장성이 늘면, 의료수요도 함께 증가하기 때문에 수요의 증가분까지 고려하는 건강보험의 재정안정정책이 함께 따라오지 않으면, 보장성을 높여야한다는 주장만은 공허하다.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와 고령화등 의료수요는 갈수록 증가할 것이 명백하다.

내가 보기에 당분간 문제는 이 의료비 지출의 상승속도를 건강보험 및 국고지원 수입증가가 따라잡지 못하는 시차에 있을 것 같다.

거기에 정책뒤집기를 일삼고, 세금도 잘 못 걷는 정부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도도 높지 않아서 보험료 인상과 세금 인상에는 저항이 있다.

건강보험료를 올린다면 노조부터 저항하는게 현실아닌가.

    도덕성이 넘쳐 흐르는 사회말고 위선이 없는 사회

    Friday, September 18th, 2009

    민주당 박주선 최고위원의 말이다.

    이번 인사청문회를 보는 평소 준법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국민은 커다란 상처를 느끼고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후보자의 능력과 자질, 도덕성, 청렴성을 조사해서 공직자로서의 적합성이 있는지의 여부를 따지는 청문회가...
    제49차 확대간부회의 모두발언, 민주당 보도자료, 2009-09-18

    사실 나는 저런 말에 솔직히 별로 공감이 안간다. 솔까말, 국민들은 도덕적이고 선량한데, 지도층만 유난히 비도덕적인가? 그런게 아니라 그냥 국민들 중에서 지도자도 나오고 그러는 것은 아니고? 물론 특권을 누리고 살아온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삼십년 전에도 지도층이었던 사람이 다는 아니잖는가?

    사람들의 분노노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누리는 반칙과 특권에 분노를 어찌 이해못하겠는가. 열받을건 받고, 책임을 물을 것은 물어야겠지. 법 잘 지키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선의의 피해를 받는 경우도 있는거 맞는 말이다.

    버뜨, 모든 인간에게는 욕망이란 것도 있고 탐욕이란 것도 있게 마련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게 있다는 것이 어떤 비난의 대상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만들고자 노력해야 하는 것은, 그러한 욕망들을 성인들에게 찾아볼 수 있는 수신의 자세로 제어하는 사회라기보다는,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해감으로써 그 욕망들이 사회에 필요한 질서, 상식들과 적당한 수준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세상일 게다.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 어딘지가 매우 중요한 상황이 있을 때, 누구나 그걸 동사무소 가서 신고만 하면 되는 정도로 쉽게 조작할 수 있다면, 그게 정말 합리적인 제도인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거주의 증명을 꼭 그렇게 관이 받은 신고를 통하는 것이 오히려 제도의 허점일 수도 있는 것이다. 정말로 실제 거주지가 어디인지가 매우 중요한 상황이라면 (답이 아니라 그냥 하나의 가능한 예를 찾자면) 전기요금이나 수도요금 같은걸 몇 개월치 어디서 냈는가 이런 정보가 오히려 훌륭할 수도 있는 것이다. 행정 효율성 같은 따져야 할 문제들이 있겠지만, 이러한 제도들을 생각해볼 여지는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조작하고 그러는 건 뭐 막을 수 없겠다. 그런건 뭐 걸리는 경우 조작으로 얻을 이익보다 몇배나 더 큰 응징을 가하는 수 말고 별 거 있겠나) 아무튼 그렇게 만들어진 제도들이 좀더 상식, 현실, 욕망들이 적당한 타협점을 찾도록 해주는 사회라면, 나는 그런 사회가 제도는 허술한데 개개인의 고고한 도덕성과 성품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어떠한 조건들이 맞아들어가서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굳이 그걸 마다하고 기꺼이 군대에 갈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대한민국 군대 후진거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군대가 좀더 견딜만하고 인간적인 곳이 되도록 개선을 해가는 것이다. 그러면 개선해가는 만큼 저렇게 난리치면서 피하고 그러는 사람, 그런 사례들도 줄어들겠지.

    뜬금없이 그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가 작전 통제할 만한 실력이 없냐, 대한민국 군대들 지금까지 뭐 했노, 나도 군대 갔다왔고 예비군 훈련까지 다 받았는데, 심심하면 사람한테 세금 내라 하고, 불러다가 뺑뺑이 돌리고 훈련시키고 했는데, 그 위의 사람들은 뭐했어, 작전통제권 자기들 나라 자기 군대 작전 통제도 한 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놔놓고 나 국방 장관이오, 나 참모총장이오 그렇게 별들 달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는 얘깁니까? 그래서 작통권 회수하면 안 된다고 줄줄이 몰려가서 성명내고, 자기들이 직무유기 아닙니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노무현 대통령 민주평통 발언 전문, 한겨레, 2006-12-22
    ...

    그리고 바로 이 때, 한 때 세상을 뜨겁게 달군 말이 나온다.

    우리 아이들 요새 아이들도 많이 안 낳는데, 군대에 가서 몇 년씩 썩히지 말고 그동안에 열심히 활동하고 장가를 일찍 보내야 아이를 일찍 놓을 것 아닙니까?

    방방 뛴 꼴통들 있었지만, 사실 누구나 다 동의하고 공감하는 얘기일게다. 군대가서 썩지 그럼 안 썩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모두가 그렇게 도덕성 타령으로 날밤을 새도, 결국 달라지는 거 별로 없을 것이고, 문제가 전보다 그다지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거다. 도덕성 타령도 중요하겠지만, 너무 거기에만 몰두하지는 말자는 작은 바램같은 것이다.

    나는 한국사회가 도덕성이 넘쳐 흐르는 사회말고, 위선이 없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그러면 더 진솔한 대화, 생산적인 결론이 나올 수도 있겠지. 그러면 여기서 훗날 얻어질 것은 아마도 '더 도덕적인 사회'가 아닐까하고 생각해 본다.

    도전과 모험을 장려할 수 없는 사회

    Wednesday, June 24th, 2009

    정보공개센터 블로그의 '청소년, 대학생에게 가장 인기있는 직장은?' 에서 재미있는 통계를 봤다.

    (아마도 국가통계포털 에서 '사회통계' 검색으로 찾을 수 있을듯..)

    이 통계만 가지고 나라의 상태를 판단하라 한다면... 이 나라는 곧 망한다... 라고 말하겠다.
    도전도 없고, 모험도 없는 곳에, 무슨 꿈이 있고, 무슨 희망이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