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위치에서 진보를 행하고 지도자가 되기

이 사람은 박해를 받을 것이다.
그것도 잘아는 주변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손가락질을 받겠지.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진정으로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스스로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이런 정도의 용기를 필요로 할 것이다.
나는 옆사람의 비난과 조롱을 견딜수 있는 용기가 바로 지도자의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6 Responses to “자신의 위치에서 진보를 행하고 지도자가 되기”

  1. 제 생각엔... says:

    지도자의 제일 덕목은 현실직시가 아닐런지... 즉, 세상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건 욕심에 불가하다는.

    지도자라는 건 다수를 이끌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가 납득실천할만한"(이게 가장 중요!!) 비전을 제시해주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옳은 주장이라도 자신이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란 것이죠.

    예를들어, 노무현 대통령의 비전이 전적으로 올바른 사고방식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면, 결국 대한민국의 다수의 국민은 쓰레기란 말인데요.. 위 명제상의 전제가 참인지 여부는 모르겠으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쓰레기 공화국이 싫다고 이땅의 주인인 쓰레기를 쫓아내려 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도덕적인 차원은 둘째로 하고서라도, 현실적으로 봐도 불가능 하다는 것이죠. 어떤 인간도 슈퍼맨이 될 수는 없을테니까요)

    그렇기에, 자신의 가고자 하는 최종 목표점의 옳음은 기본이요, 과연 내 방식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덕목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결론은,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기존의 도덕 관념에 너무 얽매이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죠.. 그런 도덕관념에 치우쳐서 돌아오는 건 결국 잦은 실패경험뿐(?)일테고.. 그런 훌륭한 인성을 갖춘 지도자들의 실패경험이 평범한 저같은 사람들에게는 더 큰 체념으로 돌아오게 되는 거 같습니다.

    p.s 조금 다른 얘깁니다만...
    이번주 한겨레21 기사 중에 진중권씨와 정재승씨가 안젤리나 졸리를 각각의 시각으로 평가하는 글이 있던데요. 진중권씨의 평가는 한마디로... 안젤리나 졸리는 "리무진 좌파"라는 거죠... 설명하자니 머리 아프고, 혹시 기회되시면 읽어 보셔도 좋을 듯...
    그래서 결론은? 님은 정치(경제)공부도 조금씩 꾸준히 하셔서 수학적으로 자신이 이룰 수 있는 최선을 이루시고 난 다음에는 꼭 정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2. 제 생각엔... says:

    용감한 소령님//
    뭐, 그럴일은 없겠지만, 저 소령님께서 제 댓글을 보시기라도 할 까봐, 답변을 추가합니다.

    위와 같은 댓글을 남긴 것은, 이 블로그상의 주인장이 말씀하신 지도자의 제 1 덕목에 대한 사견을 남기기 위한 것일 뿐이므로, 소령님의 이번 사건과는 하등 관련없는 발언이지요.

    결론은, 세상이 미쳐간다해도 역시 소령님같은 분이 계셔서 평형을 간신히 유지해가고 있지 않는가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3. 저는 반대 생각을... says:

    '지도자라는 건 다수를 이끌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가 납득실천할만한”(이게 가장 중요!!) 비전을 제시해주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도자는 조직의 이상향에 한발 한발 다가가도록 이끌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상에 대한 현실적인 '방법'을 제시하는것이지.. 현실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를들어 백범 김구선생의 경우 상하이에서 독립군을 이끌며 그 당시로써는 비현실적인 독립운동을 하셨지요. 현실적인 비전을 찾는게 올바른 지도자라면 완전히 정반대의 경우가 되겠습니다만 왜 수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많은 정치인들이 모델로 삼는 걸까요?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기존의 도덕 관념에 너무 얽매이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죠'

    도덕적인 것을 지향하지도 않는 사람의 애초에 올바른 목표를 세울 수 있을까요? 표면적으로는 그럴싸한 목표를 제시할 지 몰라도 궁극적인 목표가 조직의 이상이 아닌 개인적인 사리 사욕이나 이해관계의 만족이 아닐런지?

  4. 제 생각엔... says:

    저는 반대 생각을...님께 // 1. 현실적 비전 없이 현실적 "방법"의 제시라는 게 가능 한 것인지 우선 의문입니다. 땅없이 허공에다가 집을 지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2. 저는 김구 선생님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다 할 수 있으나, 제가 들은 지식(?)만으로 봤을 때 그분이 한 인간으로서 훌륭하신 분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독립운동이 비현실적이란 건(개인적으론 비현실적이라고만은 생각치 않습니다만) 님 말씀속에서도 들어났 듯, 우리나라의 독립에 핵심적인 요소는 우리 선조들의 자구적인 노력은 분명 아녔습니다.(핵심이라면 세계 열강들의 이권 다툼과 그 결과겠죠) 즉, 그분의 노력이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구요.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3. 김구 선생님께서 후손들에게 진정 존경을 받고 계시다고 생각하시나요?(님께서는 김구선생님의 어떤점에 대한 존경이신지 구체적으로 밝혀 주실 수 있습니까?.. 무엇을 그토록 본받고 싶으신지요?) 혹시 존경이란 의미를 너무 막연한 개념으로 사용하시고 계신게 아니신지요... 도대체가 진정으로 그분을 존경하고 계신분이 우리나라 사람 중에 몇이나 되냔 말입니다. 하물며 정치인들이 김구선생님을 모델로 삼는다는 건 우리 정치상황만을 놓고 봐도 결코 진실이라고 보여지지는 않습니다.

    4. 도덕 관념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는 의미가 도덕적인 것을 지향하지 말자는 곧 무시하자는 의미는 아닙니다. 인생이란 게 어떤 관념(도덕 등을 포함한..)에 기반해서 옳고 그름을 그렇게 쉽사리 규정지을 수 없다는 것이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얘기의 한 단면일 것입니다.(모든 사람에게 사회적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이론적인 도덕관념의 잣대를 적용한다면 아마도 님 부모님조차도 그저 사리사욕을 채우는 분으로 취급받기 쉽상 아닐까요?)

    5. 이런 예를 들고 싶습니다. 학교선생님의 덕목으로 보통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죠. 저는 이게 상당히 불만스럽습니다. 우리 교육현실을 보십시오. 과연 그런 엄격함 도덕잣대를 들이댄 교사들의 수준이란 게... 욕나오지요.(물론 모든 교사들이 그런 건 아니란 점 저도 잘 압니다.)

    현실적으로 도덕적 잣대라는 건 힘을 가진자들이(교장을 비롯한 교육계 지도잡급들) 그렇지 못한 교사들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밖에 사용되지 않은 것이 이제 것 현실 아닙니까?

    왜 이런 현상이 생긴다고 생각하십니까? 도덕적 잣대라는 게 애초에 너무나도 막연하고 광범위하기 때문입니다. 즉, 검증하자고 들면 한사람도 제대로 살아남기 힘든것이 도덕적 잣대이지요. 그렇다고 그 도덕적 잣대를 힘없는 사람이(말단 교사 등..) 기존의 힘을 가진 사람들에게도(교장을 비롯한 상관) 적용할 수가 있나요?

    세상사람들이 하나 같이 정직하다면 도덕적 잣대로 세상을 꾸려나갈 수 있겠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거 님도 잘 아실겁니다.

    군대문화도 마찬가지죠. 일개 병사들 사이에서도 상급자는 마음에 들지 않는 하급자에게 소위 말하는 FM을 들이대며 괴롭히고는 하는 게 군대문화입니다. 하물며 그 실체가 더욱더 모호한 도덕적 관념을 강화하면 할 수록 이 사회는 가진자가(상급자 등등) 그렇지 못한 자를 괴롭히는 수단으로 밖에는 이용되지 못한다는 건 역사가 말해주지 않습니까? 멀 게 갈 것도 없이 삼청교육대가 존재했던 전두환 정권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당시의 지금보다는 강했던 도덕적 잣대라는 건 결국 힘없는 약자를 길들이기 위한 수단 밖에는 되지 못했다는 건 너무나도 자명하지 않습니까?

    위와 같은 이유로 저는 되도록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최소한도로 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학교선생님은 어떻게 뽑으면 되는가? 간단합니다. 세가지만 체크하면 되지요. 우선 선생님도 대한민국 국민이니, 악질 범법 사유가 없어야 할테고.. 둘째 자기 과목에 대한 실력이 있어야 될테고.. 셋째 학생들의 성적을 공평하게 내야한다는 점 딱 이 세가지만 적용하면 된다는 것이지요.(이것들은 하나같이 실질적으로 파악이 가능합니다. 당연히 비교도 가능하구요. 즉, 상급자든 하급자든 이 규칙에 따라서 상벌을 적용하는 구조로 만들자는 것이지요) 이외의 어설픈 도덕적 잣대로 선생들을 괴롭히지 않는다면 기존의 힘있는 자가 사람들을 모아서 허위 사실로 사람을 병신 만들어 학교를 그만두게 만든다든지 그런 일은 최소한 없어지겠지요(학교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 하지 않습니까? 최소한 이런 소문 등의 무언의 압박이 겁나서 할말 하지 못하고 쥐죽은 듯 지내는 선생들이 너무나도 많죠)

    6. 그래도 도덕젓 잣대의 빈자리에 대한 허전함을 느끼실 수 있을텐데요. 그럼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죠. 여기 A, B 두 수학선생이 있습니다. A: 수학실력이 무척 좋은 그러나 여자관계가 복잡한 선생 B: 수학실력이 학생들을 가르치기 겨우 낙제점을 면하는 그러나 이외의 모습에서는 인간 좋다는 평가를 듣는 선생

    님 논리대로라면 B선생이 더 수학선생으로 적합하다고 생각드시겠지요. 그러나 저는 A선생을 택하겠습니다. 우선 기본적으로 인성교육이란 건 부모가 제일 우선이지요. 그걸 선생한테 맞기면서 선생의 사생활까지 간섭하는 것은 학생들의 인성을 위해서라기 보다는(효과를 봐도 그렇게 보기는 어렵죠.-한두명의 예외를 일반화해서는 안되겠죠) 선생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밖에는 안될테구요.

    무엇보다 중요한 진리는, 성과를 내는 사람치고(물론 공정한 과정(시험 등)을 거친) 도덕적으로 하자있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입니다. 즉, 수학실력이 무척 뛰어난 선생이 여자관계가 문란하긴 힘들다는 것이지요. 생각해보십시오. 그가 천재가 아닌이상에야(천재는 흔치 않아서 천재지요) 누구나 똑같은 하루 24시간을 여자만나는데 상당시간을 허비하고도 어떻게 수학실력이 뛰어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말 주변이 없다보니 두서없이 글이 쓰여져 글읽기 피로한 부분은 분명 있을 것이라 예상되나, 상식적인 수준의 얘기니 이해하시는데는 큰 지장 없으실 거라 믿습니다.

    7.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언급하지요. tv에서 알려진 위의 소령님을 포함한 사회적으로 공익을 위해 용감한 행동을 보여주신 분들의 말로가 어떤지 한 번 떠올려 보시지요. 하나같이 근무태만(막연한 도덕적 잣대적용) 등의 말도 안되는 잣대로 사람을 한 순간에 병신 만드는 사회가 우리 사회입니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결정적 이유는 어떤 사안이 있을 때 그 사안을 두고만 옳고 그름을 따져야하는데, 힘있는 자들이 불리할 때마다 기존 사안에 다른 사안을 물타기 하는(대표적 방법이 도덕적 잣대) 식으로 사회의 주요안건들을 자신의 이속을 챙기는데 사용해왔기 때문이라 봅니다.

  5. 제 생각엔... says:

    저는 반대 생각을…님께 // 아래와 같은 반론 제기 되지 않을까 생각되어 한 말씀 더 남깁니다.

    " 그럼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판검사된 애들의 비도덕성은 어떻게 설명할래?"

    우선, 한가지 묻고 싶습니다. 그들이 비도덕적인지 실질적으로 확인을 해보셨는지요?(개인적으로 저희집한에는 사자들어가는 사람 근처에서 일하는 사람도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_ _;)

    그들이 이슈의 중심에 있다보니, 그들의 도덕성이 도마에 오를 뿐 실질적으로 한국인들의 평균도덕성(이런게 과연 검증이 가능하다고 보여지지는 않지만, 가능하다면) 보다 결코 낫지는 않을거라 감히 확신합니다.

    도덕성이 높다는 것은 쉽게 말해 착한 사람이란 말이죠. 그런데 이 개념이 또 매우 모호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보통은 어떤식으로든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 사람의 착함정도를 무의식중에라도 판단하기 마련이지요.

    그럼에도 어떤 객관적이라 할 만한 하나의 요소를 생각해보자면, 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걸 참을 수 있는 사람, 하기 싫은 것도 할 수 있는 사람" 즉, 인내력(자기통제력)이라 할 수 있지요. 착하다고 말할 수 있는 개념 중에서는 아마도 저 인내력이 빠질 수 없을 것입니다.(이래도 허 저래도 허 식의 사람 좋다는 평가는 제가 생각하는 착하다는 개념과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인내력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판검사들은 검증받은 사람이란 말이지요.(사법고시가 좀 힘듭니까? 보통의 자기 통제력 없이는 합격이 불가능한 시험 아닙니까?!) 즉, 그들이라고 해서 근본적으로 사이코페스가 아닌이상에야 다른 부분은 우리 일반 사람들과 대등할 것이고, 그렇다면 그들의 특출난 인내력 때문에 도덕성에 대한 평균지수는 올라 갈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건 자신을 위한 인내력 아니냐'며 반론을 제기 하실지 모르겠으나, 한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자신을 위한 일에서도 인내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이 타인을 위해서 (간헐적인 인내력 등의 같잖은 인내력말고요) 진정한 의미의 인내력을 발휘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왜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여전히 남겠습니다만... 제 생각엔 중고등학교 때 배운 '개인적으론 이타적인 사람도 그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는 이기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원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그 원리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역시 어설픈 도덕적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기 때문이지요.(도덕적 잣대를 엄격히(?) 적용하는 집단이 또 검경아닙니까?) 검경사회라는게 한번 상급자의 눈에서 벗어나면 순식간에 좌천이 된다든지.. 그러지 않습니까? 역시 그런 죄천이유에는 항시 근무태만이라든지 부도덕성을 적용시키고는 하지요.)

    p.s 결론이 안나네요 그냥 그렇습니다. 벌써 오래전에 올리신 글이라 읽으실일도 없을 거 같습니다만.. 혼자 주저리주저리...

  6. pythagoras says:

    제 생각엔.../ 긴 글 남겨주셔 감사합니다. 저는 도덕성을 너무 과도하게 강조하는 한국같은 부도덕한 사회를 좋게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도덕성보다 위선의 문제로 눈을 돌리면 좋겠다고 생각하지요. 지도자의 현실감각이란 당연히 그 중요성이 첫째겠지요.

    제가 이 글에서 저 해군소령님을 소개한 것은 사람의 용기와 관련된 것이었구요. 지도자의 자질을 언급한 것은, 지도자를 어디서 다른데서 구할 것이 아니라, 각자가 저렇게 자기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잘못된 것들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