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도자기'와 일상을 깨우는 지식의 가능성에 대하여

Crete님의 코멘트에 어제쓴 일상을 깨우는 지식의 힘을 좀더 수정 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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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에 방송된 '도자기'라는 KBS의 6부작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먼 옛날 토기로부터 시작해서 수천년의 세월을 지나 우주왕복선의 외벽타일까지 도자기라는 하이테크 상품이 어떻게 변화, 발전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인류의 여러 문명권이 어떻게 소통해왔는가를 잘 그려낸 다큐입니다. 도자기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정보를 담고 있는, 훌륭한 다큐이기 때문에 기회가 되는 분들은 꼭 한번 구해서 보시기를 권합니다. 단순히 도자기에 대한 단편적인 사실을 넘어, 도자기를 주제로 벌어진 전지구적인 문명권들의 상호작용, 명품에 대한 인간의 욕망, 기술의 끊임없는 발전과 도자기 무역의 승자가 되기 위한 치열한 경쟁 등 시대에 대한 고민꺼리도 던져줄 수 있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큐를 통해 들을 수 있는 몇 가지 이야기만 짧게 소개해보겠습니다.

6부작 중 3부 '이슬람의 유산'에서는 몽골 유목민들의 흰젖에 대한 숭상과 그들의 세계지배가 백자를 새로운 위치로 올려놓고, 몽골제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이슬람인들이 코발트 푸른 빛으로 백자 위에 그림을 그려 마침내 명품 청화백자가 탄생하게 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보통 고려시대에는 청자, 조선시대에는 백자라고 배워왔는데요. 고려말기에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몽골제국의 유산이 청자에서 백자로 넘어가는 이유는 아니었을까 물어보게 됩니다.

대항해시대의 유럽은 언제나 새롭고 귀한 것에 열광하였는데, 대표적으로 16세기에는 후추, 17세기에는 차와 커피가 그렇습니다. 이들을 마시기 위해 찻잔과 커피잔이 필요해지는데, 여기에 품격을 더한 것이 바로 아시아에서 온 자기입니다. 커피잔에 손잡이를 붙인 것은 중국의 징더전, 받침과 주전자를 만든 것은 일본의 아리타. 이렇게 중국과 일본, 두 나라의 도자기 수출을 위한 경쟁이 지금의 커피잔 세트를 만들어 낸 것이라는 얘기도 나옵니다. 커피잔의 기원 그리고 그 기술의 혁신이 이루어지는데  몇세기전 중국과 일본의 수출 경쟁이 자리하고 있다니, 새로운 자극을 주는 얘기가 아닐수 없습니다.

물론 중국과 일본의 도자기 경쟁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전에, 일본의 도자기 기술이 어디서 기원하게 되었는지가 우리에게는 더 많은 생각의 재료들을 제공해줍니다. 임진왜란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는데요. 1500년대 일본의 영주들 사이에는 다도가 유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차문화와 예법이 발달하게 되었고, 조선에서 만들어진 다완이 매우 귀하게 여겨졌다 하구요. 그 이전 시대까지 도자기 생산이 가능한 나라는 세계에서 중국과 한국, 베트남 뿐이었다고 전해지며 한국만이 중국의 기술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하더군요. 조선다완의 이름 때문이었는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의 도공들을 잡아오라는 명령을 내리고, 그러한 전쟁의 여파로 조선의 자기생산기반은 완전히 무너지게 되는 반면에 일본은 17세기 중반에는 유럽에 자기를 수출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게 됩니다.

네 덜란드는 당시 세계 무역을 주도했는데, 유럽에서의 도자기 열풍이란 대단한 것이어서, 유럽의 귀족들이 도자기를 통해 건물을 장식하기까지 했다죠. 영어 단어 china는 도자기라는 뜻을 가지고도 있는데요. 도자기란 단순한 상품을 넘어선 서양이 동양을 보게 된 창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러면 영어단어 japan은 어떨까요. 재밌는 일인데 '칠기, 일본제 도자기'의 뜻이 있네요. 아무튼 시대의 기회를 포착한 일본은 네덜란드를 통해 도자기를 유럽에 수출하고, 일본과 네덜란드의 이러한 인연은 훗날 일본 근대화의 젖줄이 될 난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제가 언젠가 써둔 강추다큐, KBS 역사기행 ‘일본 개화의 창, 나가사키 데지마’ 를 한번 참조해 보시는게 좋겠습니다. 역으로 19세기말, 유럽에 수출되던 일본 도자기의 포장지로 사용된 화려한 색채의 일본판화들이 유럽의 미술에 준 영향도 살짝 언급해 두는게 좋겠습니다.

도자기로 벽면이 장식된 서양의 건물

조선은 세계에 통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찌되었든 도자기를 놓고 일본과 조선의 운명은 뒤바뀌었습니다. 세계에 통할 차별화된 기술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결국은 무엇이 귀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고, 바깥 세상의 변화에도 무지했던 탓에, 결국 내리막길로 치닫게 되는 조선의 운명을 보면 정말 많은 생각이 들게 됩니다. china와 japan이라는 영어단어는 그렇게 남아 시대를 증언하고 있는데, korea는 어디에 있을까요? 아무튼 전쟁이 있은후 조정에서 제사지낼때 쓸 술잔도 구하기 어려워졌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지요. 조선시대버전의 이공계위기가 망국으로 이어진 사례로 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도공은 대접받고 살았을까요

아무튼 이후 유럽이 어떻게 중국과 일본의 자기기술을 따라잡게 되고, 현대로 시야를 돌려 마침내 1500도 이상을 견디는 도자기가 우주왕복선에 사용되기까지의 많은 새로운 정보들도 역시 다큐를 통해 접할 수 있습니다.

다큐에 대한 소개를 마무리하기 전에 하고싶은 말을 하나 더 붙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도자기’라는 하나의 물건에 담긴 이런 많은 사연들을 듣고 나니, 세상이 새로와지더라 하는 얘기를 전하고 싶은 건데요. 저는 이 다큐를 열심히 보고 난 이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커피잔과 밥그릇, 접시 등등등 그 모든 것이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커피향을 바꾸고, 밥맛을 다르게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무런 자극없이 반복되던 삶의 순간순간들이 경이로운 순간들로 바뀌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이죠. 자기의 색깔부터, 접시에 새겨진 그림, 표면에 있는 유리질의 빛감 등등 그 모든 것이 감각을 자극하게 됩니다.

다른 것은 하나도 본적이 없으면서, 고려의 상감청자가 세계최고라는 것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저는 그러한 외눈박이 지식은 파괴적이고 위험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수천년의 세월, 동서양을 가로질러 하나의 사물에 담긴 풍부한 사연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준다면 어쩌면 다른 문화에 대한 관용과 공존에 대한 지혜는 저절로 얻어지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도자기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고추가 들어간 김치도 대항해시대 이후 근대의 산물일테고 말이죠. 일상 속 하나하나의 사물에 새겨져있을 오랜시간 인류의 수많은 인연과 드라마를 안다면, 매일 똑같아 지겹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역사에 대한 상상을 자극하고 여러감각을 일깨우는 소중한 시간으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지식은 때로는 세상을 직접 변혁시키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지만, 때때로 자기자신을 변화시켜 세상을 새롭게 드러내주는 기능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일상마저도 혁신할 수 있는 지식의 가능성을 전하는 것을 교육개혁의 가장 중요한 곳에 두고 싶습니다. 오늘 밥을 먹을땐, 한번 그 밥그릇을 좀 들여다보며 이런저런 것들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는 것이 어떨지요.

One Response to “다큐 '도자기'와 일상을 깨우는 지식의 가능성에 대하여”

  1. [...] 인용을 하자면 예전에 다큐 ‘도자기’와 일상을 깨우는 지식의 가능성에 대하여에서 나는 이렇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