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사색’ Category

삼단논법에 20% 여유 두기

Thursday, December 3rd, 2009

다음은 예전에 "이제 당신 차례요 미스터 브라운 - 영국 노동당이 다시 이기는 길" (앤소니 기든스 지음 | 김연각 옮김,인간사랑,  2007-09-20) 를 읽던 중 인상깊었던 구절이다.

환경운동이 현대성에 대한 낭만적 비판에서 성장하였기 때문에 항상 환경운동은 한도를 설정한다는 생각, 무언가 줄인다는 생각과 연결되어 있다. 이런 생각은 일상생활에서부터 문명을 거부하는 철학과 맞닿아 있다. 최근 영국의 유명한 환경운동가 한 사람이 "스포츠가 어떤 방법으로 지구를 죽이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이 사람은 자동차 경주가 기후변화를 줄이는 것과 정면충돌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기장 건설과 항공여객의 대폭 증가를 동반하는 것이라면 올림픽 경기도 폐지되어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관중들에게 경기장에 가지 말고 집에서 TV로 스포츠 경기를 보라고 권해야 한다. 이 사람은 또 아주 진지한 태도로 가장 좋은 스포츠, 가장 쉬운 스포츠는 동네 공원에서 프리스비 던지기라고 한다.

나는 자동차 경주 팬이 아니며 자동차 경주에 대하여 특별히 아는 바도 없다. 그렇지만 자동차 스포츠 분야에서 개발된 기술이 보통 사람들이 타는 자동차의 연비를 향상시키는 데 있어서 다른 어느 요인보다 더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기술의 발전과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고 매우 복합적인 것이다. 229p

삼단논법에 기초한 딱 부러지는 논리적 사고도 중요하겠지만, 진리를 독점하지 않으려는 유연한 사고도 역시 필요하다. 직선으로만 가려면 주변을 못본다. 생각에 여백을 두자.

자신의 위치에서 진보를 행하고 지도자가 되기

Wednesday, October 14th, 2009

이 사람은 박해를 받을 것이다.
그것도 잘아는 주변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손가락질을 받겠지.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진정으로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스스로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이런 정도의 용기를 필요로 할 것이다.
나는 옆사람의 비난과 조롱을 견딜수 있는 용기가 바로 지도자의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에 대하여

Monday, October 12th, 2009

정치에 대하여 생각한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더욱 뜻 깊고 위대한 일이에요. 좋은 정치를 편다면 몇 천만 국민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으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중에 그만큼 고귀한 게 어딨겠어요? 그래서 다른 직업보다 고양된 심성과 통찰력, 책임, 용기, 희생을 요구해요. 성인의 고귀함이 있는 영역이죠. 근데, 정치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짐승의 비천함이 있어요. 야수적 탐욕도 함께 있고요. 그래서 하루하루가 너무나 괴로워요. 정치를 하려면 국회의원직을 유지해야 하니까 효도잔치 가서 노래하고 초등학교 총동문체육대회 가서 텐트마다 돌며 소주 먹고 하는 거죠. 그런 일을 즐기는 정치인도 있으나 그런 사람은 성인의 고귀함에 도달하기 어려워요. 반면 정치에서 고귀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런 일상이 괴로워요.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기 위해 야수적 탐욕을 상대하며 짐승 같은 비천함을 감수하는 일, 절대 아무나 못하는 거예요. (유시민 인터뷰, 시민광장, 2009-6-10)

나는 저 유시민 장관의 괴로움을 이해한다. 아마 노무현 대통령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서민정책이라고 시장에 종종 가서 사진찍는거 좋아하는 이명박님이 계시는데, 사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기간 이러한 것을 가능하면 피하려 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생색내기 쇼보다는,  정말로 그 사람들을 위해 펼치는 정책이라고 봤기에...

나중에 듣기로는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직후에 봉하마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도, 처음엔 밖으로 나가서 인사하고 그러는 것이 필요한 일일까(가령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고민하면서 좀 망설인 것들이 있다고 안다. 그런 생각을 달라지게 한 것은 그곳에 아이들도 찾아왔다는 것...

한국 정치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문제는 대중들이 옳은 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듣고 싶어 하는 얘기를 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래 문장의 철학자를,  정치인으로 바꿔 읽으면 대략 적절할 것이다.

당신이 철학자가 되고 싶다면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합리적인 정당화와는 무관한 믿음의 세계 속에서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과 어떤 한 사람의 믿음의 세계는 다른 사람의 그것과는 일치하지 않기가 쉽기에, 그 둘 다가 옳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의견은 보통 그들의 마음에 편한 쪽으로 형성된다. 진실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두번째 고려 대상이다.

The first thing to realize, if you wish to become a philosopher, is that most people go through life with a whole world of beliefs that have no sort of rational justification, and that one man's world of beliefs is apt to become incompatible with another man's, so that they cannot both be right. People's opinions are mainly designed to make them feel comfortable; truth, for most people is a secondary consideration.

2p, The Art of Rational Conjecture, The Art of Philosophizing: and Other Essays by Bertrand Russell

http://books.google.co.kr/books?id=oEoi0HnF7j0C&pg=RA1-PA535&dq=russell+The+first+thing+to+realize,+if+you+wish+to+become+a+philosopher&source=gbs_toc_r&cad=7#

좋은 정치가 실현되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기준은 결국 그 조건 아래서 얼마나 옳은 것에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되겠다. 그 불일치가 괴로운 사람들에게 정치란 형벌일 수밖에 없다. 수학이야 말귀를 못알아들으면 못알아듣는 쪽이 부족한 것이라 하면 그만이지만, 정치는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그가 짐승의 비천함을 말하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위장전입에 대한 궁금증

Tuesday, September 15th, 2009

먼저 본인은 위장전입에 대해서 별로 아는 바가 없으며, 위장전입 위반 사례까지 있는 사람임을 밝히는 바이다.
무지는 용서가 안 되는 것이지만, 아무튼 이렇게 인간의 도덕성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인줄 몰랐다.

국가법령정보센터의 '주민등록법' 을 찾아보면, 이 법은 1962년 5월 10일 제정되었고, 그 제정의 이유라는 것은 이렇게 서술된다.

주민의 거주관계를 파악하고 상시로 인구의 동태를 명확히 하여 행정사무의 적정하고 간이한 처리를 도모하려는 것임.
①주민등록에 관한 사무를 시장 또는 읍·면장이 관장하도록 함.
②등록대상자는 30일이상 거주할 목적으로 일정한 장소 또는 거소를 갖는 자로 함.
③등록사항을 정하고, 등록은 그 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14일이내에 하도록 함.
④세대이동등의 신고는 구술 또는 서면으로 하도록 하고, 신고된 내용이 사실과 상이한 때에는 그 사실을 조사하도록 함.
⑤기류법을 폐지함.

체계적인 국가행정이 군사적 효율성을 가진 권위주의 정부하에서 시작되다 보니, 민간에 대한 국가의 권한, 개입, 통제같은 것이 너무 크지 않았나 생각된다.
개인적인 것들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저 1962년에 제정된 주민등록법이라는 것도 그 목적이 결국은 행정편의주의와 민간에 대한 간섭과 통제 목적이 주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장전입은 매우 중요한 도덕성의 잣대이므로, 이런 질문이야 이 시대엔 참으로 하찮은 것들이겠지만, 나는 몇가지 궁금한 점들이 있다.

한 개인이 어디에 사는가 하는 것에 대한 오랜 기록을 국가가 가져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덧붙여 왜 국가가 사람이 누구랑 결혼해서 누구랑 사는지 그 기록을 다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다른 나라도 국가가 개인에 대해서 저정도 정보를 가질까?

나에겐 간통이니 하는 문제처럼 철저하게 개인적인 문제에, 판관으로 존재하는 국가의 문제와 동일선상에 있는 질문들 같다.
이런 것들은 개인과 시민사회, 국가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들이 필요한 질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전에 딴나라당이 그럴때는 원래 이것저것 꼬투리 잡아서 떼쓰는 게 업인 사람들이니 그러려니 했다.
현 상황에 대한 물타기라기보다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고민은 좀 필요없는 것일까?

생각과 고민이 짧다고 여겨진다. 지혜를 구하는 바이다.

검사와 판사

Saturday, September 12th, 2009

국정감사 시즌이 시작되나 봅니다. 아래의 두 기사가 모두 날짜가 비슷하잖아요?


이런 기사가 나왔네요.

검찰이 지난해 각종 공안사건과 권력형비리 사건을 처리하면서 법원의 충분한 공감을 얻을 만큼의 증거수집을 하지 못해 무죄를 선고받는 사례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檢 무죄율 급등…검찰개혁 새 이슈될 듯, 정순식, 헤럴드경제, 2009-09-13)


성급한 당신은 아마도 여기서 또 이명박 ㄳ 하면서 열불이 나겠지요. 물론 그러한 측면도 있겠지요.


그런데 예전에 나온 이런 기사는 어떨까요? 

올 상반기 '검찰 과오' 무죄판결 급증, 이진희, 한국일보, 2003-09-14

그러면 이번엔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두 기사를 다 읽어보면, 두 기사에 모두 '공판중심주의' 라는 단어가 나오지요...


옛 기사 한번 또 볼까요?


C검사 수사권 조정이나 사개추에서 공판중심주의 한다는 것 모두 형사사법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큰 사안들이다. 그에 대해서 좀더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한데 졸속으로 이뤄지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이 시스템들은 50년 이상 운용해왔는데, 사개위에서는 증거법의 관련 조항 몇 가지를 바꾸는 것으로 논의되다가 갑자기 사개추에서 형사사법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꾀하고 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형국이다. 절차상의 하자가 분명히 있다. 형사사법 구조는 지향하는 목표가 있다. 치안질서를 유지하고 범죄로부터 사회 구성원을 보호하는 과정에서 ‘공정성’과 ‘효율성’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영미식 공판중심주의가 대세인 측면도 있다. 조서 중심의 수사가 밀실수사나 고문수사를 불러온 적도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지금은 과거와는 다르다. 미국이 순수한 의미의 공판중심주의를 채택하고 있다고 해서 범죄율이 낮고 치안질서 유지가 잘되나. 조서를 증거로 채택하는 일본과 우리나라를 보자. 일본만큼 치안질서 유지되는 나라도 별로 없다. 그렇다고 일본의 형사 구조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말할 수 있나.

(...)

형사 사건은 경찰→ 검찰→ 법원의 순으로 처리된다. 검찰이 최근 사면초가에 몰렸다는 점은, 형사 사건을 다루는 나머지 두 축이 검찰의 권한을 나눠가지기를 바라는 데서 잘 드러난다. 경찰과의 수사권 조정, 공판중심주의 문제 등은 모두 검찰과 법원, 검찰과 경찰 사이의 권한 배분 문제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서도 검찰이 가장 심각하게 보는 문제는 공판중심주의를 채택한 사개추위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이다. 범죄를 입증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 두 가지를 없앴기 때문이다. 즉, 피고인이 부인할 경우 검사가 작성한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부인하고, 검사가 하는 법정에서의 피고인 신문을 못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검찰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김종빈 검찰총장은 4월27일 기자간담회에서 “사개추위 안대로 가면 공수처니 경찰과의 수사권 조정이니는 문제도 안 된다”며 “수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지는 것”이라며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
노 대통령이 이날 법무부 간부들에게 한 말 가운데 가장 자주 쓴 표현이 “버리라”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쓰기도 했다. 이런 식이다. “정치적 요령 하나를 제가 제안해보겠습니다. 버리는 것입니다. 버리는 것입니다. 검찰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것 중에서 국민들이 의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버리는 것입니다.” 도대체 뭘 버리라는 걸까. 그는 또 이런 말도 했다. 법무부에 대한 신뢰는 아직 위험 수준이다, 특단의 결단을 해야 한다, 저항을 하면 노엽게 살게 되고 마지막엔 불명예스러운 이름만 남는다는 등의 얘기다. 결국 노 대통령의 말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보면 이렇게 된다. ‘법무부와 검찰이 신뢰를 회복하려면 특단의 노력, 즉 불필요한 권력을 버려야 한다.’ 이에 비춰보면 사개추 관련 논란은 검찰에 대한 참여정부의 철학인 ‘검찰 권력의 문민 통제’가 가시적인 제도화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검찰에 대한 원칙은 처음부터 일관됐다”면서 “그것은 정치적 독립은 주되, 그러면 무소불위가 될 수 있는 만큼 내·외부 견제를 강화하자는 것이었다”고 말해 이런 관측을 뒷받침했다. (종이고양이 검찰 못해먹겠다, 김창석, 한겨레21, 2005-5-6)


'노무현 도대체 뭐했냐' 

계속 그렇게 싸우고 있었던 거지요.

검사와 판사라는 엘리트 간의 견제와 균형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검찰 수사가 아니라, 재판의 결론이 더 관심받고 존중받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그러면 결국 무죄추정의 원칙이라고 하는 인권의 명제가 더 존중받는 나라가 되는 거니까.


기자들 수준이 높아지는게 중요하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앞으로, 검찰수사보다 판결문, 검찰총장보다는 대법관 임명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집시다.

이것도 그가 남겨준 가르침의 하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