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October, 2009

2009년 5월 그의 '추가진술 준비'

Thursday, October 22nd, 2009

무언가가 잘못되어 그 원인들을 되짚을 때, 그 원인들을 둘로 나눠보곤 한다. 일이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었던 부분과 할 수 없었던 부분.
대부분의 어리석은 사람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이 '자신이 할 수 있었던 부분'을 간과하고 '자신이 할 수 없었던 부분'을 남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여기서 시작되는 다른 사람에 대한 원망이 바로 수많은 불행의 씨앗이 된다.
그런데 사실 무언가를 돌이켜보면 돌이켜볼수록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부분' 에도 어쩌면 내가 할 수 있었던 부분이 또 있었음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사람이 큰다는 것은 바로 그런 순간들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한국에서 보내준 '내마음속 대통령' 책을 읽었다.
그의 마지막 날들에 대한 부분들이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조카사위인 정재성 변호사의 말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원래 여사님과 대통령님 사이는 좋은 편인데, 대통령님이 경상도 남자 아닙니까? 평소에 경상도 남자들이 그렇듯 사소하게 여사님을 타박을 많이 하시는 편입니다. 평소 같았으면 꽤나 타박도 하시고 하셨을텐데, 그런데 이상하셨대요. 여사님 말씀에 의하면 이번 사건만큼은 대통령님이 아무런 타박도 안하셨다고 합니다. 오히려 안심을 시키고 위로하셨다고 합니다. 그즈음 대통령님께서 말씀하시길 '이게 다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내가 아내를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다 내 부덕의 소치다. 내가 좀 더 아내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내가 아내에게 경제적으로 믿음직했더라면 아내가 과연 이런 일을 했겠는가.' 하셨습니다.

그 5월, 책에 수록되어 처음으로 공개된 그의 미완성 증언.

[전문] 노무현의 최후진술... 서거 직전 글 중단(한국경제, 2009-10-07)

대통령이 된 본인과 주변 사람들 사이에는 가치관과 사명감,
책임감 이런 것이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친인척 관리라는 일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변 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하여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으니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형님까지는 단속이 쉽지 않았다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아내와 총무비서관의 일에 이르러서는 달리 변명할 말이 없습니다.

제가 대통령을 하려고 한 것이 분수에 넘치는 욕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국가적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꾼 지도자,
역사의 평가는 받는 지도자,
이 모두가 제 분수에 넘치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의욕이 저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라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았습니다.

마음으로 그들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원망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미안한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려는 욕심을 부리지만 않았더라면
그들이 지금 이 고초를 당하는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야망이 있어서 준비하고 단련해 왔지만, 그들은 아무 준비가 없었습니다.
아무 준비도 되지 않은 사람들을 위험한 권력의 세계로
제가 끌고 들어온 것입니다.

또 다른 원인은 제가 그들에게 경제생활에 대하여 신뢰를 주지 못한 결과일 것입니다.

아내는 오랫동안 이 문제에 관하여 불신과 불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그럴 만한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런 정황에 관하여는 추후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총무비서관은 퇴임 후에도 이른바 집사의 역할을 할 사람이
자기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총무비서관은 퇴임 후 대통령의 사적인 경제생활의 규모에 관하여
저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당연히 연금의 범위 안에서 생활을 꾸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총무비서관은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분수를 넘은 저의 욕심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저는 이제 남은 인생에서 해 보고 싶었던 모든 꿈을 접습니다.
죽을 때까지 고개 숙이고 사는 것을
저의 운명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사법적 절차의 결과가 어떤 것이든 이 운명은 거역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하 생략)

'대통령이 된 본인과 주변 사람들 사이에는 가치관과 사명감,
책임감 이런 것이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야망이 있어서 준비하고 단련해 왔지만, 그들은 아무 준비가 없었습니다.
아무 준비도 되지 않은 사람들을 위험한 권력의 세계로
제가 끌고 들어온 것입니다.'

그는 하루하루 긴장의 끈을 풀 여유도 없이, 그야말로 깨지면 죽는 살얼음판인 곳을 건너온 사람이었고.
우리가 익히 잘 알듯이 사람이 단순히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옆 사람이 가진 고민과 내면의 깊은 것까지 잘 알고 느끼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설사 그것을 알고 느낀다 해도, 그 깊이까지는 알기 어렵다.

'마음으로 그들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원망을 할 수가 없습니다.'

가장 인간적인 고백. 그러나 원망스럽지만 원망할 수 없다.
왜냐하면...

'또 다른 원인은 제가 그들에게 경제생활에 대하여 신뢰를 주지 못한 결과일 것입니다.
아내는 오랫동안 이 문제에 관하여 불신과 불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결단의 전날들에 도달하고 있던 마지막 결론인 것 같다. '자신이 옆사람에게 경제생활에 대하여 신뢰를 주지 못했다'
이것이 스스로 자신에게 내린 유죄판결의 이유였을까.

2009년 5월 23일 새벽 5시 21분 그는 컴퓨터 앞에서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고, 5시 26분에 1차로 저장, 5시 44분에 마지막으로 저장하고, 마지막 길을 나섰다.

자신의 위치에서 진보를 행하고 지도자가 되기

Wednesday, October 14th, 2009

이 사람은 박해를 받을 것이다.
그것도 잘아는 주변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손가락질을 받겠지.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진정으로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스스로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이런 정도의 용기를 필요로 할 것이다.
나는 옆사람의 비난과 조롱을 견딜수 있는 용기가 바로 지도자의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에 대하여

Monday, October 12th, 2009

정치에 대하여 생각한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더욱 뜻 깊고 위대한 일이에요. 좋은 정치를 편다면 몇 천만 국민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으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중에 그만큼 고귀한 게 어딨겠어요? 그래서 다른 직업보다 고양된 심성과 통찰력, 책임, 용기, 희생을 요구해요. 성인의 고귀함이 있는 영역이죠. 근데, 정치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짐승의 비천함이 있어요. 야수적 탐욕도 함께 있고요. 그래서 하루하루가 너무나 괴로워요. 정치를 하려면 국회의원직을 유지해야 하니까 효도잔치 가서 노래하고 초등학교 총동문체육대회 가서 텐트마다 돌며 소주 먹고 하는 거죠. 그런 일을 즐기는 정치인도 있으나 그런 사람은 성인의 고귀함에 도달하기 어려워요. 반면 정치에서 고귀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런 일상이 괴로워요.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기 위해 야수적 탐욕을 상대하며 짐승 같은 비천함을 감수하는 일, 절대 아무나 못하는 거예요. (유시민 인터뷰, 시민광장, 2009-6-10)

나는 저 유시민 장관의 괴로움을 이해한다. 아마 노무현 대통령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서민정책이라고 시장에 종종 가서 사진찍는거 좋아하는 이명박님이 계시는데, 사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기간 이러한 것을 가능하면 피하려 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생색내기 쇼보다는,  정말로 그 사람들을 위해 펼치는 정책이라고 봤기에...

나중에 듣기로는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직후에 봉하마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도, 처음엔 밖으로 나가서 인사하고 그러는 것이 필요한 일일까(가령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고민하면서 좀 망설인 것들이 있다고 안다. 그런 생각을 달라지게 한 것은 그곳에 아이들도 찾아왔다는 것...

한국 정치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문제는 대중들이 옳은 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듣고 싶어 하는 얘기를 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래 문장의 철학자를,  정치인으로 바꿔 읽으면 대략 적절할 것이다.

당신이 철학자가 되고 싶다면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합리적인 정당화와는 무관한 믿음의 세계 속에서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과 어떤 한 사람의 믿음의 세계는 다른 사람의 그것과는 일치하지 않기가 쉽기에, 그 둘 다가 옳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의견은 보통 그들의 마음에 편한 쪽으로 형성된다. 진실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두번째 고려 대상이다.

The first thing to realize, if you wish to become a philosopher, is that most people go through life with a whole world of beliefs that have no sort of rational justification, and that one man's world of beliefs is apt to become incompatible with another man's, so that they cannot both be right. People's opinions are mainly designed to make them feel comfortable; truth, for most people is a secondary consideration.

2p, The Art of Rational Conjecture, The Art of Philosophizing: and Other Essays by Bertrand Russell

http://books.google.co.kr/books?id=oEoi0HnF7j0C&pg=RA1-PA535&dq=russell+The+first+thing+to+realize,+if+you+wish+to+become+a+philosopher&source=gbs_toc_r&cad=7#

좋은 정치가 실현되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기준은 결국 그 조건 아래서 얼마나 옳은 것에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되겠다. 그 불일치가 괴로운 사람들에게 정치란 형벌일 수밖에 없다. 수학이야 말귀를 못알아들으면 못알아듣는 쪽이 부족한 것이라 하면 그만이지만, 정치는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그가 짐승의 비천함을 말하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시험문명

Monday, October 12th, 2009

시험문명 이라는 항목을 작성중이다. 시험을 잘 본다는 것으로, 사회에서 엄청난 특권을 얻는다는 문제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교육개혁부터, 공공부문 개혁, 사법제도, 외교관, 교원임용 등등 많은 부분에 걸쳐 있는 핵심적인 문제이다. 경쟁없는 과소시장의 문제 와도 직결된다.

시험이라는 것으로부터 평가할 수 있는 인간의 자질과 능력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일까?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천년전 한반도에 도입된 '과거제도'라는 그 당시로는 매우 혁신적인 제도에 기반한 문명이 지금껏 지속되어 왔다는 생각이다.

아무튼이러한 화두를 부여잡고, 과거제도에 대한 역사를 탐색하다가 미야자기 이치사다의 책 맨 마지막 페이지에서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1960년대에 쓰여졌다는 것을 고려하니 참으로 놀랍다는 생각이다.

중국의 과거제도는 그 이전에 존재했던 귀족제도의 대안으로 고안되었고, 일본의 학교제도는 봉건제도가 붕괴한 직후 주로 관리양성의 목적으로 설치되었다는 점에서 무언가 공통적인 면을 갖고 있다. 그리고 사회 저변에 근대적인 조건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는 점도 아울러 지적해야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오늘날 일본사회에는 아직도 매우 봉건적이고 전근대적인 요소들이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 특히 노동시장이 협소하기 때문에 종신 고용제가 사회 도처에서 시행되고 있는데, 바로 이점이 입시 지옥을 만들어 낸 사회적 기반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중국 전통시대의 관리는 전형적인 종신 피고용자이다. 관리가 되면 죽을 때까지 그 지위가 보장되는 반면 다른 일로 전업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러한 지위의 획득을 최종 목적으로 하여 과거라는 지난한 시험에 세상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다. 오늘날 일본도 이와 유사한 바가 있다. 종신 고용제이기 때문에 최종 학교의 졸업과 취업이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즉 한번 취직을 하게 되면 그 후로는 전업이 어려울 뿐 아니라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 놓인다. 재무부의 관리가 되면 평생을 재무부에서 보내고, 스미모토 회사에 입사하면 평생 스미모토맨으로 통한다고 하면 일생의 운명은 거의 졸업의 한순간에 정해지게 된다. 이점 과거와 서로 성격이 대단히 비슷하다. 따라서 졸업하고 취직하는데 가장 유리한 대학으로 서로 앞을 다투어 들어가려 한다. 또 그러기 위해서는 그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야 한다. 이리하여 고등학교를 위해서 중학교를 선택하고 중학교를 위해서 초등학교를 선택하며 초등학교를 위해서는 유치원을 선택한다고 하는 일련의 고달픈 경쟁 코스가 어느 사이엔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하여 선택된 한곳으로의 집중, 편재가 시험지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취업의 기회가 많아서 일생을 한 관청, 한 회사에서 보내는 사람이 오히려 이례적이며 심지어 무능력자라고 여겨진다. 이에 반하여 유능한 사람은 여기저기서 스카우트하려는 사람이 오기 때문에 좀더 유리한 조건으로 직위를 바꿀 수가 있다. 만일 이러한 사회 상황이라면 어느 누구도 무리해서까지 특정한 대학에 필사적으로 입학하려고 집착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일본의 시험지옥이라는 사회 현상의 근저에는 봉건제와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종신고용제가 놓여 있고, 이것이 일본 사회에서 진정한 의미의 인격의 자유, 취직의 자유, 고용의 자유를 빼앗고 있다. 이런 사정은 큰 관청, 대기업일수록 심하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곤란하다.
회사는 학교를 갓 졸업한 신입 사원을 뽑을 때 미리 평생 동안 고용할 의도로 충성을 요구한다. 그것은 인간적인 성실이 아니라 봉건적, 몰개성적인 충성이다. 만일 자기 일신상의 이유로 그 회사를 나오게 되면 배신자처럼 대우받게 될 것이다. 만일 훨씬 더 유리한 조건으로 고용하겠다는 고용주가 나타나면 의리나 인정을 내세워 극구 만유하려고 할 것이다. 이는 노동력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인격까지 산 것을 의미한다.
비단 회사만이 아니다. 가장 진보적이라고 하는 대학에서조차 교수를 정년까지 고용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일본사회의 완전한 근대화가 진정으로 시작될 것인가?
학생이라는 신분이 또한 종신 고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힘들게 입학한 학생이므로 조금도 공부를 안해도 졸업 연한까지 어떻게든 재학할 수 있으며 성적이 아무리 나빠도 적당한 선만 유지하고 있으면 졸업이 된다.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학교는 다만 입학하기 위해서 존재하며 거기서 공부하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조차 나온다. 좀더 비판적으로 말하자면 우수한 대학의 실체한 특별히 뛰어난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거기에 모여든 사람들의 우수한 자질에 힘입고 있음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종신고용제란 현실의 사회상황 위에서 발생했음에 틀림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이러한 실태로 놓아두어서는 사회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 현상의 타파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착수하면 좋겠는가? 나는 이것을 실업계에 기대하고 싶다. 왜냐하면 종신 고용제는 사실상 오늘날 일본의 사회 실태로부터 발생한 것이지만 그보다도 거기에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의 봉건적인 사상에 의해 운용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데 가장 실리주의적인 것인 실업계이다. 나는 실업계에서 나름대로 인재 선발 경쟁을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사회적으로 직업의 전환 자체가 별로 이상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기성 관념도 바뀌면서 현실의 불합리성이 점차 개선되어 갈 것이다.
또한 학교측도 단지 입학생을 받아 졸업시키는 것만을 능사로 여겨서는 안된다. 그보다 재학 중에 충분한 공부를 가르쳐 가령 어려운 시험을 치르고 입학한 학생이라도 그 수학 과정을 견뎌내지 못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다시 수학하도록 조처해야 한다. 동시에 충분한 공부를 시키기에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설비와 교수의 확보에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입학의 난관이란 수용 가능한 수의 절대적 부족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아직 전문화되지 않은 중등교육기관인 고등학교에서 나타나는 설비의 부족에 대한 해결책은 앞의 경우와는 약간 방법을 달리한다. 단 그 대답은 극히 간단하다. 원래 교육에 돈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설비가 부족하다는 것은 어쨌든 정치력 부재에 원인이 있다. 또한 그것은 학부모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세상의 부모들은 개인적인 부담, 예를 들면 자녀의 학원 공부 등에 들어가는 비용이라면 얼마든지 감수하지만 전반적인 교육에 대한 투자에는 대개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개인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실로 자기만 잘 되면 좋다는 과거 수험자의 태도와 같다. 결국 수험생의 친형제로서 개인적으로 격려하면서 가정 교사를 붙여주고 참고서를 얼마든지 사주며 수험장까지 따라갈 정도의 눈물나는 노력을 하지만 실은 이러한 부모들이야말로 의외로 시험지옥의 제조원인 것은 아닐까? 그들이 이러한 노력을 하면 할수록 시험지옥은 심하게 될 뿐이다. 그러나 만약 진실로 그들이 교육에 열심이라면 좀더 교육을 중요시하는 국회의원, 대통령을 선출하면 일단 결말이 날 것으로 생각한다.

중국의 시험지옥 과거(중국학술사상 15), 241p

  • 미야자키 이치사다,  청년사, 2001-04-24

경쟁시장, 신분이동, 교육개혁, 사회안전망 문제가 단순한 개혁 차원이 아닌 새로운 문명으로의 전환임을 발견한다.

7 x 5 = 35 부터

Monday, October 5th, 2009

과연 이 아이는 커서 무엇이 될 것인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