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수학과 문명’ Category

그레고리안 달력과 수학

Thursday, February 5th, 2009

오늘 책에서 본 달력과 관련된 내용을 짤막하게 소개하려 한다.

천문학적인 관측을 통하면, 일년은 365일 5시간 48분 55초라고 한다. 이런 조건을 가지고 달력제작을 어찌하면 좋을까의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다.

분수로 환산을 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수학에서 연분수라는 개념을 사용하면, 저렇게 분모가 큰 분수의 근사값으로 분모가 작은 녀석들을 찾아낼 수가 있게 된다.

의 경우는, , , , , ... 로 근사를 해 나갈 수 있다.

1년은 대략 365일 + 4분의 1일 정도라는 것이다.

그래서 4년에 한번씩 하루를 더 넣어줘야 달력과 실제 해의 움직임이 크게 차이가 안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4로 나눠지는 해에, 2월이 29일인 윤년이 된 이유다.

그러나 이 계산을 보자면, 33년정도가 지나는 동안에는 8일정도가 더 붙게 된다는 것인데, 그러니까 4년에 1일 넣는 것만으로는, 33년 정도가 지나면 하루라는 큰(?) 오차가 생기게 된다.

33년이 365*8 더하기 8일 정도가 되므로, 100 = 33 * 3 + 1 , 400 = 33 * 3 * 4 + 4 라는 식을 활용한다면, 400년에는 8 * 3* 4 + 1 =97 일 정도가 더 필요해지는 것이다.

이 오차를 보정하기 위해서, 100년마다 윤년을 한번씩 건너뛰다가 400의 배수가 되는 해는 윤년으로 한다. 그렇게 하면 400년간 윤년을 97번 갖게 되는 것이다.

1700년, 1800년, 1900년 은 4로 나누어짐에도 2월이 28일까지 있고, 2000년에는 2월이 29일까지 있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그레고리안 달력이 바로 이 규칙을 적용한 시스템이다. 1582년부터 사용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를 실제값과 비교를 하자면, 대략 만년에 이틀 정도 오차를 만든다고 한다.

이집트인들은 일년이 365일 정도라는 것을 알았고, 씨저 때부터 4년에 한번씩 윤년을 집어넣는 율리우스 달력을 사용하다가, 교황 그레고리가 수백년간 쌓인 오차를 보정하기 위해 16세기에 행한 개혁이라 한다.

그레고리안 달력에 대해서 더 알고 싶으면, http://en.wikipedia.org/wiki/Gregorian_calendar 를 클릭.

암튼 우리가 살면서 옛사람들의 빚을 지고 있는게 참 많다. 이런걸 그 옛날에 다 어떻게 알았을꼬...  365를 알아내기 위해, 얼마나 걸렸을 것인고 ㄷㄷㄷ

링크와 네트워크의 과학 - 21세기 화엄론

Tuesday, March 25th, 2008

'세상 참 좁다'

6명만 건너면 세상 어느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다는 소위 '6단계 분리의 법칙'이라 불려지는 네트워크의 링크 분포에 대한, 우리 어른들의 경험적 통찰이다. 18세기의 수학자 오일러가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문제를 풀면서 탄생한 그래프 이론은 이러한 현대 네트워크 이론의 언어를 제공해 준다. 훌륭한 수학교양서적이라 할 수 있는 링크 - 21세기를 지배하는 네트워크 과학는 그 도입부에 랜덤그래프 이론을 창시한 20세기 수학자 에르디시를 언급한다.

'여론이란 도대체 어떻게 형성되어 어떻게 전파되는 것일까'하는 전통적으로 사회과학에서 다루어져 온 문제는 , 이제 심리학 더하기 네트워크의 과학적 이해를 요청하는 문제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더 잘 이해하게 되면, 과연 인류의 문제해결능력이 향상될 수 있을까.

불교의 화엄론은 이미 오래전에 이러한 네트워크에 대한 통찰에 있어 높은 수준에 올라섰다. 이 깨달음이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관계적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화엄론을 쉽게 설명하기 위한 아름다운 비유들이 있다.

누각을 보니 크고 넓기가 한량없어 허공과 같고 아승지 보배로 땅이 되고, 궁전과 문과 창문과 섬돌과 난간과 길이 모두 칠보로 되었으며, 아승지 번기와 당기와 일산이 사이사이 벌여 있고, 아승지 영락들이 곳곳에 드리웠으며, 아승지 반달. 비단 띠. 보배 그물과 장엄하였고, 아승지 보배 풍경이 바람에 흔들려 소리를 내며 하늘꽃을 흩고, 하늘보배로 된 화만띠를 달고 보배 향로를 괴고 금가루를 비 내리고, 보배 거울을 달았고, 보배 등을 켜고 아승지 보배 옷을 펴고, 보배 휘장을 치고, 보배 자리를 깔고, 비단을 자리 위에 펴고, 염부단금 동녀 형상과 아승지 보배 형상과 묘한 보배로 된 보살형상이 가는 곳마다 가득찼으며, 아승지 새들은 청아한 소리를 내고, 아승지 보배꽃으로 장엄하고, 아승지 보배나무는 차례로 줄을 지었고 마니 보배가 큰 광명을 놓아, 이렇게 한량없는 아승지 장엄거리로 장엄하였다.
또 그 가운데는 한량없는 백천 누각이 있는데, 낱낱이 훌륭하게 꾸민 것이 위에 말한 바와 같고, 크고 넓고 화려하기 허공과 같아서 서로 장애하지도 아니하였다. 선재동자가 한 곳에서 모든 곳을 보듯이, 모든 곳에서도 다 이렇게 보았다. (한글지송화엄경-입법계품-52) 미륵보살(彌勒菩薩) )

인드라망은 불교의 연기법을 상징적으로 표현해주는 말입니다.

인드라(Indra)는 본래 인도의 수많은 신 가운데 하나로 한역하여 제석천(帝釋天)이라고 합니다. 신력(神力)이 특히 뛰어나 부처님 전생 때부터 그 수행의 장에 출현하며 수행을 외호(外護)하는 신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제석천의 궁전에는 장엄한 무수한 구슬로 만들어진 그물(=인드라망)이 있다고 합니다.

제석천 궁전에는 투명한 구슬그물(인드라망)이 드리워져 있다. 그물코마다의 투명구슬에는 우주삼라만상이 휘황찬란하게 투영된다. 삼라만상이 투영된 구슬들은 서로서로 다른 구슬들에 투영된다. 이 구슬은 저 구슬에 투영되고 저 구슬은 이 구슬에 투영된다. 작은 구슬은 큰 구슬에 투영되고 큰 구슬은 작은 구슬에 투영된다. 동쪽 구슬은 서쪽 구슬에 투영되고 서쪽 구슬은 동쪽 구슬에 투영된다. 남쪽 구슬은 북쪽 구슬에 투영되고 북쪽 구슬은 남쪽 구슬에 투영된다. 위의 구슬은 아래 구슬에 투영되고 아래 구슬은 위의 구슬에 투영된다. 정신의 구슬은 물질의 구슬에 투영되고 물질의 구슬은 정신의 구슬에 투영된다. 인간의 구슬은 자연의 구슬에 투영되고 자연의 구슬은 인간의 구슬에 투영된다. 시간의 구슬은 공간의 구슬에 투영되고 공간의 구슬은 시간의 구슬에 투영된다. 동시에 겹겹으로 서로서로 투영되고 서로서로 투영을 받아들인다. 총체적으로 무궁무진하게 투영이 이루어진다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이 비유는 화엄종의 제 삼조(三祖)인 법장(法藏)이 측천무후(則天武后)에게 들려주었던 ‘거울로 도배된 방’의 모습과 같은 것이다. 츠앙, 화엄철학, 73-75쪽 참조.

천장도 바닥도 모두 깨끗한 거울로 도배된 방 한 복판에 불상과 횃불이 놓여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한 마디로 환상적일 것이다. 모든 거울 안에는 다른 거울 안에 비취고 있는 불상과 횃불이 다시 비쳐지고 있다. 그것도 끝없이..... 거기에다 맑은 수정공을 하나 더 두었다고 하자. 그 수정으로 된 공 안에는 모든 거울에서 반사해내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들어가 빛난다. (온통 얽힌 세상 - 불교적 관계론)

부처는 개개인이 이러한 상호의존의 원리를 깨달을 때, 세상이 바뀔 것이라 보았다. 부처가 말했던 자비심이란 바로 이 깨달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현대의 네트워크의 과학은 과연 인류에게 이를 넘어서는 수준의 가르침을 줄 수 있을까.

수학의 대중화를 생각한다 (3)

Saturday, February 9th, 2008

개인의 수학에 대한 인식 및 태도가 대부분 학창시절에 결정된다면, 수학의 문화적 토대를 가꾸고, 수학의 대중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내가 보기에는 바로 중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다.

도구로 수학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수학에 대한 지식 그 자체로 밥을 벌어 먹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수학과 계열에 몸을 담고 있으며, 연구 활동을 주로 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하나는 중고등학교 수학선생님들과 같이 수학교육과 계열로, 수학 교육의 활동에 주력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돈을 제일 많이 벌고 있을 학원강사님들은 여기서 제외.

나는 '수학이 아름답다'라는 표현을 대학교에 가서야 처음 들었다. 많은 수학과의 교수들과 수많은 수학책들은 수학이 아름답다는 말을 매우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한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학창시절 내내 수학에는 남들보다는 좀더 많은 호기심을 가졌을 나였지만, '수학이 아름답다'라고 하는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법한 괴이한 표현을 했던 단 한 명의 사람이 생각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말했던 사람이 실제로 없었던 것 같다.
왜 이 말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은 한번도 들을 수 없었던 것일까?

이 사실은 수학과와 수학교육과가 가진 어떤 문화적 차이 및 소통의 장벽을 암시한다. 일반적으로 교수를 교사보다 사회적 지위에서 더 높이 쳐주는 사회의 인식 때문일까? 어쨌든 이 사실은 사회내에 바람직한 수학적 토양을 가꾸는 데 있어서는 재앙에 가까운 일이다. 수학이 창조되는 현장이 수학을 가르치는 사람들과 괴리되어 있고, 수학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문화적 토대를 구축하는 일에 소홀하다면, 이 나라는 언제까지나 문제의 해결없이 이공계의 위기만 말하는 학문의 수입국에 머무를 것이다. 학계에서 수학의 연구를 진행하는 사람과 현장에서 수학을 교육하는 사람들의 대화 채널을 만들 필요가 절실하다.

수학의 대중화를 활발하게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이런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수학과나 수학교육과에서 수학 교사들을 대상으로한 석사학위 수준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사실 보통 대학의 석사 학위라는 것은, 거의 아무데도 쓸데없는 아무도 읽지 않는 논문 하나 쓰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렇다면 석사 학위 정도는 사람들이 읽을만할 수 있는 책 하나를 쓰는 것 정도로 주어도 큰 문제가 없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1-2년 정도면 가능할 것이다. 교사들에게 안식년이 있다면 좀더 현실성이 있을 것이다.

학위의 결과물이 교육현장에서 더 나아가, 사회에서 유통되는 것은 장려할 만한 일이다. 대학의 정식 프로그램에서 이를 실행한다면, 타학과에서 획득해야 하는 이수학점 같은 것을 두어, 더 폭넓은 학제간 주제를 다루는 것도 가능해 질 것이다. 품질도 대학에서 일정수준 이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연구를 업으로 삼는 대학과 중고등학교 교육 현장, 더 나아가 사회 사이의 수학을 위한 대화의 창구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교사의 입장에서는 학위도 얻고, 또한 결과물이 가져다줄 개인적인 경제적 이익, 사회적 이익을 고려할때, 여러가지 동기 부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을 몇년만 꾸준히 성실하게 실행하면, 수학적 담론의 생산에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좋은 토대가 될수 있지 않을런지.

수학의 대중화를 생각한다 (2)

Saturday, February 9th, 2008

수학의 대중화를 생각한다 의 후속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수학에 대한 인상이나 태도라는 것은 결국 그들의 수학적 경험의 전부일 학창시절에 의해 결정될 것이고, 이러한 하나하나의 마음이 모여 한 사회의 수학에 대한 입장이 되고, 사회 내에서 수학의 문화적인 위상이 결정될 것이다.

현재의 중고등학교 수학교실은, 너무나 편협한 입시용 문제풀이의 기술 전수에 치우쳐 있다. 기술의 전수는 그 중요성에 있어 두번째의 문제이다. 가장 중요한 첫번째 문제는 수학에 대한 사회의 마음을 다듬어 가는 것이다. 수학이라는 학문이 얼마나 인류에게 있어 가치있는 도전의 영역이 될 수 있는지, 근대 세계를 만드는데 있어 수학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기술과 문명의 진보를 수학이 어떻게 지탱해 주고 있는지, 수학이 수많은 다른 분야의 인간의 활동에 영향을 미쳐왔는지를 알려 주어야 한다.

물론 공교육의 첫번째 목표라 할 수 있는 이 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민주시민을 길러내기 위한 ‘의심하는 정신’과 ‘주의 깊은 사색을 거쳐, 균형있는 근거를 찾아내어 얻어진 것이라면, 그 결론이 아무리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르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것이다.

피타고라스가 음정 속에서 수의 비례를 발견했을 때의 그 놀라움과 감동의 순간을 생각해 보자. 기타줄의 절반의 위치를 짚으면, 한 옥타브가 올라가고, 3분의 2지점을 짚으면, 도가 솔로 높아지는 이 수학적 사실을 음악하는 사람은 알 필요가 없는가? 현실 세계에 있는 대부분의 원들은, 그것을 정면으로 쳐다보지 않는한, 우리의 눈에는 행성의 운동이 그리는 곡선과 똑같은 타원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원근법을 배우는 학생이라면 알아야 할 것이다. 문과라서, 혹은 예체능계라서 수학에 대한 이해가 없어도 된다는 주장은 용납될 수 없다. 기술로서의 수학이 아닌 교양으로서의 수학은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과학을 기념하는 북한의 우표들

Saturday, January 26th, 2008

수학에 관련된 세계 각국의 우표들을 모아놓은 Stamping through Mathematics 라는 책을 재미로 보고 있었는데, 뉴턴과 관련된 장에서 다음과 같은 북한의 우표를 발견했다. 두둥!!

이런 표현도 아마 북에 이로운 발언으로 평가할 수 있으므로, 국가보안법 위반일수 있겠지만. 나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 이거 멋지다

호기심이 생겨 구글 서치 가동. 이미지의 출처는 아래의 사이트들.
Physics-Related Stamps
Isaac Newton on Postage Stamps
Images of Mathematicians on Postage Stamps
Meteorite Stamps and Coins

그럼 북한의 과학 우표 콜렉션 시작 두둥!!!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