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November, 2008

소말리아 해적관련 이명박표 대운하 수출 제안

Sunday, November 30th, 2008

요즘 소말리아 해적이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실상에 대한 소개는 뉴스메이커의 ‘해적 악명’으로 슬픈 소말리아여~' 기사를 참조.

소말리아가 어디에 있는지 지도를 보도록 하자.

세계경제가 어려운 시점에 소말리아 유일의 산업이라 할수 있는 해적의 기승은 참으로 국제공조를 통한 해결이 필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해적의 기승으로 인한 결과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한 기사는 이렇게 전한다.

해운사 "희망봉으로 항로 우회"

소말리아 해적들은 해상교통 흐름까지 바꿔놓고 있다. 세계적인 해운사들이 해적들이 날뛰는 아덴만을 피해 유류비, 보험료 등 비용은 물론 시간이 훨씬 더 소요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으로 우회하는 항로를 채택하고 있는 것.

국제건화물선주협회(인터카고) 사무총장 로브 로마스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많은 해운사들이 수에즈 운하를 피해 항로를 변경하고 있다"면서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등으로 수에즈 운하가 폐쇄된 적은 있지만 해적 때문에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은 미증유의 일"이라고 말했다.(해적 발호에 적색신호 켜진 소말리아 해역 )

日해운업계, 소말리아 해적 피해 '희망봉' 우회 라는 기사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지난달 30일 일본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해운업계는 올 가을부터 유럽 항로를 수에즈운하로 통하는 에덴만 대신 아프리카 남단인 남아공의 희망봉으로 우회했다.

수에즈를 거쳐 가던 유럽 항로를 희망봉으로 바꾸면 항해거리는 6500km 정도로 소요일은 610일 정도 늘어난다.

우회에 따른 비용도 만만치 않다. 연료비와 인건비도 늘어 1척당 4000만엔(약 6억1400만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 업계 전체로 따지면 추가 비용은 100억엔(약 1500억원)에 육박한다.

일본 해운업계가 이 같이 막대한 추가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항로를 우회한 것은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시달리느니 차라리 추가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낫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명박님께서는 일찍부터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에 대운하를 건설하자고 주장하신 바가 있다. 덧붙여 그간 잃어버린 10년간 힘겹게 열어온 대륙으로 통하는 길을 막고 계시기도 하다.

이명박님의 눈을 중동으로 돌려보자.

대운하 제안 지역

이라크를 가로지르는 대운하라면 수에즈운하를 대체할 수 있지 않겠는지? 세계사를 바꿀만할텐데. 이라크 정도 사이즈면 한반도와 스케일이 다른 정도는 아닌데, 한번 고려해서 국제 사회에 제안해 보심이...

외국인과 대화할때 한국정치의 비정상성을 설명하려면

Sunday, November 30th, 2008

적어도 내가 얘기해본 외국인들은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제 꽤 정착된 것으로 이해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맞는 것이다. 기본적인 절차에 대한 민주주의는 적어도 정착되었다.

지금부터 가야하는 길은 민주주의의 새로운 단계이다. 민주화된 제도위에 이제 그 민주제도를 실현하기 위한 실체인 바람직한 정당정치의 정착이 요청되는 것이다.

외국인들과 대화할때 한국의 정치가 절차적인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정착되었으나, 정당정치는 아직 문제가 많다는 점을 이해시키기 위한 내가 파악하는 가장 좋은 논거는 이것이다.

대통령이 인기없으면 자기 정당에서 쫓겨난다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공산당만 있는 나라 출신에게는 하기 버거운 얘기지만, 적어도 그 외의 민주주의 국가들에게는 나의 경험상 이 것이면 설득력이 있다. 고개를 끄덕끄덕 할 것이라 예상한다. 실험해 보신 분은, 결과를 알려주시길...

이명박님에게 내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이것 하나 퇴임 전에 딴나라당에서 안쫓겨나고 버텨주는 것뿐이지만, 지금 같아서는 이것도 힘들듯... 2012년에 총선있음...

EBS 다큐프라임 한반도의 공룡 3부작 및 다큐 단상

Saturday, November 29th, 2008

최근에 방송된 EBS 다큐프라임 한반도의 공룡 3부작 재밌습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작품인데요, 과연 한반도에 살았던 공룡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한 분들은 꼭 보세요. 제작기간 1년, 제작비 16억원 투입되었다고 하는데, 한번 볼만한 작품입니다.

다큐가 활발히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사실 돈만 있다면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사회가 가진 여러 방면의 축적된 역량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는데요. 한국 다큐의 품질을 보면, 그동안 진행된 대한민국의 번영이 조금씩 열매를 맺어가고있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치 분야만 제대로 좀 손을 볼 수 있다면, 머지않아 어디가도 쪽팔리지 않은 나라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2프로가 모자라~ 딴나라당 때메 쪽팔려여~

그동안 다큐를 조금 보니 자세한 사정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바가 없지만,  KBS다큐는 굉장한 수준급에 올라 있고, EBS다큐의 성장이 아주 눈부신것 같네요. 한국 다큐의 쌍두마차입니다. 그에 반해 MBC 다큐는 보면 뭔가 항상 좀 부족한 것 같고, SBS다큐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만들기는 하는 것임?

강추다큐, KBS 역사기행 '일본 개화의 창, 나가사키 데지마'

Friday, November 28th, 2008

이곳은 연휴입니다. 날잡아서, 그동안 많이 봐 쌓인 다큐멘터리들을 좀 복습하며, 소개하는 글을 좀 써보려고 했는데, 일을 크게 벌리려니 작업하기가 어렵군요. 일단 가볍게 한편 소개합니다.

2006년 11월 19일, KBS 1TV에서 방송된 역사기행 '일본 개화의 창, 나가사키 데지마' 인데요. 참 좋은 교훈을 주는 다큐라는 생각이 듭니다. 학창시절 역사시간에는, 포르투갈의 바스코다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항로를 발견한다는 이야기를 참 무미건조하게 배우는 때가 있습니다만, 역사를 이렇게 단편적 사건으로 가르치는데 조금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사건이 나중에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를 보려면, 그 길을 좀 더 이어보아야 합니다.

희망봉을 찍고, 아라비아해와 인도양을 거쳐 동진하게 되면,  해양무역의 거점들을 마주치게 됩니다.

'일본 개화의 창, 나가사키 데지마' 나가사키는 일본에서 바로 다음과 같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희망봉을 돌아온 포르투갈 선박이 가장 먼저 일본에 닿을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이제 다큐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데지마는 1636년 나가사키에 만들어진 인공섬

네덜란드 상인들이 머물렀음

1543년 규슈 남쪽 다네가시마에 도착했던 포르투갈 상인들

이 때 일본에 조총이 전래되었는데, 영주는 8억원을 주고 조총을 구입함

오다 노부가나의 전쟁,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에 모두 조총이 활용됨.

카스텔라는 포르투갈인들의 빵을 흉내낸 나가사키 사람들의 발명품

1680년대 조선통신사 일행이 카스텔라를 처음으로 맛봄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1570년 나가사키를 포르투갈에 전면개방

봉건제를 유지하는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여겨진 기독교는 막고, 교역은 계속하기 위한 수단을 모색함.

기독교탄압정책을 펴기 시작함.

1636년 나가사키에 데지마를 건조하고 포르투갈인들을 그곳에서만 머물수 있게 함.

1년후 기독교인이 주축이 됨 시마바라의 난으로 포르투갈 인들은 추방됨.

네덜란드는 반란을 진압하는데 도움을 주고 환심을 사게 됨

그 이후, 데지마에 네덜란드인들이 머무르게 됨.

1859년까지 쇄국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인들에게 데지마를 통해 일본과 독점무역을 할 수 있었음.

데지마로 들어온 서양문물은 일본 전역으로 확산됨.

포도주, 배드민턴 같은 것들이 보급되는 계기가 됨. 일본이 근대로 가는 날개 역할을 하게 됨.

당시 네덜란드의 교역망

1823년 네덜란드 상관의 주치의로 파견된 시볼트가 일본의 의학에 혁신을 가져옴.

시볼트에게는 데지마 밖으로 나오는 것이 허용되었고, 일본인들에게 의학을 가르칠 수 있었음.

나가사키의 나루타기 학원에서 일본의 근대의학이 싹트게 됨.

에도 막부는 나가사키의 네덜란드인들을 1년에 한번씩 불러들임.

그들이 교역선에 가져와 막부에 보고하는 풍설서가 막부로 하여금 국제정세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줌.

해체신서의 발간과 일본의 서양학문의 번역 작업 본격 시작.

메이지 정부는 난학을 통해 모든 정보를 얻게 됨.

메이지정부의 비전을 세운 사카모토 료마 나가사키에 머무르며 공부함.

사카모토 료마

일본도 미국의 페리 제독에 의해서 강제로 개항을 할 때까지 쇄국정책을 실시했지만, 우리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바로 이 나가사키의 데지마가 열려 있어서, 서양과의 대화를 계속할 수 있었다는 것이겠습니다. 훗날 이것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생각한다면, 이 나가사키라는 보험은 너무나 성공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에서 말했던 얻을만한 교훈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보험'을 말하는 것입니다. 외통수에 빠지지 않고, 이렇게 보험에 들어두는 것, 이런 것이 진정한 실용의 정신일텐데 말이죠. 우리는 어쩌다 이 찬란한 21세기에 반공정부를 탄생시켰는지... ㅠ.ㅠ

이 다큐에서 언급한 것은 아닙니다만, 일본의 도자기 생산지역으로 다음과 같은 지도가 있는데요.

일본의 도자기 생산 지역

나가사키 인근의 이 지역들에서 생산된 도자기들이 네덜란드를 통해 전세계로 팔려나갔을거라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물론 일본의 그 도자기 기술은 임진왜란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고, 문명교류의 바다인 대한해협을 볼 줄 알아야 하는 일이겠지요. 예전에 쓴 '임진왜란과 빈센트 반 고흐'가 조금 관련이 있네요. 17세기 당시의 눈으로 살펴본다면, 조선 역시 지리적 조건이나 테크놀로지 면에서 이러한 세계적인 교역망에 동참할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여지는데, 무엇이 부족했던 것일까요.

그럼 저는 계속 다큐정리작업을 수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것은 사실 맛보기였지만, 이렇게 하다가능 포스팅하기 어렵겠다능...

블로깅 좀 쉬도록 하겠습니다

Friday, November 21st, 2008

몸도 마음도 지쳤어요.

jimanon.JPG

헐... 여섯개나 만들어도 저렇게 산단 말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좀 쉬고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