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December, 2008

할머니와의 대화

Sunday, December 28th, 2008

이번에 한국에 오면서 꼭 하나 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이, 할머니의 지난 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그를 바탕으로 그 삶에 대하여 작게나마 정리를 시도해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요며칠 몇시간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눠보았고, 작게나마 성과를 거뒀다. 글을 대강 정리하여, 다른 가족들이 계속 수정 보완할 수 있는 프로젝트로 끌고가는 것이 일단의 목표이다.

이런 말을 하면 불경한 것인지 모르겠다만은, 연세가 연세인만큼 이번이 마지막 뵙는 것이 될지, 그 다음이 마지막 뵙는 것이 될지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일에 착수하게 되었다.

사실 이렇게 장시간 이야기를 들어본 것은 생전 처음이었고,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많이 있었다. 할머니는 1940년 즈음에 할아버지에게 시집을 왔는데, 그 때 일제에 의한 처녀공출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기 위하여 갑작스럽게 시집을 오게 됐다고...할머니는 색시공출이라고 표현하셨다. 나의 존재에 새겨져 있는 '역사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된다. 당신은 역사에 별로 상관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역사는 당신에게 상관이 있다!

경조사비에 대한 단상

Sunday, December 28th, 2008

한달 전의 야후 설문조사(야후! 설문, 네티즌 72% "경제위기, 이제부터가 시작" )에 따르면, 경조사비는 다음과 같이 불황에 부담스러운 지출 1위로 꼽혔다.

이러한 불황이 체감 단계에 이르면서 '불황에 가장 부담스러운 지출'로 전체 2,129명의 응답자 중 39%에 해당되는 828명이 '경조사비'를 꼽았다. '결혼식', '돌', '부고' 등은 줄이거나 안 할 수 없어서 부담이 큰 것. 이어 '사교육비'가 22%(472명)로 2위, '옷이나 화장품'이 17%(365명), '술값 등 유흥비'가 15%(325명)로 각각 3, 4위로 나타났다.

한국사회는 기본적으로 개인을 보호하는 측면에 있어서 공적인 영역이 합리적으로 발달되어 있지를 않고, 개인들 스스로가 살아남을 방도를 찾도록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연고주의는 바로 여기서 싹튼다. 연고로 잘 짜여진 사회는 공적영역의 발달을 저해하고, 역으로 발달되지 못한 공적영역은 다시 개인들로 하여금 인맥찾아 삼만리를 헤매도록 만든다.

경조사비는 대한민국 연고주의의 상징이다. 사람들은 단순히 봉투만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사람들 사이에 맺어진 동맹을 상징한다. 힘들때 서로서로 빽이 될 것임에 대한 서약이랄까.

어른들이 주말에 결혼식 다녀오는 횟수를 보고있노라면, 그 귀한 주말 시간들을 너무나도 아깝게 탕진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예전에 바하문트 님께서는 결혼을 집안과 집안 사이의 인수합병이라고 표현했는데, 경조사비는 이 인수합병된 조직에 대한 일종의 투자금이라 할까?

사실 경조사비는 보험같은 제도가 없었던 전통사회에서 일종의 사회부조 기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경조사비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사회에 무슨 기능을 하고 있는가? '불황에 부담스러운 지출 1위'가 된 경조사비라면 이러한 경제위기의 시절은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로 삼을만하지 않을까? 위의 설문보다는 훨씬더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 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게 쉬운 문제는 아닌 것이, 각 개인들 입장에서는 투자금을 회수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주는 봉투의 횟수는 많아도 오는 봉투의 횟수는 적다는 문제가 있다.

봉투만 왔다갔다하는 아무런 생각없는 허례허식말고, 죽음과 삶, 인간의 성장에 대한 진실된 성찰에 바탕한 경조사 문화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시지프 신화

Friday, December 26th, 2008

시지프의 신화에 있어서는 다만 거대한 돌을 들어올려 산비탈로굴려 올리기를 수백 번이나 되풀이하느라고 잔뜩 긴장해 있는 육체의 노력이 보일 뿐이다. 경련하는 얼굴, 바위에 밀착한 뺨, 진흙에 덮인 돌덩어리를 떠받치는 어깨와 그것을 고여 버티는 한쪽 다리, 돌을 되받아 안은 팔끝, 흙투성이가 된 두 손 등 온통 인간적인 확신이 보인다. 하늘 없는 공간과 깊이 없는 시간으로나 헤아릴 수 있는 이 기나긴 노력 끝에 목표는 달성된다. 그때 시지프는 돌이 순식간에 저 아래 세계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바라본다. 그 아래로부터 정점을 향해 이제 다시 돌을 끌어올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는 또다시 들판으로 내려간다.

바로 저 정상에서 되돌아 내려오는 걸음, 잠시 동안의 휴식 때문에 특히 시지프는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이다. 그토록이나 돌덩이에 바싹 닿은 채로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은 이미 그 자체가 돌이다! 나는 이 사람이 무겁지만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아무리 해도 끝장을 볼 수 없을 고통을 향하여 다시 걸어 내려오는 것을 본다. 마치 내쉬는 숨과 같은 이 시간, 또한 불행처럼 어김없이 되찾아오는 이 시간은 곧 의식의 시간이다. 그가 산꼭대기를 떠나 제신의 소굴을 향하여 조금씩 더 깊숙이 내려가는 그 순간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더 우월하다. 그는 그의 바위보다 더 강하다.
이 신화가 비극적인 것은 주인공의 의식이 깨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성공의 희망이 그를 떠받쳐준다면 무엇 때문에 그가 고통스러워하겠는가? (이하 생략)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책이 먼가 간지는 나는것 같은데 좀 어려운듯... 무식해서리... 암튼 고통스러울때, 씨익~ 웃으며 다시 돌아가라는 메세지가 맞는거임?

강희제

Friday, December 26th, 2008

강희제는 청나라의 네번째 황제로 1661년부터 1722년까지 황제의 자리에 있었다. 위키의 '강희제' 항목에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이렇게 내외로 청나라의 국위를 튼튼히 세워 당시까지도 중국 최고의 제왕으로 불리던 당 태종(唐太宗)보다 더 뛰어난 업적을 남겨 100년이 넘는 청나라의 전성기이며 중국 역대 황조 중 마지막 태평성대인 강건성세(康乾盛世)를 일으켜 아들인 옹정제(雍正帝), 손자인 건륭제(乾隆帝)까지 태평성대가 지속되었으며, 중국 역사상 최고의 성군이자 명군, 즉 천고일제(千古一帝, 천년에 한 번 나올 만한 황제) 또는 연호를 따서 강희대제(康熙大帝)로 칭송받으며 또는 그의 리더십과 결정력, 통찰력을 높이 사서 ‘최고경영책임자가 갖춰야 할 덕목을 모두 갖춘 황제’로도 불리며 아직까지도 많은 중국인에게 존경받는다. 그는 당시 서양에서 역시 절대 왕정을 수립한 루이 14세, 근대화에 박차를 가한 표트르 1세 등 업적이 많은 유럽의 여러 군주와 더불어 당시 아시아를 대표하는 통치자였다. 또한 아들 35명과 딸 20명을 두어 중국 역대 황제 중 가장 많은 자녀를 둔 황제이기도 하다.

나는 16세기부터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서양의 대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은데, 그러한 가운데, 이 강희제의 이야기를 조금 알게 되었다. 주경철의 대항해시대에서 메모한 바를 보자면,

예수회
서양 고전, 논리학, 수학, 자연과학 등의 분야에서 상당한 정도의 쌓고 그것을 바탕으로 전도
당대 최고 수준의 과학자는 아니지만, 최신 과학 지식을 흡수한 엘리트
대부분 어학 능력이 뛰어남
마테오 리치가 중국 사회에 깊숙이 진입할 수 있었던 것도 중국 고전들을 해독하고 한문 저작을 쓰는 어학실력 때문에 가능

강희제
유럽 선교사들로부터 스스로 수학을 배울 정도로 유럽 과학과 기술에 관심
십자가보다 시계에 더 마음이 간 것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예수회 신부들을 보냈을 때 의도적으로 수학에 능통한 사람들을 선발
이들의 명칭은 '국왕의 수학자들'
이 때의 수학 내용은 대개 캘린더 제작을 위한 계산법 위주
17-18세기 수학이라기보다는 르네상스 수학
데카르트, 뉴튼, 라이프니츠 등의 업적은 전달되지 못함
수학에 정통한 선교사들과 매일 2-3시간씩 수학을 논할 정도
그러나 이를 통해 황제를 개종하고 더 나아가서 중국 전체를 선교하겠다는 전략은 애초에 가능성이 없었음
강희제가 수학을 좋아하는 것과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
'주자전서'를 편찬할 정도로 주자학을 확고부동한 기본으로 삼은 인물

이 정도라면 전설적인 '호학'의 군주라 할만하다. 시대로보나, 행위로보나, 조선 '정조'가 모델로 삼았을 만한 인물로 보이는데, 어떤 역사적인 연계가 있을지 궁금하다.

조너던 스펜스의 '강희제' 에는 강희제가 죽기 5년전 남긴 고별 상유 (상유 上諭 왕의 말씀)가 수록되어 있다. 정신이 또렷한 상태에서 남기고자했던 세상에 전하는 유언이라고 보면 되겠다. 다음과 같은 부분이 내 눈에 띄었다.

짐이 태어났을 때 결코 신령스럽거나 기이한 징조들이 보이지 않았다. 또 자라날 때도 신기한 징조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여덟 살에 제위에 오른 후 지금까지 57년 동안 역사책에 실려있는 상서로운 별, 상서로운 구름, 기린과 봉황, 지초가 나타나는 경사라든가 궁궐 앞에 불타는 진주와 옥이 나타나거나 천서가 하늘의 뜻을 나타내려고 떨어지는 것 따위의 하늘에서 내려준다는 상서로운 조짐은 사람들로 하여금 말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는 모두 헛된 말일 뿐이다. 짐은 감히 그렇게까지 (잘 다스렸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다만 하루하루의 일상을 진실된 마음을 갖고 실제에 도움이 되도록 다스렸을 뿐이다.

이 담백한 고백에서 진실로 훌륭했을 것같은 인간의 면모를 보게 된다. 예수는 태어날 때 별이 반짝거렸다고 했는데, 예수회가 왜 강희제에게 기독교를 전하는데 실패했으며, 수학만 가르쳐주었어야 했는지 쉽게 이해가 간다.

이러한 계몽군주의 장기간 치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백년후 동양세계는 서양에게 완전히 발려버리게 되었으니, 무엇이 문제였을까.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

남자도 앉아서 소변보기에 대한 설문결과

Wednesday, December 24th, 2008

귀차니즘을 극복하고 설문에 답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남성분 24명이 설문에 답해주셨습니다. 설문결과는 저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는군요. 소변볼때 '앉아서' 본다고 답해주신분이 11명, '서서'라고 답해주신분이 13명입니다. 세상이 어느새 이렇게 변한 것인가요?

여성분들께서는 4명이 답해주셨습니다.(-_-) 화장실을 함께 쓰는 남성분이 (만약 있다면) 소변보는 자세로 선호하는 자세로 3명이 '본인이 원하는 대로'라고 답해주셨고, 1명만이 '앉아서'라고 답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선호하는 자세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이라는 질문에는 3명이 답해주셨는데, 모두 '별로 상관없다'고 답해주셨습니다.

조사의 신뢰성과 해석은 모두 읽는 분들께 맡기도록 하겠으며,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소변보는 자세때문에 미움받지 마시고, 알아서 기시라능...

아무튼 이 조사결과를 받아들고 내리는 결론은 이제 제 블로그도 좀 '감성' 블로그로 진화해야할것같다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