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은 왜 백성을 위한 책을 생각 못했을까

조선은 고려 시절부터 전해져 내려온 금속활자를 활용한 출판시스템을 갖추어 유생들을 길러내려 했다.

드디어 ‘태종실록’ 10년 2월7일 단 1줄의 글! “비로소 주자소에 명하여 서적을 인쇄해 팔게 했다.” 주자소에서 어떻게 서적을 판매했는지는 밝혀진 바 없지만, 어쨌든 이 활자가 사대부를 향한 지식의 보급을 겨냥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자료다. 나는 주자소에서 책을 인쇄해 팔라는 이 명령으로부터 조선이란 국가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과 다름없는 일대 문화적 사건이었던 것이다. 시작이 어려웠지 이후 주자소의 활자는 개량에 개량을 거듭하면서 책을 쏟아냈다. 또 주자소에서 찍는 책이란 유교국가 조선의 지배층인 양반을 만들어내는 책이었다. 유교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는 책들은 6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한반도에 사는 인간들의 사고와 행동을 결정지었던 것이다.(조선의 인물, 조선의 책|태종과 계미자)

더군다나 세종은 이 기술을 더욱 개량한다.

갑인자
인쇄술에 있어서도 세종대는 특기할만한 발전을 이루었다.
1403년에 주조된 청동활자인 계미자(癸未字)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세종 2년에 새로운 청동활자인 경자자(庚子字)를 만들었고, 세종 16년에는 더욱 정교한 갑인자(甲寅字)를 주조하였다.
세종은 계미자 인쇄기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세종 2년에 새로운 청동활자인 경자자와 인쇄기를 만들게 하여 활자의 주조와 인쇄기술상의 큰 발전을 가져왔다.

병진자
세종 16년에는 경자자보다 더 아름다운 자체인 갑인자의 주조사업이 이천의 감독하에 이루어져 20여만자의 크고 작은 활자가 주조되었고, 그뒤 세종 18년에는 납활자인 병진자(丙辰字)가 주조됨에 따라 조선시대의 금속활자와 인쇄술은 일단 완성을 보게 되었다. (세종, 디지털한국학)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을 위해 한글을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찌하여 출판기술과 새로운 글자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 백성들이 읽을 책을 찍어내자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였던 것일까? 생업에 종사해야 하는 백성들이 책을 읽는데 관심을 둘 것이라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일까? 아쉽기 짝이 없다.

초중고 학창시절을 보낸 직지의 고향에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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