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정부의 성공적인 공공성 개혁은 가능한가

대한민국의 교육정책 역사를 들여다 보면, 참으로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 이 교육정책사에서 공공성이 높고, 진보적이었던 것을 꼽자면, 아이러니하게도 박정희 정부 시절의 1974년의 고교평준화 정책과 전두환 시절의 과외경감대책과 사립학교법 개정인 것 같다. 지난 17대 국회에서 사상 최초의 의회권력 교체가 있기 전까지, 사립학교와 관련해서는 오죽하면 ‘군사정권의 힘의 약화 = 학교 법인의 힘 강화’ 라는 등식까지 만들어졌을까.

참여정부와 지난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획득했던 17대 국회는 사립학교법 개정에 큰 정치적 에너지를 쏟아부었음에도, 얻어낸 결실은 그리 크지 못했던 것 같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잘못 설정한 점과 쓸데없이 전선을 확대시킨 전략적 실수는 다시 면밀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들에 대해서는 일단 둘째치고, 그래도 이 시기가 87년의 민주화 이후 교육정책에 있어 공공성을 명분으로 한 개혁이 본격적으로 시도된 때였다는 평가는 가능할 것이다. 2005년에 있었던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국민의정부 시절 민주당에 의해 만들어지긴 했으나, 국회에서의 힘의 부족으로 시도도 못했다고 한다.

사학의 자율성이라는 명분과 교육의 공공성이라는 명분이 충돌했을 때, 과연 어느 세력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가는 지난 사학법 개정 시도에서 관찰이 가능했을 거라 본다. 사학들의 응집력과 딴나라당의 태클 걸기, 조중동의 합창, 이 모든 것은 여론의 우위를 업고도 이기기 어려울만큼 강고해 보였다. 사학의 취지를 살리기 위한 자율성을 명분으로 내건 그들이었다. 일견 그럴듯한 명분같기도 하지만, 사실 웃기는 것이 대한민국 사립중고등학교의 재단전입금이라는 것은 고작 2%도 안되고, 나머지는 모두 국고지원금과 학생납입금이라고 한다. 이들에게서 누리는 권리는 크지만, 책임질 것은 적은 전형적인 대한민국 '노블리스 돈불리제.땅불리제'들의 모습을 엿본 것도 사실이다.

참여정부의 청와대브리핑에 있는 '평야지대에 사립학교가 많은 이유'  대한민국 일부 사립학교의 도적떼적 기원을 잘 설명해준다.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중, 고등 사립학교는 평야지대에 많고 강원도 같은 산간지역에는 거의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 질문은 단순히 지적 호사취미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다. 이 작은 물음의 답 속에 사실은 사립학교 문제의 본질이 담겨져 있다.
이승만 정부 때의 일이다. 해방 이후 교육에 대한 국민적 욕구는 폭발적으로 확대되고 있었으나 당시의 빈약한 국가 재정으로는 그 욕구를 충족시킬 만큼 새로 학교를 세우기가 어려웠다. 남은 방법은 민간자본을 학교에 대거 끌어들이는 것이었지만 순수하게 사회에 기여하겠다고 사재를 아낌없이 내놓을 사람이 그렇게 많을 리도 없었다.
이승만 정부가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것이 “사립학교 재단을 설립하여 자기 토지를 재단의 재산으로 등록하면 그 토지는 토지개혁의 대상에서 제외해준다.”는 유인책이었다. 이 유인책은 대단한 효과를 발휘하였다. 토지개혁으로 재산을 잃을까 걱정하던 대지주들이 너도 나도 이게 길이다 싶어 사립학교를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대지주가 많았던 평야지대에는 사립학교가 많이 세워지고 대지주가 있을 수 없었던 산악지대에는 사립학교가 하나도 세워지지 않은 것이다.

어떤 인간을 기를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사람들이 학교를 세운 것이 아니라, 사유재산의 유지 내지 증식의 수단으로 학교가 선택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문제를 자율성 대 공공성이라는 대립 구도에 놓고 이해하기 전에, 상호간 이해도 필요한 것 같다. 나라가 가난했던 시절, 정부가 해야할 일을 대신하여 준 공로에 대해서는 정당한 평가를 해주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서양 사상 수용사라는 책은 기독교의 계몽 운동 관련 부분을 이렇게 적고 있다.

조선 사회에서 기독교가 전개한 국민 계몽 운동 가운데 가장 큰 공헌은 교육 사업이었다. 1910년 8월 13일자 관보 제 4556호에 나타난 전국 각급 학교의 숫자를 보더라도 관공립학교 80개 교인 데 비해 기독교단체들이 세운 사립학교 755개 교에 달할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을 가리켜 박종홍은 '한일합방 전후만 하더라도 교육 사업은 초등에서 전문에 이르기까지 개신교가 도맡고 있다고 할 정도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 1899년 4월 12일자 '대한 그리스도인 회보'도 '나라의 개명함은 인재를 교육하는 데 있은 즉, 어느 나라든지 만약 개명 진보하려면 각 학문으로 인민을 널리 가르치는 것이 가장 급선무이다'라고 강조한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교육이 사회의 개명과 진보에 필수 조건임을 명시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한국의 서양 사상 수용사, 228p'

해방전 이러한 기독교의 공헌, 그리고 이승만 정부의 사학장려책은 위에서 짧게 보았고, 박정희 정부 시기도 마찬가지다. 중공업의 성장으로 고급 숙련 노동력 수요가 늘어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장이나 목장 같은 생산시설을 학교 재단의 재산으로 등록하면 면세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민간자본을 끌어들이고 고등학교와 전문대학을 설립을 유도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해방 이후의 사학정책을 교육정책이 아니라, 국가의 교육재정부담을 덜어내기 위한 경제정책이라고 했을까? 국가가 책임져야할 일을 민간의 힘을 빌어 해결했던 과거를 이해하고, 공정한 평가를 해줘야 할 부분은 해야 근본적인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나라가 가난했던 시절, 정부가 해야할 일을 대신해서 교육에 헌신해준 공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개혁을 명분으로 전선을 과도하게 확대시키는 오류를 막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의 역사적 기원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군사정권의 힘의 약화 = 학교 법인의 힘 강화’라는 등식을 약간 비틀어, 나는 '정부가 권위적일수록 공공성 개혁에 착수할 수 있는 힘이 강해진다'는 명제를 한번 끌어내본다. 나는 참여정부가 남긴 숙제를,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서도, 대한민국에서 공공성을 증가시키는 방향의 성공적인 개혁이 가능한가?'로 요약한다. 우리가 박정희가 아니고 전두환이 아닌,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중시한다면 공공성 개혁을 어떻게 수행해 나갈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아직 이에 대해 답한 적이 없다.

2 Responses to “민주정부의 성공적인 공공성 개혁은 가능한가”

  1. Joyh says:

    헐.. 교육도 후불식으로 땡겨쓰고 지금 그 빚을 갚고 있군요;;;

    후반부에 오타가 "전문대학을 설립을" -> "전문대학의 설립을"

  2. [...] 민주정부의 성공적인 공공성 개혁은 가능한가 라는 글에서 말한대로, 대한민국의 교육정책사에서 공공성과 진보성을 갖추었으며 실행까지 된 정책을 찾아보자면 그것은 박정희 정부 시절의 고교평준화 정책과 전두환 시절의 과외경감대책과 사립학교법 개정인 것 같다.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서도, 대한민국에서 공공성을 증가시키는 방향의 성공적인 개혁이 가능한가 하는 나의 질문은 대답되지 않았고, 아직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다. 이명박님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는 크지만 나는 그 분노의 창조적 힘에 대해서는 낮게 평가하는데, 그것은 이것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를 외치던 것에서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다’를 외치던 것으로 그냥 옮겨간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연 이것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정치개혁의 동력을 가져올까 생각해 보면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나도 이명박님의 수많은 뻘짓에 누구보다 분노하는 사람이지만, 지금 문제의 본질이 ‘이명박님인가’ 묻는다면, 그것만은 아닌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