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September, 2009

도대체 공화란 무엇이냐

Monday, September 28th, 2009

한글 위키의 http://ko.wikipedia.org/wiki/공화국 를 보면 그 어원에 대하여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영어로 공화제, 즉 리퍼블릭(republic)이란 말은 '공적인 일'을 뜻하는 라틴어인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에서 나왔다.
한자 문화권에서 사용되는 공화(共和)란 말은, 중국 주나라 여왕(厲王)의 폭정으로 반란이 일어나자 왕은 도피하고 제후들이 힘을 합쳐 나라를 다스렸다는 “공화시대”에서 유래하였으며, 19세기 일본의 학자들이 republic의 번역어로 채택하였다.

(누가 편집했을까? ㅋ)

서양에서 지금 사용되는 말의 어떤 모델들을 제시하고 구현했다면, 일본의 번역문명은 republic에 해당하는 '공화'라는 말을 고대 중국의 단어에서 찾아냈다.

이것이 사람들이 무슨 마법의 부적 주문처럼 외치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 할 때의 '공화'라는 단어의 기원이다.

이에 대해서는[박영철의 잡학사전] ⑧ republic과 공화제(共和制) (박영철, 주간조선, 2009-6-15)과 [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며](2) 공화국이란 무엇인가 (上) (김상봉, 경향신문, 2009-1-18)를 참고.

이후 대한제국의 몰락, 한일병합, 3·1운동을 거치며 급속히 성장한 공화주의 의식과 운동은 마침내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지요. ‘대한’과 ‘민국’, 당시의 최초 결합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때 비로소 ‘민주공화’라는 말이 처음 헌법 제1조로 등장합니다. 90년 전 1919년 4월11일 제정된 대한민국 임시헌장에서였습니다.(“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흥미롭게도 3·1운동의 해에 대한민국과 민주공화라는 말이 동시에 헌법에 등장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한말 이래의 근대국가 건설운동, 특히 당시 아시아 최대의 공화주의 민중운동이었던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등장한 최초의 근대적 공화정부였지요.

첫 등장 이래 헌법1조는 바뀐 적이 없습니다. 2차개헌(1925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 3차개헌(1927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국권은 인민에게 있다”, 5차개헌(1944년):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제4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인민전체에게 있음”. 1919년 9월 1차개헌에서는 제2조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한인민 전체에게 재함”이 추가되었지요. 촛불 때 부른 현행 헌법1조(1·2항)의 원형은 건국 훨씬 이전에 등장했던 것이지요. 그만큼 대한민국의 정신·원칙·비전의 고갱이가 오롯이 들어 있는 조항입니다. 놀랍게도 1919년 대한민국 임시헌장과 1948년 대한민국 헌법은 헌법정신은 물론 헌법의 구성·편제·순서까지도 거의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높은 유사성은 현행 헌법까지 이어집니다. 미군점령하에서 만들어졌음에도 건국헌법에 미국의 영향이 거의 없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며](3)헌법 1조-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上) ,박명림, 경향신문, 2009-2-8

박명림교수는 다소 감격스러운 어조로 말을 하지만, 과연 저기에 사용된 저 '공화'라는 말이 과연 무엇을 의미했을까. 아마도 세습군주제의 폐지정도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최장집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헌법은 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규정하면서 정체의 성격을 밝히고 그 정당성을 천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일찍이 매디슨이 미국의 정체를 규정하기 위해 불러들였던 “공화정”이란 말이나, 알렉산더 해밀턴이 최초로 명시적으로 사용했던 “민주공화국”이라는 말은 민주주의와 구별되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의미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여러 국가들이 규정하듯, 한국의 정체는 그저 단순히 민주주의국가라고 규정할 수도 있고, 매디슨과 해밀턴이 강조했고 또 프랑스에서처럼 공화주의의 이념적 표현으로서 공화정이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헌법의 저자가 어떤 의미로 한국국가를 민주주의국가나 공화정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이라고 불렀는지를 알지 못한다. 지금도 한국민의 대다수는 공화정이라는 의미를 잘 모르고 있다. 분단국가의 정치적 조건에서 왜 공화주의적 권력분립,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필요했는지, 또는 그것이 매디슨적 민주주의의 이념과 제도를 따른 것이라고 한다면 왜 단원제를 택했는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요약] '미국헌법과 민주주의'에 담긴 최장집 교수 서문 , 오마이뉴스, 2004-11-18

나름대로 공화라는 단어의 정의가 무엇인가 알아보려 했지만, 참 어렵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알아본 것으로 하자면,  '공화주의'라는 것은 '애국심' 이라는 것에서 크게 멀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애국심이라고 하면 보통 좌파들에게는 두드러기를 일으키게 되므로, 이 애국심에 적당한 조건을 붙여 '애국심의 근원을 시민적 권리와 공공의 가치를 담고 있는 훌륭한 헌법을 만들어 그 헌법이 잘 지켜지고 있다는데 두는 것' 이라는 헌법애국주의의 개념을 빌려오고 싶다. 요 언저리에서 '공화'라는 단어를 받아들이면 좋지 않을까.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Sunday, September 27th, 2009

검사와 판사 (피타고라스의 창, 2009-9-12)에서는 '검사와 판사라는 엘리트 간의 견제와 균형'에 대하여 살짝 언급한 바가 있다.

며칠 전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0조 등 위헌제청'(사건번호 2008헌가25) 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있었다.신영철 대법관 파문 을 다시 한번 돌아보니, '검사와 판사' 사이 못지 않게,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미묘한 갈등 같은 것이 감지된다.

위헌법률심판에 대하여 잠시 살펴보자.

위헌법률심판
  • 법원에서 재판중인 구체적인 소송사건에서, 그 사건에 적용될 법률이 위헌인지 아닌지가 문제되어 법원이 직권으로 혹은 소송당사자의 신청을 받아들여 법률의 위헌여부를 심판하여 줄 것을 헌법재판소에 제청하면, 헌법재판소가 그 법률이 위헌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심판
  • 위헌법률심판의 제청을 할 수 있는 자는 법원으로 자신이 재판 중인 어떤 사건에 적용되는 법률이 위헌이라는 의심이 드는 경우에 그 스스로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제청 가능
  • 일반 국민이 위헌법률심판의 제청절차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
    • 재판 중의 당사자가 해당법률이 위헌이 의심되는 경우, 그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해줄 것을 법원(대법원 및 각 지방법원 등 각급법원)에 신청
    • 법원이 그 신청에 타당성이 있다고 보면 그 신청을 인정하여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
    • 법원이 이를 기각할 경우에는 그 당사자는 적법한 기간 내에 헌법재판소에 직접 그 법률조항에 대하여 헌법소원심판을 청구
  • 국가기록포털위헌법률심판 항목 참고

요약하자면, 위헌법률심판이란 소송당사자에게 있어, 법이 잘못되었을 경우 인권과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신영철 대법관 파문에 대하여 약간 복기를 해보자면, 이러한 촛불집회를 둘러싼 위헌법률심판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2],[3] 참조)

위헌제청신청 기각 지시 (8월)
  • 촛불집회 당시 ‘여대생 강간설’을 인터넷에 올린 혐의로 기소된 네티즌이 전기통신기본법에 대한 위헌제청신청 제기
  • 전기통신기본법은 인터넷에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처벌
  • 재판부는 위헌제청신청을 기각
  • 신 대법관은 당시 위헌제청신청이 들어온 직후 당시 형사단독 판사들에게 기각을 당부하는 발언을 했다는 증언
  • 위헌제청을 할지는 법관이 법률과 양심에 따라 결정할 문제이며, 법원장이 '현행법대로 재판하라'고 말하는 것은 간섭이라는 주장이 제기됨
헌법재판을 기다리지 않고 촛불집회 관련 재판 (10월)
  • 지난해 10월 촛불집회 관련 피의자를 재판하는 과정에서 법원이 먼저 헌법재판 결과를 지켜보자고 제안했으나, 갑자기 태도를 바꿔 즉각 재판을 종결하고 벌금형을 선고한 사건
  • 법원이 사건을 심리하던 중에 동일한 쟁점이 다른 재판부에 의해 헌법재판소에 회부되었다면 헌재의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재판을 연기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례
  • 헌재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공연히 재판을 해 보았자 헛수고가 되고, 당사자에게 부당한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
  • 지난 번 촛불사건에서는 재판부에 따라 독자적으로 유죄를 인정하는 판결이 내려짐
  • 이 과정에서 당시 신영철 서울중앙지법원장의 이메일이 영향을 줬는지 여부가 쟁점

이렇기에 이번 집시법과 관련한 헌재의 판결은 어느 정도 신영철 대법관에게 타격을 주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번 판결이 나오기 전에 개헌과 관련하여 이런 일이 있었다. 국회의 개헌자문위원회에서 헌법재판소에 개헌의견서를 제출하도록 하였는데, 헌법재판소가 낸 개헌의견서에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 담겨있었던 것이다.

  • 헌법 제111조2항 및 제3항, 제4항에 따르면 재판관은 대통령이 모두 임명하되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한 자를, 3인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자를 임명하도록 규정
  •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3인을 대법원장이 지명하도록 정하고 있는 헌법 관련규정을 삭제하고, 대신 국회에서 6명을 선출하는 방안을 개헌의견서에 제시
  • 대법원장의 헌법재판관 지명권 삭제는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과 국회의 합성행위로 헌법재판소를 구성하는 것이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바람직하다는 근거
  • [1] 참조

밖에서 봐서는 자세히 알기는 어렵겠지만,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자존심 싸움 같은게 있지 않나 생각된다.

검사 잡는 것이 판사라면, 대법원 잡는 것은 헌법재판소인 것일까.

장차 헌법재판소의 위헌법률심판권 같은 것을 과연 어떻게 통제해야 할 것인지 참으로 쉽지 않은 문제인데, 아무튼 이러한 여러 기관들 사이의 미묘한 갈등과 '견제와 균형'을 살펴보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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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니츠 급수에 대한 재미있는 현상(2) : 오일러수

Sunday, September 20th, 2009

지난 글 라이프니츠 급수에 대한 재미있는 현상 에서는 라이프니츠 급수

1 \,-\, \frac{1}{3} \,+\, \frac{1}{5} \,-\, \frac{1}{7} \,+\, \frac{1}{9} \,-\, \cdots \;=\; \frac{\pi}{4}

의 5000개의 항을 더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을 언급하였다.

4\sum_{k=1}^{5000}\frac{(-1)^{k-1}}{2k-1}=3.141392653591793238362643395479500114198179\cdots

3.141392653591793238362643395479500114198179… (위의 급수)

3.141592653589793238462643383279502884197169… (원래 파이값)

이제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가 설명하기 위해 오일러수라는 것을 정의하자. 이 수는 시컨트 함수의 맥클로린 급수의 계수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sec x = 1 + \frac {x^2} {2} + \frac {5 x^4} {24} + \frac {61 x^6} {720} + \cdots=\sum_{n=0}^\infty \frac{(-1)^n E_{2n} x^{2n}}{(2n)!}

(여기서 참고로, 보통 사인과 코사인 함수의 맥클로린은 학부생 미적분학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탄젠트, 코탄젠트, 시컨트와 같은 삼각함수에 대해서는 잘 얘기를 하지 않는다.

B_n베르누이수E_n오일러수

\tan x = x + \frac{x^3}{3} + \frac{2 x^5}{15} + \frac{17 x^7}{315} + \cdots =\sum_{n=1}^\infty \frac{(-1)^{n-1} 2^{2n} (2^{2n}-1) B_{2n} x^{2n-1}}{(2n)!}

\cot x = \frac {1} {x} - \frac {x}{3} - \frac {x^3} {45} - \frac {2 x^5} {945} - \cdots = \sum_{n=0}^\infty \frac{(-1)^n 2^{2n} B_{2n} x^{2n-1}}{(2n)!}

\sec x = 1 + \frac {x^2} {2} + \frac {5 x^4} {24} + \frac {61 x^6} {720} + \cdots=\sum_{n=0}^\infty \frac{(-1)^n E_{2n} x^{2n}}{(2n)!}

이 수학적으로 흥미로운 계수들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 미적분학을 말하는데 오일러-맥클로린 공식을 얘기하지 않는단 말인가!!)

처음 몇 개의 오일러수는 다음과 같다.

E_0=1,E_2 = −1,E_4 = 5,E_6 = −61,E_8 = 1,385,E_{10} = −50,521,E_{12} = 2,702,765,E_{14} = −199,360,981,E_{16} = 19,391,512,145,E_{18} = −2,404,879,675,441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라이프니츠 급수의 오차항에 대해 알아보자. 오일러수를 사용하면, 이 급수와 수렴값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pi-4\sum_{k=1}^{N/2}\frac{(-1)^{k-1}}{2k-1 }\sim \sum_{m=0}^{\infty}\frac{2E_{2m}}{N^{2m+1}}=\frac{2}{N}-\frac{2}{N^3}+\frac{10}{N^5}-\frac{122}{N^7}+\frac{2770}{N^9}-\frac{101042}{N^{11}}+\cdots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말하자면 오른쪽의 급수는 수렴하지 않고, 다음과 같은 정도로 그 크기를 표현할 수 있다.

4\sum_{k=n+1}^{\infty}\frac{(-1)^{k-1}}{2k-1 }=(-1)^n\sum_{k=0}^{M}\frac{2E_{2k}}{(2n)^{2k+1}}+R(M)

여기서 |R(M)| \leq \frac{2|E_{2k}|}{(2n)^{2M+1}}

따라서 N=10^{l} 일때,  (4배한) 라이프니츠급수와 파이의 자릿수는 소수점 l번째(또는 그 앞) 자리에서 처음 다르게 나타난다.

오차항에 대해서는 2E_{2(M+1)}과 10^{2l} 의 자릿수가 엇비슷해지는 M을 찾았을때 k=M 까지 오차항을 계산하면 파이의 자릿수를 어느 정도 얻을 수 있겠다.

라이프니츠 급수로도 오일러수를 통한 보정으로 파이의 자릿수를 소수점아래 (2M+1)l 자리까지는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하고 끝을 맺으면, 뭔가 얻은거 같은 느낌이 없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쉬운 예를 통해서 이해해보자.

예)

N=10^2 인 경우, 2E_6가 네자리 수이므로, M=2 로 두면 위의 말대로, 라이프니츠 급수를 통하여 파이의 소수점 10자리 정도의 전개정도는 얻을 수 있다.

4\sum_{k=1}^{50}\frac{(-1)^{k-1}}{2k-1}=3.12159465259101047851\cdots

0.12345678901234567890123456789012345678901234567890123456789

3.14159265358979323846… (원래 파이값)

3.12159465259101047851… (위의 급수)

자릿수가 다른 곳의 차이를 보면, 오일러수의 2배인 2, -2, 10, -122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

N=10^3 인 경우, 2E_{10}이 여섯자리 수이므로, M=4 로 두면 위의 말대로, 라이프니츠 급수를 통하여 파이의 소수점 27자리 정도의 전개정도는 얻을 수 있다.

4\sum_{k=1}^{500}\frac{(-1)^{k-1}}{2k-1}=3.13959265558978323858464061338053947906585258315983\cdots

0.12345678901234567890123456789012345678901234567890123456789

3.14159265358979323846264338327950288419716939937510582

3.13959265558978323858464061338053947906585258315983

자릿수가 다른 곳의 차이를 보면, 오일러수의 2배인  2, -2, 10, -122, 2770가 나타난다.

예)

N=10^4 인 경우, E_{12}가 일곱자리 수이므로, M=5 로 두면 위의 말대로, 라이프니츠 급수를 통하여 파이의 소수점 44자리 정도의 전개를 얻을 수 있다.

4\sum_{k=1}^{5000}\frac{(-1)^{k-1}}{2k-1}=3.141392653591793238362643395479500114198179\cdots

0.12345678901234567890123456789012345678901234567890123456789

3.14159265358979323846264338327950288419716939937510582

3.1413926535917932383626433954795001141981798188345532196965187625458916006334194979629989247706731687

자릿수가 다른 곳의 차이를 보면, 오일러수의 2배인 2, -2, 10, -122, 2770, -101042가 나타난다.

이제 이에 대한 좀더 학술적인 안내를 받고 싶다면, 다음 글을 참고하시라.

말의 경부고속도로, 생각의 대운하

Friday, September 18th, 2009

Crete님이 사회적 자본 확충의 중요성 라는 글을 쓰신걸 보고, 그간 생각한 바를 조금 적어본다.

예전에 개인과 공공의 이익의 조화를 위하여 – 토크빌에게 듣는다 (피타고라스의 창, 2008-4-12) 에 어떤 분이 이런 댓글을 남긴 적이 있다.

개개인의 계몽 의식이 먼저인가요 사회의 규범 제도적장치의 확립이 먼저인가요.

한국 같이 아직 사회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곳에서 더더욱 개인의 희생에만 언제까지 호소하기도 뭣하지 않을까요. 뭔가 자기절제에 따른 공평한 이익이 돌아온다는걸 체험케하는 시스템의 일관성이 있어야 할텐데. 불투명한 사회구조의 문제인지 의식의 문제인지 어쨌든 사기치는 잉간들이 더 잘사는 세상이 되니, 계몽의식 부재를 국민의 인성이나 교육탓만 할수도 없지 않을지요.

내가 김대호 님의 책 '노무현 이후 - 새 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에서 대부분 공감하면서 마음에 약간 걸린 부분이 하나 있었다면, 바로 이 부분 되겠다.

한국의 모든 경제사회 주체들이 철저하게 단기적이고 협소한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한국은 사회적 불신과 균열이 극심하여 이해관계자들의 대화와 타협에 의한 갈등 조정이 너무나 어려운 사회이다. 한국 이익집단들의 성격과 갈등 조정 능력을 보여주는 기념비적 사건들은 많아. 1945~1953년의 비극, 노무현 대통령 탄핵솨 사실상 고문치가, 보수 비대 언론에 대한 이유 있는 극도의 불신, 부안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관련 민란 수준의 시위, 노동 내 엄격한 격차, 잦아들지 않는 국회 파행 사태, 한미 FTA  관련 갈등, 노사정위원회 운영 행태, 대우자동차 구조조정 및 해외 매각 관련 갈등, 쌍용자동차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거진 도장 공장 점거 사태, 노동조합 협상 대표의 직권 조인을 두려워하여 노사 잠정 합의 사항을 조합원 총투표로 추인하는 문화 등 헤아리자면 끝도 없다. 

원래 정치 · 경제 · 사회 주체들 간의 상호 불신이 높아 대화와 타협에 의한 갈등 조정이 어려운 곳에서는 전쟁이나 독재 권력, 또는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을 담보하는 시장, 유권자의 의지를 확인하는 투표가 주요한 판관이 된다. 전쟁과 독재 권력이 활용가능한 판관이 아니라면, 시장과 투표 기능을 주요하게 활용할 수밖에 없다. 부안 방사성폐기물처리장 관련 갈등을 경쟁 지역 간의 투표로 해결한 사례는 그 단적인 사례이다. 한국이 기본적으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불신의 나라인 이상 당분간은, 대체로 폭력적이고 독단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겠지만, 어쨌든 정부의 과감한 결단을 통해서 주요한 갈등 사안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의 슬픈 운명이다.

(234p, 노무현 이후 - 새 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  김대호, 한걸음더, 2009-08-05)

참여정부의 국정원리를 다시 볼때면, 난 여전히 가슴이 벌렁벌렁 뛰곤 한다.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

내가 그동안 시민민주주의를 위한 정치개혁 연구를 통해 한국사회에 대한 학습과 그 정리를 시작한 항목이 몇백개가 된다. 추상화와 일반화를 업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니만큼, 그렇게 마구 발산해가는 자료들 사이에서도 어떠한 공통적인 인식틀과 모두를 관통할 추상화된 원리를 찾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때 내가 도달하게 되는 결론은 저 참여정부의 국정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이제 여기에 공공부문 개혁과 과소시장의 문제의 문제와 같은 것들을 더해야 한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서로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사람들이 서로 신뢰가 없으니, 내일의 이익을 기약할 수 없고, 미래를 예측할 수도 없으니, 일단  단기적인 이익을 따먹고 보겠다는 생각밖에 남지 않는 것이다.

앞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단지 도덕성타령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와 같은 가치들과 관용, 절제와 배려와 같은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경부고속도로와 대운하보다 더 중요한 사회의 핵심인프라라는 명료한 인식을 해야 한다.

박정희가 경제발전을 위한 대전략으로 물자가 움직이는 경부고속도로를 뚫었다면, 앞으로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말과 생각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자유롭고 원활하게 움직이는 아이디어의 경부고속도로를 뚫는 것이다. 신뢰, 투명, 대화, 소통 이런 말은 다른 것이 아니다. 갈등관리시스템과 같은 것들부터 해서 어떻게 하면 이러한 사회적자본을 확충시킬 아이디어의 대운하를 팔 것인지 고민해보도록 하자.

단지 서로 믿을 수 있는 착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것은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인프라인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런게 더 경제성이 있다. 부자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이런 보고서들도 있지 않은가?

정말로 복수를 할 생각이라면, 하나하나 지혜를 모아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실현가능한 것이며 확실히 더 나은 것임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도덕성이 넘쳐 흐르는 사회말고 위선이 없는 사회

Friday, September 18th, 2009

민주당 박주선 최고위원의 말이다.

이번 인사청문회를 보는 평소 준법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국민은 커다란 상처를 느끼고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후보자의 능력과 자질, 도덕성, 청렴성을 조사해서 공직자로서의 적합성이 있는지의 여부를 따지는 청문회가...
제49차 확대간부회의 모두발언, 민주당 보도자료, 2009-09-18

사실 나는 저런 말에 솔직히 별로 공감이 안간다. 솔까말, 국민들은 도덕적이고 선량한데, 지도층만 유난히 비도덕적인가? 그런게 아니라 그냥 국민들 중에서 지도자도 나오고 그러는 것은 아니고? 물론 특권을 누리고 살아온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삼십년 전에도 지도층이었던 사람이 다는 아니잖는가?

사람들의 분노노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누리는 반칙과 특권에 분노를 어찌 이해못하겠는가. 열받을건 받고, 책임을 물을 것은 물어야겠지. 법 잘 지키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선의의 피해를 받는 경우도 있는거 맞는 말이다.

버뜨, 모든 인간에게는 욕망이란 것도 있고 탐욕이란 것도 있게 마련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게 있다는 것이 어떤 비난의 대상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만들고자 노력해야 하는 것은, 그러한 욕망들을 성인들에게 찾아볼 수 있는 수신의 자세로 제어하는 사회라기보다는,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해감으로써 그 욕망들이 사회에 필요한 질서, 상식들과 적당한 수준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세상일 게다.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 어딘지가 매우 중요한 상황이 있을 때, 누구나 그걸 동사무소 가서 신고만 하면 되는 정도로 쉽게 조작할 수 있다면, 그게 정말 합리적인 제도인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거주의 증명을 꼭 그렇게 관이 받은 신고를 통하는 것이 오히려 제도의 허점일 수도 있는 것이다. 정말로 실제 거주지가 어디인지가 매우 중요한 상황이라면 (답이 아니라 그냥 하나의 가능한 예를 찾자면) 전기요금이나 수도요금 같은걸 몇 개월치 어디서 냈는가 이런 정보가 오히려 훌륭할 수도 있는 것이다. 행정 효율성 같은 따져야 할 문제들이 있겠지만, 이러한 제도들을 생각해볼 여지는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조작하고 그러는 건 뭐 막을 수 없겠다. 그런건 뭐 걸리는 경우 조작으로 얻을 이익보다 몇배나 더 큰 응징을 가하는 수 말고 별 거 있겠나) 아무튼 그렇게 만들어진 제도들이 좀더 상식, 현실, 욕망들이 적당한 타협점을 찾도록 해주는 사회라면, 나는 그런 사회가 제도는 허술한데 개개인의 고고한 도덕성과 성품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어떠한 조건들이 맞아들어가서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굳이 그걸 마다하고 기꺼이 군대에 갈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대한민국 군대 후진거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군대가 좀더 견딜만하고 인간적인 곳이 되도록 개선을 해가는 것이다. 그러면 개선해가는 만큼 저렇게 난리치면서 피하고 그러는 사람, 그런 사례들도 줄어들겠지.

뜬금없이 그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가 작전 통제할 만한 실력이 없냐, 대한민국 군대들 지금까지 뭐 했노, 나도 군대 갔다왔고 예비군 훈련까지 다 받았는데, 심심하면 사람한테 세금 내라 하고, 불러다가 뺑뺑이 돌리고 훈련시키고 했는데, 그 위의 사람들은 뭐했어, 작전통제권 자기들 나라 자기 군대 작전 통제도 한 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놔놓고 나 국방 장관이오, 나 참모총장이오 그렇게 별들 달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는 얘깁니까? 그래서 작통권 회수하면 안 된다고 줄줄이 몰려가서 성명내고, 자기들이 직무유기 아닙니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노무현 대통령 민주평통 발언 전문, 한겨레, 2006-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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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로 이 때, 한 때 세상을 뜨겁게 달군 말이 나온다.

우리 아이들 요새 아이들도 많이 안 낳는데, 군대에 가서 몇 년씩 썩히지 말고 그동안에 열심히 활동하고 장가를 일찍 보내야 아이를 일찍 놓을 것 아닙니까?

방방 뛴 꼴통들 있었지만, 사실 누구나 다 동의하고 공감하는 얘기일게다. 군대가서 썩지 그럼 안 썩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모두가 그렇게 도덕성 타령으로 날밤을 새도, 결국 달라지는 거 별로 없을 것이고, 문제가 전보다 그다지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거다. 도덕성 타령도 중요하겠지만, 너무 거기에만 몰두하지는 말자는 작은 바램같은 것이다.

나는 한국사회가 도덕성이 넘쳐 흐르는 사회말고, 위선이 없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그러면 더 진솔한 대화, 생산적인 결론이 나올 수도 있겠지. 그러면 여기서 훗날 얻어질 것은 아마도 '더 도덕적인 사회'가 아닐까하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