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빈센트 반 고흐

문명교류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참으로 흥미로운 것들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요즘 들어 해보게 된 생각인데, 수학이 아니면 공부해 보고 싶은 다른 학문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문명교류사를 택하고 싶다.

16세기말 한반도를 잿더미로 만든 임진왜란(1592 - 1598)과 19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 – 1890). 이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과 한 인물을 이어주는 것은 바로 도자기이다.

임진왜란으로 조선의 많은 도공들이 일본에 잡혀간다. 이러한 장면들은 예전에 드라마 속에서도 종종 본 것 같다. 그 중에 한 도공, 이삼평이라는 사람이 있다.

이삼평 공은 사가번의 시조인 나베시마 나오시게가 귀국할 때 일본으로 데리고 왔다. 그 후 귀화하여 출신지의 이름을 따서 그 성을 가나가에라고 지었다. 처음에는 참모인 다쿠 야스즈미에게 맡겨져 오기군 다쿠 마을에 살며 손에 익힌 기술로 도자기 가마를 이루었으나, 양질의 백토를 구하지 못해 영내 각지를 찾아 돌아다녔다고 한다.

1616년경 마츠우라군 아리타 마을의 미다이바시에 가마를 짓고 드디어 이즈미야마에서 최상급의 원료가 되는 백자광을 발견하자 가미시라가와로 옮겨 살며 순백색의 자기를 만들어냈다. 이것이 일본에 처음으로 백자 도자기가 소성된 유래라고 한다.

그 후 이 제조 기술은 수많은 도공들에 의해 면면히 계승되어 아리타 도자기의 오늘의 번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이삼평 공은 아리타 도자기의 시조일 뿐만 아니라 일본 요업계의 대 은인이다. (이삼평 도조가 도산을 평정했다)

그리하여 17세기 중반에는 유럽에 자기를 수출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게 된 일본. 그리고 당시의 세계 무역을 주도하던 네덜란드. 네덜란드는 일본 근대화의 젖줄이 될 난학을 전수하고 일본은 도자기를 유럽에 수출한다. 그리하여 유럽에 도자기 명성을 알리게 된 일본.

19세기말, 유럽에 수출되던 일본 도자기의 포장지로 일본의 판화들이 사용된다. 그렇게 유럽의 미술계에 침투한 일본의 그림들. 그 중 히로시게라는 이의 작품도 있다.

 

왼쪽은 히로시게의 그림. 그리고 오른쪽은 빈센트 반 고흐의 습작.

도자기를 놓고 엇갈린 조선과 일본의 운명. 호흡을 길게 잡아 19세기말까지의 역사돌이켜 보면, 이 얼마나 얄궂은 운명인가. 400년전 단지 7년간의 전쟁이었을 뿐이었는데... 조금 서글퍼졌다.

Tags: , ,

4 Responses to “임진왜란과 빈센트 반 고흐”

  1. gobears says:

    문명교류사라니... 참 멋진 학문 같습니다!
    Hiroshige 작품은 미국 왠만한 뮤지움샾에 머그 컵 양산같이
    사소한 소품에
    프린트 되서 팔리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건데..
    도자기 포장지로 작품이 처음 전해졌다는게 인상적 이네요.
    우리 도공들의 예술혼이 적국의 문화를 꽃피우는데 이용될수 밖에 없던 역사라니..ㅜㅜ

  2. duoh5log says:

    명청 교체기에 중국도자기 수출이 미진해지면서 일본 도자기가 유럽에 팔리게 되고, 그걸 판 돈이 초석이 되어 구주지역 세력이 부를 축적하고, 또 그 세력이 바탕이 되어 메이지유신을 일으키게 되지요. 그리고 그들은 다시금 조선을 침략합니다. ㅡ,,ㅡ

  3. pythagoras says:

    gobears/ 나라가 허접하면 본래 두뇌가 유출되지요. 당대의 하이테크를 통째로 빼앗긴 꼴이라니...

  4. pythagoras says:

    duoh5log/ 좋은 댓글 감사. 정확히 17세기 중반에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섰습니다. 그 틈을 포착한 것이, 근대 일본을 만든 것인가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