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의 윤리학

내가 고딩시절에 촌구석에서 '과학영재'라는 타이틀을 달고 공부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들였고 가장 재밌게 한 것이야 물론 수학이었지만, 그것말고도 재밌게 공부한 것 다른 하나를 꼽자면 '과학영재'에게는 별로 어울리지 않을법한 '시'가 되겠다. 3학년이 되어 이제 수능시험 공부를 하려니, 수업시간에는 잠만 퍼자고 그간 전혀 관심이 없었던 국어니 문학이니 하는 것들이 아주 골칫덩어리가 되었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 다른건 몰라도 '시'를 읽는 것이 재미있을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꽤 큰 수확이었다. 내가 꽤 좋아했던 여러 시가 있지만 그 중의 하나로, 서정주의 '국화옆에서' 가 있다.

국화 옆에서
-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물론 예전에 오마이뉴스에서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친일시?' 라는 기사도 있고 그렇지만은, 진실은 알기 어려운 것이고, 나는 이 시를 여전히 좋아한다!

이 시를 가지고 낼 수 있는 문제를 한번 보자.

1. 이 시의 시상을 형상화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 종교적 사상은 무엇인가?
<모범답> 불교 인연설(연기설)
...
4.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가 울고, 천둥이 치고, 무서리가 내렸다는 말은 그 자체로는 매우 비과학적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진실일 수 있는 이유를 이 시인이 속한 <생명파>와 관련해서 80자 내외로 설명해 보라.
<모범답> 하잘것없는 하나의 생명체라도 그것이 탄생하기까지에는 전우주적인 참여가 있어야 한다는 생명의 존엄성에 관한 인식에 근거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 때도 이런 비슷한 해석을 봤던 기억이 있는데, 이런것을 읽으며 사실 나는 어린 마음에 무진장 큰 감동을 받았었다. 나는 이러한 류의 생각들을 늘 좋아했다. 이 세계의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연결성에 대해 사색하는 것은 사실 나의 가장 중요한 테마라 할 수 있는데, '집에서 전하는 생태학 강좌' ㅋ 같은 것도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배경에 놓여 있다.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안드림'에는 이러한 부분이 나온다.

471p 적어도 서양의 경우 도덕성의 현 개념은 너무 직선적이고 제한적이다. 한편 현 시대는 한 가지 행동이 미치는 영향이 세계 전체에 미치고 그 파급 효과가 시스템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그런 도덕성의 개념으로는 지금의 인간 행동을 조절하는데 무리가 있다. 바로 그것이 문제다. 서양의 도덕은 십계명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모두 개인적이고, 식별하기 쉬우며, 일상적인 해악을 경계하는 도덕성에 기초하고 있다. 살인, 절도, 거짓말, 간통 등은 한 사람이나 집단이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 가하는 행위로 누구나 쉽게 식별할 수 있다. 그런 행위는 그 책임을 묻기도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그것은 "직접적인 나쁜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촘촘히 연결되는 글로벌 사회에서는 "간접적인 나쁜 행위"로 표현될 수 있는 새로운 도덕성이 존재한다. 간접적인 나쁜 행위는 그 결과가 너무도 멀리 떨어져 엉뚱하게 나타나 인과 관계를 찾을 수 없고 죄의식도 느낄 수 없으며, 집단적 책임감으로도 그런 행동을 처벌할 수 없는 경우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보자. 현재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스포츠다목적차량을 보유하고 있다. SUV를 운행하면 다른 승용차들에 비해 많은 휘발유가 소모된다. 그 결과 그 배기 가스로 대기 중에 많은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어 공기 오염으로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시킨다. 교육 수준이 높은 엘리트층은 SUV와 지구 온난화 사이의 관계를 의식하겠지만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거나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들은 텔레비전에서 기록적인 강우량, 해안 지방의 침수, 인명과 재산 피해가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라는 뉴스를 보겠지만 자신들이 SUV를 몰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그런 끔찍한 재난이 발생했다고 생각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중략)

다른 예를 들어 보자. 유럽과 미국의 청소년 수백만 명이 나이키 같은 유명 브랜드의 운동화를 신는다. 그들은 그 신발이 끔찍한 작업 환경 속에서 어린이들을 착취하는 베트남의 한 공장에서 만들어졌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그들이 비참한 작업 환경에 대해 전해듣고 그런 신발을 구입하는 행위가 먼 나라의 어린이들이 착취당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476p 그렇다면 문제는 이것이다. 세계적이고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광대하고 포괄적인 새로운 도덕성을 우리가 어떻게 갖출 수 있을가? (그 도덕성은 '나 자신'과 '다른 사람 및 사물'사이를 잇는 가교가 되어야 한다.) 다양한 외양으로 나타나는 간접적 나쁜 행위를 정확히 식별할 수 있는 시스템적 윤리관을 우리가 과연 확립할 수 있을까? 직접적인 이웃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소속되어 있는 지구 공동체의 관계에서 과연 우리가 도덕의 황금률을 실천할 수 있을까? 매우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글로벌 의식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점점 하나가 되어 가고 있는 이 세계는 '개인적이고, 식별하기 쉬우며, 일상적인 해악을 경계하는 도덕성'에 기초한 윤리만으로 지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드라망은 불교의 연기법을 상징적으로 표현해주는 말입니다.
인드라(Indra)는 본래 인도의 수많은 신 가운데 하나로 한역하여 제석천(帝釋天)이라고 합니다. 신력(神力)이 특히 뛰어나 부처님 전생 때부터 그 수행의 장에 출현하며 수행을 외호(外護)하는 신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제석천의 궁전에는 장엄한 무수한 구슬로 만들어진 그물(=인드라망)이 있다고 합니다.

제석천 궁전에는 투명한 구슬그물(인드라망)이 드리워져 있다. 그물코마다의 투명구슬에는 우주삼라만상이 휘황찬란하게 투영된다. 삼라만상이 투영된 구슬들은 서로서로 다른 구슬들에 투영된다. 이 구슬은 저 구슬에 투영되고 저 구슬은 이 구슬에 투영된다. 작은 구슬은 큰 구슬에 투영되고 큰 구슬은 작은 구슬에 투영된다. 동쪽 구슬은 서쪽 구슬에 투영되고 서쪽 구슬은 동쪽 구슬에 투영된다. 남쪽 구슬은 북쪽 구슬에 투영되고 북쪽 구슬은 남쪽 구슬에 투영된다. 위의 구슬은 아래 구슬에 투영되고 아래 구슬은 위의 구슬에 투영된다. 정신의 구슬은 물질의 구슬에 투영되고 물질의 구슬은 정신의 구슬에 투영된다. 인간의 구슬은 자연의 구슬에 투영되고 자연의 구슬은 인간의 구슬에 투영된다. 시간의 구슬은 공간의 구슬에 투영되고 공간의 구슬은 시간의 구슬에 투영된다. 동시에 겹겹으로 서로서로 투영되고 서로서로 투영을 받아들인다. 총체적으로 무궁무진하게 투영이 이루어진다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이러한 세계에 대한 비유는 오늘의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윤리학의 기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동시에 겹겹으로 서로서로 투영되고 서로서로 투영을 받아들인다. 총체적으로 무궁무진하게 투영이 이루어진' 세계에서는 한 사람의 행위가 눈앞에 있는 사람뿐이 아니라 먼 곳의 수많은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칠수 있게 된다. 내가 흔들리면 내 속에 비춰진 남도 흔들리고, 그래서 다시 내가 흔들리게 되는 세상. 개인의 이익이라는 것도 이제는 무수한 일들의 결과로 마침내 자신에게 되돌아올 것이 무엇인지까지 고려되는 개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더 많은 사람들이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가 울고, 천둥이 치고, 무서리가 내렸다'는 말을 이해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4 Responses to “새 시대의 윤리학”

  1. greenviller says:

    대학교 1학년 때 '현대물리와 인간사고의 변혁'이란 수업 리포트 주제가 '천도 (天道)의 존재를 물리학적 관점에서 입증해 보라' 여서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입증한다고 non-locality, holism 뭐 이런 얘기들을 주절주절 풀어놨었는데..

    무식한 사회계열이라 내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아직도 잘은 이해가 되질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양자론이 제시하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천도의 존재를 의심케하는 현실의 모순들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을 했던거 같은데..

    그 때 리포트 중에 '국화옆에서'를 인용해 넣었던 기억이 나네요.
    점수 좀 받을까 해서 예쁜 국화 그림도 넣고.. 구차하게;;;

  2. greenviller says:

    암튼, "과연 천도가 존재하는가??" 하는 사마천의 절규가 가슴에 사무치는 요즘이군요.

    뭐, 이미 반쯤은 포기 내지는 체념상태이긴 하지만...

  3. pythagoras says:

    greenviller/ 수업명이 ㅎㄷㄷ 이네요. 국화옆에서가 나름 인기시인가 봅니다

  4. Joyh says:

    문제 링크를 누르니 다른 시가 나오네요 ;)

    좋은 정치 포럼에서 http://www.goodpol.net/discussion/progress.board/entry/270 이 글을 읽고 바로 피타고라스님의 새시대의 윤리학이 생각 났더랩니다.

    작금의 상황은 ‘개인적이고, 식별하기 쉬우며, 일상적인 해악을 경계하는 도덕성’ 조차 개차반인지라 문제겠지마능...
    역시 앞서가는 철구횽.. 같이 좀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