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

이 글은 언제 다시 읽어도 가슴이 벅차고 또 부끄럽다.
단순히 글자들의 나열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의 삶을 말하는 것 같아서.
별이 되어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사람들에게선 예외없이 이런 성인의 모습을 발견한다.
세상엔 남에 대한 비난과 원망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자신이 굳이 지지 않아도 될 무게와 세상의 아픔까지 자기의 것으로 떠안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별 자신이 없지만 그래도 혹시나 나는 이 글을 당신께 드려봅니다.
영웅들로 가득찬 세상을 위하여.


In the daily lives of most men and women, fear plays a greater part than hope: they are more filled with the thought of the possessions that others may take from them, than of the joy that they might create in their own lives and in the lives with which they come in contact.

대부분의 사람들의 일상에서는, 희망보다 두려움이 더 큰 역할을 한다. 그들은 자신의 삶과 그들이 접하는 사람들의 삶에서 그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쁨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그들로부터 빼앗아갈수 있는 소유에 대한 생각에 더 사로잡혀 있다.
It is not so that life should be lived.
이것은 우리가 마땅히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삶의 방식이 아닐 것이다.
Those whose lives are fruitful to themselves, to their friends, or to the world are inspired by hope and sustained by joy:
자기 자신과 친구들 또는 세계에 유익한 삶을 사는 이들은 희망에 의해 영감을 받으며 기쁨으로 살아간다.
they see in imagination the things that might be and the way in which they are to be brought into existence.
그들은 가능한 것들을 상상하며,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에 대하여 생각한다.
In their private relations they are not pre-occupied with anxiety lest they should lose such affection and respect as they receive: they are engaged in giving affection and respect freely, and the reward comes of itself without their seeking.
사적인 관계에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받았던 애정과 존경을 잃지 않기 위해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유롭게 애정과 존경을 줄 수 있으며, 굳이 구하지 않아도 그 대가는 그들에게 저절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In their work they are not haunted by jealousy of competitors, but concerned with the actual matter that has to be done.
일을 할 때도 그들은 경쟁자들의 질투에 휘말리지 않으며, 실제로 해야 할 실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In politics, they do not spend time and passion defending unjust privileges of their class or nation, but they aim at making the world as a whole happier, less cruel, less full of conflict between rival greeds, and more full of human beings whose growth has not been dwarfed and stunted by oppression.
정치적인 면에서, 그들은 그들 계급이나 국가의 부당한 특권을 옹호하는 데 시간과 정열을 낭비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세계 전체를 더 행복하고 덜 잔인하게 하며, 경쟁적 탐욕의 갈등이 줄어들게 하고, 억압에 의해 인간의 발전이 저해되거나 움츠러들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A life lived in this spirit–the spirit that aims at creating rather than possessing–has a certain fundamental happiness, of which it cannot be wholly robbed by adverse circumstances.
소유보다 창조에 목적을 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에는 적대적인 상황조차도 완전히 빼앗아 갈 수 없는 어떤 근원적인 행복감이 있다.
This is the way of life recommended in the Gospels, and by all the great teachers of the world.
이것이 복음, 그리고 세계의 모든 위대한 선각자들이 설파한 삶의 방식이었다.
Those who have found it are freed from the tyranny of fear, since what they value most in their lives is not at the mercy of outside power.
이것을 깨달은 사람들에게는 삶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이 자신의 외부에 있는 힘이 베푸는 자비에 달린 것이 아니기에, 그들은 두려움의 지배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If all men could summon up the courage and the vision to live in this way in spite of obstacles and discouragement,
만약에 모든 사람들이 장애물과 낙담 속에서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상상력을 일으킬 수 있다면,
there would be no need for the regeneration of the world to begin by political and economic reform: all that is needed in the way of reform would come automatically, without resistance, owing to the moral regeneration of individuals.
개인들의 도덕적 각성으로 인하여, 세계의 변혁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저항없이 저절로 따라올 것이기에, 정치와 경제적 개혁에서부터 그 변혁을 시작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But the teaching of Christ has been nominally accepted by the world for many centuries, and yet those who follow it are still persecuted as they were before the time of Constantine.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은 많은 세월동안 말로만 받아들여져왔으며, 그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전 시대에서와 같이 박해를 받고 있다.
Experience has proved that few are able to see through the apparent evils of an outcast’s life to the inner joy that comes of faith and creative hope.
의지할 곳 없는 삶에서 마주한 불운 속에서도, 신념과 창조적인 희망에서 오는 내면의 기쁨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란 드물다는 것을 경험은 말해준다.
If the domination of fear is to be overcome, it is not enough, as regards the mass of men, to preach courage and indifference to misfortune: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두려움의 지배를 극복하기 위해 용기를 북돋아주고, 불행에 마음쓰지 말라고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it is necessary to remove the causes of fear, to make a good life no longer an unsuccessful one in a worldly sense, and to diminish the harm that can be inflicted upon those who are not wary in self- defense.
좋은 삶이 더 이상 세속적인 의미에서 성공적이지 못한 것이 아니도록 하고, 자신을 지키는데 조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해질 수 있는 해악을 줄이기 위해서는, 두려움의 원인들을 제거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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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 자유로의 길
Roads To Freedom, By Bertrand Russell

2 Responses to “우리가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

  1. [...] 좋은 글을 소개받아서 읽게 되었다. 마음이 공명하여 남겨 놓는다. 버트란드 러셀의 “The World [...]

  2. nassol says:

    좋은 글을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