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정치발전’ Category

정치권의 의사결정 방식을 만들어 가야할때

Monday, March 9th, 2009

내가 요즘 쓰고 있는 글들의 테마를 요약하자면, 결국 '정치권의 의사결정 방식'에 대한 고민으로 압축된다.

생각의 뼈대만 일단 짧게 써둔다.

예전에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이런저런 사안에 대하여 대통령이라는 막강한 최종결정권자가 존재했다.

참여정부 시기를 거치면서 그런 강력한 존재는 이제 사라졌다. 현재 이명박님이 아무리 권위주의 통치 스타일로 돌아가려 해도, 여기저기서 저항을 받고 밀고 나가기에 한계를 보이는 것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기초체력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정도의 문제는 있을지라도, 본질적으로 이것은 이제 다시 되돌리기 힘든 것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것들이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작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대통령도 헌법 아래에 있고, 국가보안법도 헌법 아래에 있는 것이다.

17대 국회부터, 대한민국 정치권 즉 입법부는 논의의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새로운 의사결정 방식을 필요로 하고 있다. 결론을 내줄수 있는 대통령이라는 존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균형이 생긴 여야의 총세력, 대결적 정치 전통, 숫자의 정치, 힘의 정치, 합의 능력 부재, 이러한 모든 요인들이 결합하여, 국회의 기능은 지금껏 계속 마비 상태에 있다.

근본적인 의사결정 능력을 배양하는데 게으름을 보이고 있는 국회는 일단 임시변통으로 하나의 해법을 찾아냈는데, 그것이 바로 사법부를 논쟁에 끼어들여 그들로 하여금 결론을 내리게 하는 것이다. 많은 정치적 결정들이 결국 헌재까지 올라가서 결정되었음을 눈여겨 보라.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점점 헌법재판관의 임명, 대법관의 임명 같은 데서 엄청난 관심을 끌게 될 것이다. 지금의 대법관 이메일 파동도 이러한 변화된 시대적 배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인식의 틀을 가지고 보면, 앞으로 있을 미디어법에서의 충돌도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여야는 미디어법을 가지고 계속 갈등을 겪지만, 결국은 힘과 숫자에 의해, 한나라당의 의사대로 가게 된다. 그리고 민주당이 위헌소송을 내는 것으로, 싸움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모르긴 몰라도, 그러면 또 정치사법부 얘기 나오고, 조롱받는 헌재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예상이다.

민주시민의 국회관전을 위한 입법스포츠 기본룰

Wednesday, February 25th, 2009

이 정부는 '법치'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 것 같은데, 사실 법치국가의 개념은 이렇게 아무렇게나 갖다가 쓰라고 나온 것은 아닌듯 하다.

표명환 저의 '현대헌법의 기본원리로서 법치국가원칙'이라는 글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오늘날의 법치국가의 개념은 18세기에서 19세기의 전환기에서 생성된 개념을 기초로 하여 성립된 개념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법치국가의 개념은 절대군주국가에 대한 자유시민계급의 투쟁의 산물로써 생성되었고, 그것은 특히 절대적인 경찰국가에 대한 반대개념으로서 인식되 었다. 법치국가개념의 근본사상은 국가가 시민의 재산과 자유의 보장을 그의 과제로 하고, 개인의 복지의 증진에 그 목적을 두는 것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하여 국가 질서는 헌법 특히 인권과 권력분립 또한 일반적으로 유효하고, 형식적인 절차에서 형성된 법률을 통하여 달성되고 보장되어 진다. 따라서 법치국가는 사람이나 힘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법에 의한 지배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법치국가라는 개념을 만들어내던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시민의 권리를 잘 보호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던 것인데, 공부를 머리로 안 하고 똥구녕으로 한듯한 딴나라당과 조중동 색퀴들은 그 본래의 이유와 목적은 쏙 빼먹고, 말 안듣는 사람들은 죽어도 싸다는 식의 논리를 구사할 때만 법치국가를 찾는다.

아무튼 딴나라당이 싫다면, 그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볼 일이다. 이런걸 알아야, 이명박님이 법치국가라는 뻘논리를 들고 나올 때, 망신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좀더 자세한 내용을 찾아 봐야겠지만은, 이런건 나도 오늘 첨 알았네...쩝... 하튼 어린 시절에 민주시민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것 같다.

딴나라당박멸 선동은 이쯤하고, 하려던 이야기를 조금 해 보련다.

우리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몇 가지 국가운영의 원리들이 있다. 법치국가의 원리도 중요한 원리이고, 또 당파성을 가지는 정당을 인정하고 있는 대의민주주의가 매우 중요한 원리라 할 수 있다.

시민권이 존중되는 본래적 의미의 법치국가가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고 하자. 그럼 이제 당파성을 띤 정당들이 선거라고 하는 민주적인 정책 홍보 경쟁 과정을 통해 권력을 잡고 행사하고 할 때, 법이란 정책을 담는 그릇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시민권을 보호하기 위한 윤리적 도덕적 색채를 갖는 법들이 있는가 하면, 공동체 내부의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 및 방법으로서의 법이란 것도 있을 것이다.

어 느 정도 경찰국가의 때를 벗고, 이제는 제법 법치국가로서의 틀을 갖춘채로 공고화의 과정을 밟고 있다고 여겨졌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의 원리를 제대로 끌어안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진도를 나가야 하는데 참으로 걱정이다.

아무튼 시민민주주의가 키워내고자 하는 민주시민은, 이러한 대의민주주의과 법치국가 개념의 결합으로 탄생하는 법이라는 것의 운명에 대하여 잘 알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이 국회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입법스포츠를 잘 알고, 관전할 수 있는 매니아급의 시민들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민주주의는 건강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하나의 법안은 크게 다음과 같은 운명을 거치게 된다. 이 비슷한 걸, 중고딩시절에 어디선가 본 것 같긴 하다.

ass_process1.gif

법안의 공포까지를 한 정당이 얻는 득점으로 인정을 한다면, 그 득점을 위해 그 정당이 넘어야 할 선은 꽤 여러가지가 있다. 즉 심도있는 경기 관전을 위해서는 이 정도 지식으로는 부족한 듯 하다. 그래서 급하게나마 조사를 해 보았다.  앞으로의 더 자세한 업데이트를 '국회의 이해'에서 확인할 것.

먼저 무시무시한 제목을 가진 동아일보의 어제 기사를 하나 보자. 많은 기사를 읽어왔지만, 이렇게 섬뜩하고 오싹한 기사 제목은 흔치 않았던 것 같다.

여당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국회에서 법안의 운명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정부나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국회에 제출

국회는 소관 상임위원회를 결정해 상임위원회에 회부

상임위원회의 전체회의를 통해 법안 상정

상임위원회 대체토론

상임위 법안심사소위원회(소위) 구성 및 심의

상임위의 전체 회의를 거쳐 의결

의결된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의 자구 심사 등을 거쳐 본회의 상정

위원회에서 법률안의 심사를 마치거나 입안한 때에는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하여 체계와 자구에 대한 심사

본회의에 상정이 되고 나면 논의를 거쳐 표결 처리

국회에서 의결된 의안은 의장이 이를 정부에 이송

이제 배운걸 가지고, 위의 기사 읽기에 써먹어 본다면, 미디어법 상정이라는 어제의 뉴스는 위의 굵은 글씨 부분에 해당한다.

그리고 다른 굵은 글씨 부분들이 각각 '소위 통과' '상임위 통과' 까지의 라인을 넘은게 된다.

이것만 가지고 볼때는,  법안을 '상임위에 상정' 한 수준으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다. 또 법사위원장이라고 하는 본회의 상정전 최후방 수비수는 민주당이 보유하고 있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가 25일 “상임위에서 처리한다고 끝이 아니다. 법사위원장이 민주당 의원이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라고 하는 다른 기사의 문장도 찾아볼 수 있다.

나름대로 문제를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상정된 미디어법 자체가 시민권을 억압할 수 있는 반민주적 요소가 있는데, 또 입법과정동안 법안이 거쳐가는 길에서 '상정'이라는 것은, 매우 결정적인 부분은 아니다.

이러한 가정을 할때, 과연 야당의 대응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무엇일까. 사실 딴나라당의 민주주의 개념탑재가 가장 우선되어야 할 일이지만, 이제 물리력 국회도 좀 짜증이 나는게 사실이다.

한동안 혼란을 거쳐야겠지만, 언젠가는 합의된 바른 답이 나와야 할 것이다.

아무튼간에 어렵다. 민주주의란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고...

한국사람은 대학에 왜 갈까

Sunday, January 18th, 2009

매일경제에서 한국의 대학진학과 관련되 네개의 기획기사를 보도했다.

이명박님 욕하는 것도 단기적인 선거전략의 관점에서야 중요하다고 말할수 있겠지만, 세상이 정말로 바뀌길 원한다면 나는 이런 장기적인 과제에 대한 고민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우리나라 대학 진학이 맹목적이라는 사실은 통계에서도 잘 나타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4년제 대학진학률은 59%로 독일(35%)이나 일본(45%)처럼 직업교육이 잘돼 있는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다. 더욱이 전문대 산업대 교육대 등 학문보다는 실용적인 지식을 배우는 전문대학 진학률은 50%로 독일(13%)에 비해 4배에 이른다. 전문고교가 제 기능을 못하고, 또 전문고교를 졸업해도 굳이 전문대학을 가야 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한국 젊은이들이 대학의 덫에 걸린 건 그들 탓만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적성을 찾아주지 못하고, 전문학교 졸업 후 곧장 기업현장에 나가는 시스템 부재, 그리고 대학 진학을 마치 의무교육처럼 여기는 사회의 책임이 크다. 박종효 한국교육개발원(KEDI) 연구위원은 "대학진학률을 분석해 보면 다른 나라에 비해 전문대학 진학 비중이 월등히 높다"며 "고교 졸업 후 대학이 아니라 직업 현장에 나가도록 다양한 학제를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학은 도대체 뭘하는 곳이며, 사람들은 왜 대학에 가는 것일까? 학문을 배우러 간다는 씨도 안멕힐듯한 얘기는 일단 접도록 하자. 한국에서 사람들이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경쟁하는 것은, 구직경쟁과 그 근본적인 원인인 직업간의 소득불평등, 그리고 거기서부터 나오게될 파급효과에서 가장 먼저 찾아야겠지만, 나는 또다른 한가지를 살짝 짚어두고 가련다.

한국갈때 비행기타는 동안 영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봤는데, 차승원이 사람이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일곱가지가 필요하다면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나열한다.

꿈, 깡, 끼, 꾀, 끈, 꼴, 끝

대학이 개인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국사회가 유난히 끈으로 통하는 사회이다보니, 내가 보기엔 대학이 제공하는 '끈' 이라는 것이 큰 유인동기 중의 하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대학을 안 다니는 동안 익힐 수 있는 것들이 많겠지만, 한국처럼 끈이 유난히 중요한 사회라면, 그런 소중한 자산을 무더기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학교처럼 잘 제공되는 곳이 또 있으랴.

일전에 '경조사비에 대한 단상'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지만, 국민연금이야 그냥 돈내고 나중에 적당히 받는 밋밋한 제도인데 반해서, 경조사비는 그런 보험의 기능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데 요긴한 연줄을 만들어준다는 플러스 요인이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학교는 그런 좋은 기능이 있다.

그건 일단 그렇고, 대학진학율이 높다는 기사에다가 또 다른 뉴스 하나를 더하면, 사람들의 삶을 팍팍하게 하는 하나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교육물가 무섭게 오른다'라는 기사이다.

18일 한국은행과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소비자물가 총지수는 3년전인 2005년에 비해 9.7% 올랐다. 의약품은 1.3%, 의료서비스는 8.9%, 집세는 4.5%, 식료품은 7.6% 각각 상승했다. 그러나 교육물가 지수 상승률은 무려 17.2%에 이르렀다.

분야별로 보면 대학의 납입금이 많이 뛰었다. 국공립대학교 대학원 납입금은 지난 3년간 28.5% 올랐고 국공립대학교 26.4%, 전문대학교 23.1%, 사립대학교 22.0%, 사립대학교 대학원 19.9% 등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학원비도 마찬가지로 올라갔다. 종합대입학원비는 22.8% 뛰었으며 단과대입학원비는 17.8%, 종합고입학원비는 20.1% 각각 상승했다.

유치원 납임금은 3년만에 28.6%나 뛰었고 보습학원비 15.8%, 피아노학원비 13.3%, 미술학원비 12.2% 등의 오름폭을 나타냈다. 이밖에 외국어학원비는 15.4%, 취업학원비는 15.6% 등의 상승률을 나타냈다.

죄다 대학에 가는 분위기에서, 대학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은 팍팍 오르고 있으니, 다들 괴로운 것이다. 부모입장에서는 그만큼 노후비용을 빼다가 쓰고 있는 셈인데, 어차피 나라에 별 보탬도 안 되는 제살깎아먹기 경쟁인 것, 왜 다들 대학에 가는 건지 한번 물어야 하는 때가 온게 아닐까?

독일의 경우가 우리에게 주어질 정답은 아니겠지만, 결국 큰 방향은 좀더 합리적인 실력평가기준을 세우고 직업간의 소득불평등을 해소하는데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독일이 대학과 직업교육의 두 트랙으로 정착된 것은 기술에 대한 편견이 없는 사회적인 토양 덕분이다. 플로리안 씨는 "물론 자식들이 일류 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하는 독일 부모들도 있다"며 "하지만 이는 일부 화이트칼라 직업에 국한된 얘기일 뿐 대부분 학생들은 직업학교를 나와 블루칼라 직업에 종사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독일에서도 인턴만 7~8번 하면서 아직도 정규직으로 취업하지 못한 대학 졸업자가 있다"며 "이는 독일 사회에서 직업교육이 차지하는 위상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노유경 주독한국교육원장은 "세금이 무거운 독일에서는 직종에 관계없이 실제로 수중에 들어오는 수입에 큰 차이가 없다"며 "이에 따라 자녀가 학업에 적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부모들은 직업교육을 시키게 된다"고 말했다. 노 원장은 "단순한 학벌이 아닌 해당 직업에 필요한 자격증, 능력 등에 따라 직장 내 지위와 보수가 결정된다"고 전했다.

독일에서 유학한 이기수 고려대 총장은 "독일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한 명의 교사가 학생을 계속 지도하며 매달 학부모 회의, 개별 면담을 갖는다"며 "학생들의 장단점을 속속들이 파악한 교사들의 상담 결과를 부모들이 대부분 받아들이면서 초등학교를 마칠 무렵이면 이미 학생들의 진로가 결정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식은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에 갔으면 한다는 거......이건 내 잘못이 아니여...

입법부의 역량강화 방안 고민

Saturday, January 10th, 2009

대한민국이 앞으로도 대통령제를 유지한다고 가정하면, 지금처럼 정책에 대한 전문성에 있어서 행정부와 입법부의 역량 차이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내각제를 한다면 문제가 덜하겠지만, 강력한 제왕적 대통령의 전통과 시스템을 실질적으로 운용해온 전문관료들로 이루어진 행정부의 능력에 비해서 입법부의 능력이 쨉도 안된다면, 입법부와 행정부 사이의 견제의 원리라는 것은 물리적 조건에서 이미 한계를 갖는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이 사라져가는 지금과 같은 과도기에서야 당정협의와 같은 임시변통의 제도를 통해 자원의 공유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렇게 해서는 근본적으로 대통령에 휘둘리지 않는 국회를 갖기는 어렵다. 대통령이 좀 모자랄때는, 국회라도 제정신이어야 하며, 지속적인 개혁의 길에 있어서도, 대통령 한방으로 폭풍을 몰아치는 전략보다는 국회에 여러 똘똘한 사람을 채워 안정성있게 굴리는 것이 더 나은 것으로 보인다.

지금 국회가 참으로 개판인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딴나라당과 민주당의 지난 국회에서의 대결구도에서 오는 교착에 집착하게 되면 보지 못하게 되는 부분들이 생기게 된다. 나는 다음 도표를 놓고 생각해볼 것들이 많다고 여긴다.

16대 국회와 17대 국회를 보면, 법안의 숫자와 관련한 여러 지표들이 거의 두배씩 달라졌음을 보게 된다. 의원을 통한 사실상의 정부입법이라는 허수가 있음을 감안해도, 국회가 변화하고 있음을 숫자가 증언한다. 의원입법 비율이 정부입법 비율을 크게 넘어서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것도 주의깊게 보아야 한다. 의원수에는 큰 변동이 없었을텐데,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일단 이것이 삼김정치의 종식과 참여정부시기 당정분리라고 하는 시대의 흐름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터넷으로 인해 촉발된 변화라고 생각하며, 결국 따지고 보면 국회의원들이 꽤나 유권자 눈치를 보며 경쟁해야 하는 구조가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양적으로라도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내세워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현실은 일단 참담한 개판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국회 역시 빠르게 변화해야만 하는 환경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면에서는 긍정적인 점이 없지 않은데, 한편으로 의원숫자는 그대로인데, 처리해야하는 법안의 숫자가 늘게 되면, 결국 법안의 날림 통과가 속출하게 된다는 얘기다. 법안처리시간이 계속 증가하고 있음도 눈여겨보아햐 한다. 두 거대정당의 극한대립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법안이 많아지고 있다는 물리적인 이유도 있는 것이다.

이러저러한 문제들의 대안에 대한 짧은 생각을 나열해본다면,

상임위원회 유지에 대한 인센티브 확충,
입법부 보좌기구 확충 (예산처, 국회도서관 같은 것들) ,
의원 보좌관 지원 증대 (의원 개인 보좌관, 상임위원회 보좌관(국가 공무원),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 등) 등이 도움이 될 것이며 이렇게 예산이 필요한 부분과는 별개로, 법안에 대한 평가의 문화를 양중심에서 질중심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착시때문에 그렇지 국회는 분명히 변화하고 있다.

정치인 양성을 위한 커리큘럼?

Tuesday, January 6th, 2009

지금까지의 한국 정치가 워낙 힘있는 사람에게 줄대는 능력이 가장 필수적인 것으로 되다보니, 정치인들이 권모술수엔 밝지만 실제로 세상을 작동시키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이나 이해가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는 경우들이 많다.

새 정당이라는게 먼훗날(?) 생긴다면, 나는 그 정당의 핵심에 정치인의 양성과 교육이 있었으면 하는데, 체계적인 커리큘럼까지 좀 준비하면 좋겠다. 재정학같은 분야 ㅋㅋ를 몰라서야 되겠느냔 말이다. 마음같아서는 추상대수학으로 한학기 논리훈련도 시키면 좋겠지만, 이것은 공감을 얻지는 못할 것 같아서... 물론 기술적인 부분들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도움이 언제나 필요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정말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필수과목 몇 개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