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May, 2008

고향 앞으로~

Wednesday, May 21st, 2008

이제 집에서 나섭니다. 오늘 저녁이면 또 한국의 습한 공기를 마실수 있으려나.
아무튼 당분간은 한국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수학문제 푸는 세종대왕

Tuesday, May 20th, 2008

눈병을 초래할 정도로 읽어댄 이 독서왕의 지식은 참으로 넓고 깊었다. 세종은 알려진 바와 같이 문학과 역사, 유학은 물론이고 언어학, 음악학, 천문학, 농학, 기계학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지식을 쌓고 있었다. 조선 후기가 되면 극소수 일부 양반을 제외하고는 오직 중인들의 학문이 되었던 수학 역시 그의 관심 대상이었다. 그는 수학책 '계몽산(啓蒙算)'의 문제를 풀었다. 당시 최고의 학자였던 정인지는 세종이 문제를 풀다 막힐 때를 대비하여, 세종의 수학 공부시간이면 늘 옆에 앉아 대기하고 있었다. 왕이 왜 고생스럽게 <수학의 정석>을 끼고 앉아 머리를 썩이는 것인가.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산수는 임금에게는 필요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성인께서 제정한 것이기에 나는 알고 싶다" (세종실록 12년 10월 23일). 제왕의 수학 공부라! 국가 재정을 파악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해해주고 싶지만, 사실 그의 수학 공부는 마르지 않는 지식욕 때문이었을 것이다.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중에서-

역시 그 생각의 깊이가 이 정도는 되어야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 성군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또 궁금하여 '계몽산(啓蒙算)'이란게 어느 정도 수준일까 대강 찾아보니, 이 책 지은이가 쓴 다른 글 하나가 나오는데,

조선시대에 왕이 수학을 공부한 사례는 아마도 세종이 유일할 것이다. 세종의 수학교과서 계몽산이란 뭔가?
원나라 주세걸이 지은 '산학계몽'이란 수학책으로 곱셈.나눗셈, 무게의 단위 환산, 도량형의 표시, 농토의 측량 단위, 원주율, 분수, 음수.양수끼리의 연산4칙, 제곱근 구하기 등이 그 주요 내용이다.

요즘 시대에는 대략 중학교 1학년 정도면 알 수 있는 수준인 것 같다.

그리하여 조선 세종 시대는 엄청난 문화의 전성기였는데, 이렇게 지식 수준이 높은 이 시대에 우리는 나라 꼴이 왜 이 모양일까? 그것은 아마도 지식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그에 대한 태도라던가 마음일 것이기 때문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를 읽고 - 미친소 정국

Tuesday, May 20th, 2008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맘잡고 읽었더니, 금방 다 읽을 수 있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만큼 사람의 성장을 돕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책이니 한번씩들 읽어 보시길.

아주 간략하게 요약을 해 보자면, 저자는 미국 진보와 보수의 마음속에 각각 '자상한 부모의 가정'의 가치관과 '엄격한 아버지의 가정'의 가치관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하며, 모든 사람에게는 이 두 개의 가치관이 공존하는데(물론 다른 비율로), 선거에 이기기 위하여 중요한 것은 프레이밍이라는 작업을 통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중 한쪽의 가치를 활성화(activate)시키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이었다.

배웠으니 이 이야기를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에 한번 연습삼아서 적용을 해보자. 이번 미국 쇠고기 논란의 핵심에 나는 바로 여자들이 있다고 보았다.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여중고생들과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선영님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왜 여자들은 분노했는가? (남자들은 잠시 빠져주삼) 여자 특유의 '보호'에 대한 예민함이라 할까, 바로 그 부분을 건드린 것이 아닐까? 바로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않고 있다'는 상황에 분노한 것이다. 바로 이 순간 국가는 '자상한 부모의 가정'과 같이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는 주로 진보진영의 가치)에 파란불이 들어온다. 역으로 지금껏 승승장구하던 이메가의 '돈이 최고' 가치관에는 빨간불이 들어온다. 처음에 일이 커지자 '수입해도 안 사먹으면 된다'는 말로 상황을 수습하려 했던 이메가, '공감'과 '책임'이라는 진보의 프레임들을 더욱더 건드리는데...

저자의 주장을 따르자면, 지금은 이런 분위기를 타고 '공기업 민영화'라던가 '공교육 파괴' '의료보험 민영화'같은 공동체의 인프라 해체 작업에 반대 목소리를 키울 수 있는 좋은 상황인건데 말이다. '국가는 국민을 챙기고 보호하라!' 는 슬로건과 함께. 이러면서 슬그머니 묻어서 '국가수리과학연구소'도 좀 지켜주고 말이지.

이번학기는 오늘밤으로 끝내자-

Sunday, May 18th, 2008

강의는 이미 다 끝났는데, 마지막으로 써서 내야 할 것들이 있어서, 아직 학기를 마무리짓지 못하고 있다. characteristic class 를 주제로 한 두 개의 survey paper를 작성하고 있다. 오늘밤으로는 끝을 내야지.

그리고 이제 집에 갈 준비 하자!!!!


금문교도 지겹다

사람을 기르던 규장각

Sunday, May 18th, 2008

MBC의 드라마 '이산'에 다산 정약용이 등장했다는 기사를 봤다.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과 같은 규장각 검서관들와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이 있었다고.

정약용이 1762년에 태어나, 1789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관리가 되었다고 하니 대략 1790년대초의 이야기일듯 하다. 참고로 박제가는 1750년에 태어나 1805년까지, 정조는 1752년에 태어나 1800년까지 살았다 한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정조와 박제가가 이제 갓 마흔이 되고, 정약용은 이제 나이 서른이 된 때인 것이다. 규장각을 통해 직접 개혁세력을 키워냈던 정조. 개혁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찬 젊은 사람들이 만들어냈던, 19세기가 되기 직전, 조선의 매력적인 시대의 이야기이다.

그는 또한 영조 때부터 시작된 문물 제도의 보완 및 정비 작업을 계승, 완결하였다. 아울러 스스로 초월적인 통치자로 군림하면서 스승의 입장에서 신하들을 양성하고 재교육시키려 하였다. 정조는 우수한 인재를 뽑아 초계문신이 라 칭하고 매월 2차례씩 시험을 치루었으며 상과 벌을 직접 내리기도 했는데, 소외받던 영남계 인사들도 과거에 응시하도록 하였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는 중인 이하 평민에게까지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정조 시대는 양반은 물론, 중인, 서얼, 평민층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져 문화를 크게 꽃피웠던 시대였다. (위키피디아 '조선 정조')

그러나 1800년에 정조가 죽으며 개혁은 좌절되고 권력이 바뀌니, 그 직후 정약용은 저 멀리 땅끝으로 18년간의 기나긴 유배생활에 들어간다.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만한 것은, 그가 유배지에서 후대에게 유산으로 남긴 방대한 저술들. 유배생활로 주어진 넉넉한 시간과 함께 규장각에서 갈고닦은 솜씨와 직접 키운 제자들과의 공동작업으로 가능했다고. 아무튼 그 이후 세도정치와 함께 부정부패, 탐관오리의 늪에 빠진 조선은 결국 19세기말에 망하고 말았다.

우린 아직 갈 길이 먼데, 가고자 했던 그 곳에는 도달하지도 못한채, 장수들은 모두 유배를 가고, 따르던 사람들은 방황하고 있다. 이 시대의 위태로운 흐름을 어떻게 다시 되돌릴 것인지, 진지한 고민들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메가의 삽질이 이 순간에 겹쳐지면서, 실력은 기르지 않은채 오직 이메가의 광우병 헛발질에 기대려는 세력만이 눈에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지금 야당은 없고, 정부와 딴나라당과 국민과의 직접 대치전선만이 보일 뿐이다. 당장의 현안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무엇보다도 뼈저린 반성의 시간인 것이다. 민주당이고 민노당이고 저러다 다 망하지.

사람들을 키우고 길러내야 하는 일이 절실하다. 빠른 시일 내에 웹상에 규장각을 설치하여 사람들을 키우고 다시 뜻을 세워가야 한다. 그리고 올연말에서 내년초까지 곳곳에 지방선거출마자를 위한 학교를 설립하는게 좋을 것 같다. 그 다음 새 정당 건설에 착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