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수학자’ Category

대중문화 속의 라마누잔

Sunday, December 16th, 2007

라마누잔(1887-1920) 은 인도의 전설적인 천재 수학자이다.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않았으나, 독창적인 연구로 무수히 많은 업적을 남겼다. 조만간 내가 하는 공부와는 얼마나 인연이 있는지 써볼 생각이다.

오늘 본 뉴스기사 하나에서 이런 것이 있었다. 내년도의 연극 소개였는데,

영국 연출가 사이먼 맥버니와 씨어터 컴플리시테는 인도의 천재 수학자 라마누잔의 삶을 그린 작품 '사라져가는 숫자'(LG아트센터)를 선보인다. (기사링크)

LG아트센터 홈페이지를 찾아가보니, 내년 11월에 공연 예정이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이렇다.

영국의 현대 연극을 대표하는 연출가, 사이먼 맥버니와 씨어터 컴플리시테가 인도의 천재 수학자 라마누잔의 시공간을 초월한 삶과 죽음의 미스터리를 그린 작품 <사라져가는 숫자>로 첫 내한공연을 갖는다. 영국 최고의 수학자 하디에 의해 발견되어 수많은 수학이론을 연구하다 32세의 나이로 요절한 천재 수학자 라마누잔은 수학연구를 위해 캠브리지로 간 27세부터 인도로 돌아가 세상을 달리한 32세까지 겨우 5년 동안, 발표한 공식만 3000여개가 넘는 금세기 최고의 천재 수학자이다. 사이먼 맥버니는 우리의 삶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까지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는지, 순간과 영원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인도의 라마누잔과 영국의 하디,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한 남자와 수학자인 그의 연인과의 삶을 절묘하게 교차해 가며 신비하게 풀어나간다.
로베르 르빠주의 <안데르센 프로젝트>에서 보여지는 시 공간을 넘나드는 극적 기법과 <굿 윌 헌팅>, <뷰티풀 마인드> 의 비운의 천재 수학자들의 삶을 연상시키는 <사라져가는 숫자>는 100년의 시간과 세 대륙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통해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 삶의 진리가 무엇인지를 전한다. 수학과 예술, 테크놀로지와 휴머니즘의 완벽한 만남이 보여주는 경탄과 감동의 드라마 <사라지는 숫자>, 사이먼 맥버니가 왜 현대 연극의 기수가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공연안내)

호기심이 생겨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연극 뿐만 아니라 그를 소재로 하여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영화만 두개라는 것.

영화 굿윌헌팅에서도 라마누잔이 언급되는 장면이 있다. 수학과 교수가 심리학자였던가하는 친구에게 주인공을 부탁하는 곳이다. 학교에서 잡일하고 있던 주인공을 라마누잔에 비유한다.

(more...)

오늘은 자코비 님 생신

Monday, December 10th, 2007

칼 구스타프 자코비는 1804년 12월 10일 태어났다. 그는 19세기 세계 문명의 센터였던 독일이 낳은, 역사 속의 위대한 수학자이다.

젊은이들이 어떻게 수학을 공부해야 할지, 다음과 같은 훌륭한 말을 남겨두셨다. 가끔 수동적으로 책을 읽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귓가에 울리곤 한다.

Young mathematicians ought to be pitched "into the icy water to learn to swim
or drown by themselves. Many students put off attempting anything of their own account until they have mastered everything relating to their problem that has been done by others. The result is that but few ever acquire the knack of independent work."
--E.T. Bell, Men of Mathematics (in describing the opinion of Carl Jacobi)

의도된 것은 아니었는데, 오늘은 이것저것 뒤적거리다보니, 자코비가 남긴 유산과 많이 만난듯하다.

러시아의 수학자, V.I. Arnold가 추상적인 수학교육에 대해 강한 반대의 톤으로 쓴 글, On teaching mathematics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

Jacobi noted, as mathematics' most fascinating property, that in it one and the same function controls both the presentations of a whole number as a sum of four squares and the real movement of a pendulum.

These discoveries of connections between heterogeneous mathematical objects can be compared with the discovery of the connection between electricity and magnetism in physics or with the discovery of the similarity between the east coast of America and the west coast of Africa in geology.

The emotional significance of such discoveries for teaching is difficult to overestimate. It is they who teach us to search and find such wonderful phenomena of harmony of the Universe.

정수론의 주제인 이차형식을 공부하려면 반드시 세타함수와 만나게 되는데, 이 세타함수는 열방정식을 풀고 고독하게 죽어간 푸리에의 바로 그 함수이고, 또한 자코비가 전개한 타원함수론의 기초이기도 하다. 느껴지는가? HARMONY of the UNIVERSE!!!

자코비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

The real end of science is the honour of the human mind.

이런 말들이 정말 나같은 사람들이 맘고생해가며 수학을 공부하는데 격려가 되는 말이다.

며칠전 퀄에서는 자코비 타원함수에 한방을 얻어맞기도 했었고, 이번학기 초에는 Theory of Jacobi Forms 라는 책의 몇챕터를 읽었으며, 두어달전에는 물리과에 가서 끈이론을 수강하고 있던 수학과 대학원생 친구와 함께, 그곳에 증명없이 쓰여져있던,

[math]
16z \prod_{n=1}^{\infty} (1+z^{2n})^8=\prod_{n=1}^{\infty}(1+z^{2n-1})^8-\prod_{n=1}^{\infty}(1-z^{2n-1})^8
[/math]

이 식을 증명하느라, 땀을 삐질삐질 흘리다 그냥 포기한 기억이 있는데, 아뿔싸, 이것은 자코비 세타함수가 만족시키는 항등식,

[math]
\vartheta_{00}(0;\tau)^4 = \vartheta_{01}(0;\tau)^4 + \vartheta_{10}(0;\tau)^4
[/math]

이었던 것임을 오늘에야 발견한 것이 아닌가.

새삼 그에게 무한한 존경의 마음이 솟아 오른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 - 오일러 탄생 300주년 포스팅

Sunday, October 21st, 2007

수학자 중에 오일러라는 분이 계시다. 이 분이 1707년 4월 15일에 태어나셔서, 올해가 그 3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란 영화가 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오일러의 공식이었는데, 아래는 그 영화 속의 장면이다. 위에 것칠판에 쓰여진 식이 바로 (수많은) 오일러의 공식 (중의 하나), 그리고 아래 장면에는 오일러의 얼굴이 보인다.

The.Professor.And.His.Beloved.Equation.2006.DVDRip.XviD.AC3.CD2-JUPiT.avi_001996496.jpgThe.Professor.And.His.Beloved.Equation.2006.DVDRip.XviD.AC3.CD2-JUPiT.avi_002013847.jpg

어느새 영화에까지 출연하신 슈퍼스타 오일러와 그의 공식

[math]e^{i \pi} +1 = 0[/math]

이 공식은 대학교 수학과에서 2학년쯤에 복소해석학이라는 과목을 들으면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오일러의 공식 하나를 알자고 이제 와서 모두 복소해석학을 들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나처럼 수학이나 공부하며 띵까띵까 한가하게 팔자가 핀 사람들이 아닌, 거친 세상을 힘들고 바쁘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최단기 속성 코스를 원한다.

그래서 나는 생각해 보았다. 중고등학교의 수학지식을 가정해서 이것을 이해시킬 수 있겠는가. 과연 그것은 가능한 일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은 복소해석학을 배울 때는, 거의 정의에 가까운 수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일단 이 공식의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면서 시간을 좀더 벌어보기로 했다. 좋은 생각 있으시면 알려주시라.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읽고 - 빛에 대한 소고

Saturday, August 25th, 2007

플라톤의 국가 제 7권에 '동굴의 비유'라는 것이 있다.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그 비유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어렸을 때부터 동굴안의 벽을 향해 손과 발, 목까지 묶여 있어 움직일수 없이 벽만을 바라보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뒤쪽으로 동굴 밖에서는 멀리 태양이 비치고 있다. 그리고 그들과 태양사이에는 높은 담이 있는 길이 있다. 이 길로 여러 사람들과 물건들, 동물들이 지나가고 있다. 동굴안의 사람들은 동굴안의 벽에 비치는 사물들, 동물들, 사람들의 그림자를 볼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그림자가 진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동굴안에 묶여 있던 사람중 한사람이 풀려나서 동굴밖으로 나갔다. 처음 그는 햇살로 아무것도 보지 못하다가 차차 사물들, 동물들, 사람들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빛나는 태양까지 보게 되었다. 그가 다시 동굴로 돌아가 자신의 경험을 말하자,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고 오히려 우스꽝스럽게 여긴다. 오히려 그 밖으로 나가면 눈이 멀게 된다 생각하여, 아예 나갈 생각 조차 하지 않게 된다.

플라톤은 부당하게 사형을 당한 자신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생각하면서 울면서 펜을 들지 않았을까.

한편 유교경전인 대학은 이렇게 시작한다.

대학지도는 재명명덕 재신민 재지어지선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

대학(大學)의 도(道)는 명덕(明德)을 밝힘에 있으며
백성과 새롭게 함에 있으며, 지극한 선(至善)에 그침에 있다.

明明德 밝을명 밝을명. 명덕을 밝힌다.

서울대 교시는 Veritas lux mea (웨리타스 룩스 메아; 베리타스 이거 아니셈) , '진리는 나의 빛'이고, UC 버클리는 Fiat lux, '빛이 있으라' 아니던가. 교시에 빛이 안 들어가면 폼이 안 나지?

플라톤은 인간이 보고 있는 것은 진짜가 아닌, 이데아가 투영된 그림자라고 생각했다. 동굴 속의 담을 넘어, 참된 진리인 이데아를 보고 용기를 가지고 세상에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고 그런 사람들을 길러내는 곳이 바로 대학이라고 옛 현인들은 생각했다.

뭔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일부) 물리학자들은 시공간이 10차원 혹은 11차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4차원의 시공간은 그것이 투영된 그림자라는 것. 플라톤은 끈이론 지지자?

내가 공부하고 있는 분야는 moonshine이라 이름붙여져 있다. 영어 사전을 찾아보면, 세 가지 뜻이 나온다.

moonshine
1 달빛
2 《미·구어》 밀수입한 술;《미》 밀조한 위스키
3 어리석고 공상적인 생각, 허튼[바보 같은] 소리

추측이 되었을 당시에는 주장하는게 아주 허튼 소리 같아서, 3번의 뜻으로 moonshine이라 이름이 붙여졌는데, 이제는 맞는 말이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앞으로 한동안은 달빛이라고 받아들여도 좋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겉으로 보이는 관찰된 현상이 맞다는 것은 밝혀졌는데, 이게 도무지 그 뒤에 숨은 이유가 잘 이해가 안된다. 이런 상황이 나에겐 꼭 달빛같이 보이는 것이다. 이 미스테리를 잘 설명하자면, 그 배후에 있는 햇빛을 찾아내야 한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내가 하는 공부가 얼마나 플라톤이 말하는 동굴의 상황과 비슷하며, 명명덕의 모토에 들어맞는지.

I will go and see the sunshine!!

하디를 넘어서

Tuesday, July 17th, 2007

영국 수학자 하디가 쓴 '어느 수학자의 변명'은 다음과 같은 문단으로 시작한다.

It is a melancholy experience for a professional mathematician to find himself writing about mathematics. The function of a mathematician is to do something, to prove new theorems, to add to mathematics, and not to talk about what he or other mathematicians have done. Statesmen despise publicists, painters despise art-critics, and physiologists, physicists, or mathematicians have usually similar feelings: there is no scorn more profound, or on the whole more justifiable, than that of the men who make for the men who explain. Exposition, criticism, appreciation, is work for second-rate minds.

지난 주말에 (대중을 염두에 둔) 수학책 아이디어가 하나 생겼는데, 하디가 했던 저 말이 꿈에 보이는 것이 아닌가.

수학자와 대중의 거리는 왜 먼가? 하디 때문이다 -_- 하디의 논리를 격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