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문명

시험문명 이라는 항목을 작성중이다. 시험을 잘 본다는 것으로, 사회에서 엄청난 특권을 얻는다는 문제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교육개혁부터, 공공부문 개혁, 사법제도, 외교관, 교원임용 등등 많은 부분에 걸쳐 있는 핵심적인 문제이다. 경쟁없는 과소시장의 문제 와도 직결된다.

시험이라는 것으로부터 평가할 수 있는 인간의 자질과 능력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일까?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천년전 한반도에 도입된 '과거제도'라는 그 당시로는 매우 혁신적인 제도에 기반한 문명이 지금껏 지속되어 왔다는 생각이다.

아무튼이러한 화두를 부여잡고, 과거제도에 대한 역사를 탐색하다가 미야자기 이치사다의 책 맨 마지막 페이지에서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1960년대에 쓰여졌다는 것을 고려하니 참으로 놀랍다는 생각이다.

중국의 과거제도는 그 이전에 존재했던 귀족제도의 대안으로 고안되었고, 일본의 학교제도는 봉건제도가 붕괴한 직후 주로 관리양성의 목적으로 설치되었다는 점에서 무언가 공통적인 면을 갖고 있다. 그리고 사회 저변에 근대적인 조건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는 점도 아울러 지적해야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오늘날 일본사회에는 아직도 매우 봉건적이고 전근대적인 요소들이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 특히 노동시장이 협소하기 때문에 종신 고용제가 사회 도처에서 시행되고 있는데, 바로 이점이 입시 지옥을 만들어 낸 사회적 기반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중국 전통시대의 관리는 전형적인 종신 피고용자이다. 관리가 되면 죽을 때까지 그 지위가 보장되는 반면 다른 일로 전업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러한 지위의 획득을 최종 목적으로 하여 과거라는 지난한 시험에 세상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다. 오늘날 일본도 이와 유사한 바가 있다. 종신 고용제이기 때문에 최종 학교의 졸업과 취업이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즉 한번 취직을 하게 되면 그 후로는 전업이 어려울 뿐 아니라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 놓인다. 재무부의 관리가 되면 평생을 재무부에서 보내고, 스미모토 회사에 입사하면 평생 스미모토맨으로 통한다고 하면 일생의 운명은 거의 졸업의 한순간에 정해지게 된다. 이점 과거와 서로 성격이 대단히 비슷하다. 따라서 졸업하고 취직하는데 가장 유리한 대학으로 서로 앞을 다투어 들어가려 한다. 또 그러기 위해서는 그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야 한다. 이리하여 고등학교를 위해서 중학교를 선택하고 중학교를 위해서 초등학교를 선택하며 초등학교를 위해서는 유치원을 선택한다고 하는 일련의 고달픈 경쟁 코스가 어느 사이엔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하여 선택된 한곳으로의 집중, 편재가 시험지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취업의 기회가 많아서 일생을 한 관청, 한 회사에서 보내는 사람이 오히려 이례적이며 심지어 무능력자라고 여겨진다. 이에 반하여 유능한 사람은 여기저기서 스카우트하려는 사람이 오기 때문에 좀더 유리한 조건으로 직위를 바꿀 수가 있다. 만일 이러한 사회 상황이라면 어느 누구도 무리해서까지 특정한 대학에 필사적으로 입학하려고 집착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일본의 시험지옥이라는 사회 현상의 근저에는 봉건제와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종신고용제가 놓여 있고, 이것이 일본 사회에서 진정한 의미의 인격의 자유, 취직의 자유, 고용의 자유를 빼앗고 있다. 이런 사정은 큰 관청, 대기업일수록 심하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곤란하다.
회사는 학교를 갓 졸업한 신입 사원을 뽑을 때 미리 평생 동안 고용할 의도로 충성을 요구한다. 그것은 인간적인 성실이 아니라 봉건적, 몰개성적인 충성이다. 만일 자기 일신상의 이유로 그 회사를 나오게 되면 배신자처럼 대우받게 될 것이다. 만일 훨씬 더 유리한 조건으로 고용하겠다는 고용주가 나타나면 의리나 인정을 내세워 극구 만유하려고 할 것이다. 이는 노동력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인격까지 산 것을 의미한다.
비단 회사만이 아니다. 가장 진보적이라고 하는 대학에서조차 교수를 정년까지 고용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일본사회의 완전한 근대화가 진정으로 시작될 것인가?
학생이라는 신분이 또한 종신 고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힘들게 입학한 학생이므로 조금도 공부를 안해도 졸업 연한까지 어떻게든 재학할 수 있으며 성적이 아무리 나빠도 적당한 선만 유지하고 있으면 졸업이 된다.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학교는 다만 입학하기 위해서 존재하며 거기서 공부하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조차 나온다. 좀더 비판적으로 말하자면 우수한 대학의 실체한 특별히 뛰어난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거기에 모여든 사람들의 우수한 자질에 힘입고 있음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종신고용제란 현실의 사회상황 위에서 발생했음에 틀림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이러한 실태로 놓아두어서는 사회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 현상의 타파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착수하면 좋겠는가? 나는 이것을 실업계에 기대하고 싶다. 왜냐하면 종신 고용제는 사실상 오늘날 일본의 사회 실태로부터 발생한 것이지만 그보다도 거기에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의 봉건적인 사상에 의해 운용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데 가장 실리주의적인 것인 실업계이다. 나는 실업계에서 나름대로 인재 선발 경쟁을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사회적으로 직업의 전환 자체가 별로 이상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기성 관념도 바뀌면서 현실의 불합리성이 점차 개선되어 갈 것이다.
또한 학교측도 단지 입학생을 받아 졸업시키는 것만을 능사로 여겨서는 안된다. 그보다 재학 중에 충분한 공부를 가르쳐 가령 어려운 시험을 치르고 입학한 학생이라도 그 수학 과정을 견뎌내지 못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다시 수학하도록 조처해야 한다. 동시에 충분한 공부를 시키기에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설비와 교수의 확보에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입학의 난관이란 수용 가능한 수의 절대적 부족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아직 전문화되지 않은 중등교육기관인 고등학교에서 나타나는 설비의 부족에 대한 해결책은 앞의 경우와는 약간 방법을 달리한다. 단 그 대답은 극히 간단하다. 원래 교육에 돈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설비가 부족하다는 것은 어쨌든 정치력 부재에 원인이 있다. 또한 그것은 학부모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세상의 부모들은 개인적인 부담, 예를 들면 자녀의 학원 공부 등에 들어가는 비용이라면 얼마든지 감수하지만 전반적인 교육에 대한 투자에는 대개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개인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실로 자기만 잘 되면 좋다는 과거 수험자의 태도와 같다. 결국 수험생의 친형제로서 개인적으로 격려하면서 가정 교사를 붙여주고 참고서를 얼마든지 사주며 수험장까지 따라갈 정도의 눈물나는 노력을 하지만 실은 이러한 부모들이야말로 의외로 시험지옥의 제조원인 것은 아닐까? 그들이 이러한 노력을 하면 할수록 시험지옥은 심하게 될 뿐이다. 그러나 만약 진실로 그들이 교육에 열심이라면 좀더 교육을 중요시하는 국회의원, 대통령을 선출하면 일단 결말이 날 것으로 생각한다.

중국의 시험지옥 과거(중국학술사상 15), 241p

  • 미야자키 이치사다,  청년사, 2001-04-24

경쟁시장, 신분이동, 교육개혁, 사회안전망 문제가 단순한 개혁 차원이 아닌 새로운 문명으로의 전환임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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