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수학과 음악’ Category

EBS 다큐 ‘피타고라스 정리의 비밀’ 단상

Wednesday, October 1st, 2008

이전에 한국에서 제작된 수학다큐가 있었는가 잘은 모르겠지만, 이번 EBS 다큐는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장을 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국내 최초의 수학드라마는 '눈의 여왕' ㅋㅋ (문근영 기하학 맨 아래 코멘트 참조).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소재를 가지고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간 좋은 작품을 만든것 같아 흐뭇하구요. 그동안 이 블로그에서 언급했던 주제들도 참 많이 등장했던 것 같네요.

미분기하학을 전공한 서울대의 김홍종 교수님이 자문 및 감수를 했다니, 스토리가 "피타고라스의 정리 -> 비유클리드기하학 -> 아인슈타인 일반상대성이론" 으로 진행된 것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을 들자면, 피타고라스를 말하면서 음악을 언급하지 않았다는거, 조금 안타까운 점이 있네요. 사실 피타고라스의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는 음악 속에서 수학을 발견했다는 것이죠. 서로 조화를 이루는 음들과 자연수의 비가 관계가 있다는 발견말입니다. 다큐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피타고라스의 믿음 '모든 것은 수다' 를 말할 때, 피타고라스에게 있어서 '수'라는 것은 유리수의 범위까지만을 말한다고 하죠. 피타고라스가 음악 속에서 발견했던 자연수의 비, 그 사실이야말로 피타고라스의 믿음을 떠받쳐준 자연의 신비였고, 루트2가 무리수라는 것이 발견되었을 때, 그것이 학파 내의 살인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은, 이러한 배경을 알 때, 좀더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음악 속에 수학이 있다는 사실 - 저는 사실 이걸 대학에 와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시절, 기숙사 방 PC앞에 쭈그려 앉아 보던 도올의 논어이야기에서 도올이 음계라는 것이 1부터 2 사이를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말하던 때가 있었던 것 같네요. 사실 중고등학교의 수학선생님들이 대학에서 교육받는 방식을 생각해 본다면, 그런 사실을 대학생이 될때까지 아무도 언급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하나도 놀랍지 않습니다만, 어쨌든 문제가 있는 교육이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의 중고등학교 시절 수학교육은 지금껏 수학 자체의 지식을 전달하는데만 집중을 해왔지만, 앞으로의 수학교육은 수학이라는 학문이 우리의 문명, 역사, 사회 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잘 전달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다음번 수학다큐를 제작한다면, 피타고라스가 음악 속에서 발견한 수의 비밀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봐도 재밌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독특한 수학문명을 건설했던 고대 그리스의 음악은 과연 어떠했을 것이며, 유리수의 비율에 기초한 순정률과 무리수의 세계로 발을 뻗은 평균율 음계의 대비, 음은 왜 하필 12개인가, 동양의 음계와 서양의 음계의 비교, ... , 푸리에의 해석학이 가져온 혁명, 컴퓨터가 열어 주고 있는 새로운 음악의 가능성, CAN ONE HEAR THE SHAPE OF A DRUM? 등등 말이죠. 소리와 영상을 모두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다큐야말로 이런데 있어서는 가장 훌륭한 매체가 아닐까요.

어쨌든 앞으로도 수학을 주제로한 이런 좋은 다큐 제작과 같은 노력들이 중단없이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우리도 BBC다큐가 부럽지 않고, '박사가 사랑한 수식' 부럽지 않은 날이 올텐데 말이죠. 교양있는 수학자와 수학교사 한 10명 정도만 의기투합, 팀을 만들어 활발하게 움직인다면, 엄청난 파괴력이 있을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하는데 말이죠...

소리가 디지털이 될때

Friday, January 4th, 2008

소리는 공기 압력의 변화를 귀가 느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소리라는 것은 연속적인 데이터이다. 마이크는 이 연속적인 데이터, 소리의 압력을 연속적인 전기의 압력신호로 바꾼다. 여기까지는 아날로그의 세계다.

컴퓨터는 연속적인 데이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유한의 세계, 0과 1 비트가 사용된다. 연속적인 데이터를 어떻게 유한하고 이산적인 데이터로 바꾸는가? 당연히 원래의 데이터와는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마이크를 통해 들어온 전기신호를, 일정한 짧은 간격을 가지고 측정하여, 컴퓨터에서 사용되는 숫자로 바꾸어준다. 이 과정을 샘플링이라 한다. 데이타의 크기 및 원래 소리와의 차이를 결정하게 되는 두 가지의 큰 변수가 있다.

얼마나 짧은 간격으로 측정할 것인가?

측정된 전기신호를, 0과 1 을 몇 개나 사용하여 얼마나 정확하게 나타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CD의 경우, (첫번째 질문에 대하여), 1초당 44100회 측정하고, (두번째 질문에 대하여), 16개의 비트를 사용한다. 2의 16승은 꽤나 큰 숫자이므로 일단 넘어가고, 첫번째 숫자에 관심을 가져보자.

그러면 왜 하필 1초에 44100회일까? 바로 여기에 수학의 힘이 있다.  소위 샘플링정리라는 것이 있다. 샘플링정리가 말하는 것은 얻고 싶은 소리의 주파수 두배만큼 자주 샘플링을 하면, 소리를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귀는 20Hz 에서  20000 Hz 까지 들을수 있다. 따라서 20000의두 배정도만큼 자주 샘플링을 한다면,이 아날로그세계의 디지털 세계로의 변환은 큰 손실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 그래서 대략 4만정도의 숫자가 CD에 사용되게 된 것이다.

난 이제 무엇을 하지?

Friday, February 10th, 2006

축하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아직 여러 학교의 발표가 남아 있어, 어디로 갈게 될지는 불확실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젠 그래도 행복한 고민만 하면 된다는 것이고, 내가 수학자라는 직업에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섰다는 것일 게다.

나는 무엇을 공부해서 나의 학위를 받을 것이며, 그 학위를 가지고 세상에 무엇을 돌려줄 수 있을까 하는 질문들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수학자 Jean Dieudonne는 Mathematics - The Music of Reason 라는 책을 썼다.

May not Music be described as the Mathematics of sense, Mathematics as the Music of the reason? - James Joseph Sylvester (1814-1897)

음악이 "감각의 수학"이라면, 수학은 "이성의 음악"이다. 수학 얘기에 왜 자꾸 음악이 끼어드는가? 그것은 아마도 먼 옛날 피타고라스가 음악 속에서 수의 비밀을 발견한 이후, 수학자들이 끊임없이 음악의 이해에 결정적인 공헌을 해 왔다는 그들의 자부심 때문일 것이다. 바이올린 소리는 왜 부드럽고, 북소리는 왜 깨지는가? 수학자라면 이를 Laplacian의 spectrum 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돌아가서, Dieudonne는 이 책에서 수학자를 이렇게 정의하였다.

A mathematician, then, will be defined in what follows as someone who has published the proof of at least one non-trivial theorem.

이 대목에서 한번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 이 정의에 따른다면, 학위를 받았다고, 그를 수학자라고 할 수는 없다. 바로 non-trivial 때문이다. 그렇다고 많은 논문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다. at least one non-trivial theorem ! 물론 무엇이 trivial 이고 non-trivial 인지가 불명확하긴 하지만, 그 기준은 아마도 누구나 우주와 독대하는 그 때에 자신의 마음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무엇일 게다. 물론 이 정도라면 그 기준을 넘어설 수 것이다. 저 정도는 해야 할 것이다.

음악이란 무엇인가?

Tuesday, December 6th, 2005

음악이란, 귀로 하는 combinatorics 다.
왜냐면, 우리가 음악을 들으면서 느끼게 되는, 음높이, 음의 세기, 리듬 등은 모두 본질에 있어, 숫자를 세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 진짜 있네(pdf 파일임)

변하는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

Friday, January 14th, 2005

변화 속의 불변 ...
무척이나 심오한 말로 들리지만, 수학과 전공 수업을 하나만 들어봐도, 수학자들에겐 이 말이 무척이나 일상적인 용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선형대수학의 예를 들어보면, (대충 읽으시면 됨)
유한차원 벡터공간 위에서 정의된 선형사상이 있다고 하자. 적절한 기저를 선택하여, 이 선형사상을 행렬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만약, 기저를 다른 것으로 선택한다면, 선형사상은 다른 행렬로 표현될 것이다. 다시 말해 선형사상의 행렬표현은 기저의 변화 속에서 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흥미를 끄는 것은, 이 서로 다르게 표현된 행렬들의 행렬식(determinant)은 같다는 것이다. 더 관찰해 보면, 행렬식 뿐만이 아니라, 대각성분의 합(trace)도 같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는 사실, 특성다항식(characteristic polynomial)이 같다는 데서 자연스럽게 따라나오는 결과이다. 행렬식과 대각성분은 특성다항식의 계수일뿐이므로...
재밌는 문제는 여기서부터 생겨난다. 만약에 서로 다른 두 행렬이 있을 때, 이들은 어떤 하나의 선형사상의 서로 다른 행렬표현으로 얻어졌겠는가? 하는 질문이다. '그렇다'라고 답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행렬의 특성다항식이 동일한지 정도는 살펴봐야 할 것이다. 만약에, 계산 결과 특성다항식이 같다면, 질문에 완전히 답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다. 그러면 무엇을 더 조사해 보아야 하는가? ... ... 당연한 것이지만, 기저를 변화시키면서 선형사상을 행렬로 표현할 때, 기저의 변화에 관계없이 변하지 않는게 또 무엇이 있는지를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특성다항식은 그것들 중의 하나였을 뿐. 아무튼 만약에 이렇게 해서, 질문에 완벽하게 답할 수 있게 해 주는 정보를 더 찾아내게 되면, 그때 우리는 처음에 제기된 문제가 완벽하고, 깔끔하게 해결되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선형대수에서도 '변하는 것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 찾기'는 중요한 테마가 되는 것이다.

이제 화제를 옮겨서...
이렇듯 '변화 속의 불변'은 수학의 주요 관심사인데, 내가 보기엔 음악의 주된 관심 역시 '변화 속의 불변'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 견해로는 노래치고 변주곡 아닌게 없긴 하지만, 특별히 변주곡이야말로 '변화 속의 불변' 이라는 테마의 가장 훌륭한 구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끊임없이 변하는 변주 속에서,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그 주제를 찾는 것이 변주곡 감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나는 무엇보다도 변주곡이 재밌고 좋다.

작업이 생각보다 노가다 (가지고 있는 mp3 파일을 부분별로 쪼갠 다음, wma 파일로 변환하는 작업)인 관계로 시간이 좀 걸린다. 그러니 오늘은 조금씩만 맛보도록 하자.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테마 (굴드의 허밍이 들림)
마지막변주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
테마
26번째 변주 (변주에 변주를 거듭하다 여기까지 왔음)

모짜르트의 작은별 변주곡 (동요 - 반짝반짝 작은별임)
테마
제10변주 (사랑스런 모짜르트 ㅋㅋ)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 2악장
테마
제4변주 (빼어나게 아름다움)

브람스의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
테마
제3변주

재밌지 않은가?
빠진 것들은 틈틈이 올리도록 할테니, 음악공부도 하고, 음악감상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