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하는 노무현 대통령님께

당신이 대통령에 출마한다고 선언하던 날입니다.

제 어머니가 제게 남겨주었던 제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눈치보며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넘치는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고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의 육백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번 쟁취해본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수 있는 역사를 만들수 있다.

시간은 자꾸 가서 이제 날은 저물어 가는데, 아무도 정의를 얘기하지 않아요. 정에 맞던 모난 돌, 바위를 치던 계란의 시대는 누가 기억해주려나, 슬퍼집니다. 나는 가슴이 아픕니다.

2004년 3월 11일, 나를 세번 전율케 했던 탄핵되기 전날의 기자회견에서였습니다.

한번

이판에 제 형 노건평 씨까지 끼여들어서 참 미안하기 짝이 없다. 대우건설 워크아웃 기업인데 대우건설 사장의 유임을 청탁한다는 뜻으로 3천만원을 받았다, 어떻든 그 일은 성사되지 않았다. 돈은 이미 돌려주었다고 한다. 아울러서 1억원을 주는 것을 받지 않고 거절했다는 사실도 있다. 함께 모아서 판단해 주시기 바란다. 어떻든 죄송하다. 지금까지 제 형님 노건평씨는 저에게 세 번의 청탁을 했다. 결과는 모두 성사되지 않았다. 한 번의 청탁은 제가 관여할 일이 아니어서 외면하고 말았다. 성사, 불성사는 아직도 결론나지 않았지만 저는 일체 아는 척 하지 않고 있다. 또 한번은 청탁 때문에 불이익을 받았다. 잘 될 수도 있는 것이 안 됐다. 그냥 안된 것이 아니고 제가 안되게 했다.

두번

이 문제에 관해서 우리 참모들은 자꾸 돈 얘기하고 돈을 얼마 얼마 10분의 1 넘었다 안 넘었다 대통령이 직접 나가서 그런 시비하지 말라고 품위문제라고 그렇게 조언을 하고, 그래서 오늘 기자회견에서도 모두 발언만 하고 질문 받지 말고 그냥 끝내자고 그렇게 했다. 이 질문과 답변이 하도 구차할 것 같으니까 그렇게 고심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저는 대통령의 품위도 중요하지만 진실보다 더 큰 품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세번

저도 인간적인 수모, 대통령의 품위, 그리고 수사하는 내용과 과정에 불만이 있다. 그러나 불만요소는 작은 문제이다. 큰 것은 우리가 이번 이 일을 겪으면서 뛰어넘자, 뛰어넘자는 것이다. 이것을 거치지 않고 뛰어넘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문민정부도 국민의 정부도 이것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뛰어넘지 못했다. 이번에는 뛰어넘어야 한다. 이것을 거치고도 뛰어넘지 못하면 우리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나. 학벌사회이다. 연고사회이다. 일류학교 나온 사람들 사이에서 잘 짜여진 우리 사회 각계의 판에 제가 돛단배 하나 떠있듯이 떠있지 않나.

이제 곧 대통령에 취임할 사람은 모든게 의혹투성이인데도 저렇게 당당하게, 곰탕 먹어가면서 자기를 지켜가는데, '진실보다 더한 품위는 없다'고 말하던 사람은 실컷 두드려 맞다가 이제 귀양가듯 쫓겨갑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형님이 세번 청탁했다고 고발하던 당신은 끝나는 날까지 손주 장난감 골프채 들고 잔디밭 걷는 형님 하나를 못 지켜줍디다. 큰 교회만 잘 다녔어도 됐을 것을, 당신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끝까지 외로운 돛단배로 남아야 했답니까?

2007년 6월 참평포럼과 원광대 강연에서 당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왜 모였습니까?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불의에 대해 분노할 줄 알고, 저항합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탐구해서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도를 찾고 뜻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 행동합니다. 사람을 모으고 설득하고 조직하고 권력과 싸우고 권력을 잡고 그리고 정책을 실행하고 이렇게 정치를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성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만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랑하는 방법이 틀렸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하라고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이 쉽지를 않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아야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지요. 세상 사랑하는 이치를 읽고 배우고 경험하고 그리고 크게 보고, 또 깊이 생각해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동안의 가치가 무엇인가, 사상이 무엇인가 많은 고심을 하고 있습니다만, 모든 가치와 사상은 한 가지 공통성이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근원에서는 각기 다르게 얘기하고 있지만 근원이 어디에 있든 바라보고 있는 목표는 인간의 행복입니다.

사람은 빈곤과 침략으로 인한 고통과 불안을 극복하고자 공동체를 만들고 그리고 권력을 부여했습니다. 권력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지배와 억압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제는 빈곤과 무질서 대신에 지배와 억압, 전쟁이라는 새로운 고통과 불안이 불행의 새로운 근원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권력이 생긴 결과입니다.

빈곤과 전쟁, 지배와 억압으로 인한 고통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사에서 핵심적인 문제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사상을 창안하고 실험을 해 왔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가 도달한 결론은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근대 이후의 모든 사상은 결국 민주주의로 귀착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최고의 사상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들 당신이 막말한다고 해서 그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들어보니, 이 정맞던 모난돌, 바위치던 계란, 외로운 돛단배는 사랑을 말하고 행복을 말하더이다.

그런데 뜻밖이었다. 떳떳이 살아 걸어나갈 준비의 핵심이 공부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권력론, 민주주의론, 지도자론, 시민사회론에 대한 것이었다. 그 공부를 바탕으로, 자신의 체험과 연결해 “정치학 교과서를 쓰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퇴임 후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노무현 저(著) 정치학개론’을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왜 그가 참평포럼의 4시간 연설 후반부에 민주주의론을 설파했는지 그제서야 연결이 됐다.

(나는 왜 노무현 대통령을 8시간 만났나?) [오연호 리포트 : 인물연구 노무현①] 분노와 승부의 뿌리를 찾아서)

나는 이 정치학 교과서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 장에서는 시민주권론이 전개됩니다. 그 시민주권론은 깨어있는 한명 한명의 시민들이 대통령, 국회의원과 같은 정치인의 수준에서 사고하며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각성되어 참여와 책임의 의식을 가진 시민들은, 정당운동을 거쳐 생각을 모으고 가다듬는 방법을 배우고, 정론운동을 통해 언론을 개혁하여 생각을 나누고, 전하고, 남을 설득하는 방법을 배운뒤, 분권과 지방자치운동을 통하여, 그 생각들을 현실 속에서 구현해 나간다는 것이 그 골자입니다. 책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아느냐. 그건 바로 이것이 내가 속한 노무현 학파의 민주주의론이기 때문이지요.

대통령은 말했다.

“정치권력은 하나의 권력일 뿐이지요. 진정한 의미의 권력은 시민사회에서 나옵니다.” 그는 대통령이라는 권력에서는 퇴임을 하고 있지만 진정한 권력 속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대통령을 퇴임하는 나는 권력으로부터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권력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입니다. 시민사회 속으로.”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오는 당신 - 나에겐 당신이 버트런드 러셀이 말한 '자기 자신과 친구들 또는 세계에 유익한 삶을 사는 사람'의 모범이 되어주었다는 말을 전하며...

자기 자신과 친구들 또는 세계에 유익한 삶을 사는 이들은 희망에 의해 영감을 받으며 기쁨으로 살아간다. 그들은 가능한 사태를 상상해 보며 그것이 어떻게 실현될지를 생각한다. 사적인 관계에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받았던 애정과 존경을 잃지 않기 위해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유롭게 애정과 존경을 줄 수 있으며, 굳이 구하지 않아도 그 대가는 그들에게 저절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일을 할 때도 그들은 경쟁자들의 질투에 휘말리지 않으며, 실제로 해야 할 실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정치적인 면에서, 그들은 그들 계급이나 국가의 부당한 특권을 옹호하는 데 시간과 정열을 낭비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세계 전체를 더 행복하고 덜 잔인하게 하며, 경쟁적 탐욕의 갈등이 줄어들게 하고, 억압에 의해 인간의 발전이 저해되거나 움츠러들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헌법 아래 있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시민사회에서 만납시다. 진정한 권력 속으로 돌아오는 당신을 환영합니다.

9 Responses to “퇴임하는 노무현 대통령님께”

  1. croydon says:

    잘 봤습니다. 첫번째 출마선언 연설의 저 부분에서 굉장한 감동을 받고 여러번 돌려본 적이 있었는데..
    그리고 '세번' 이라고 된 부분의 오디오 재생 태그는 안보이네요. 저만 그런건가요..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집착하고 생각의 뼈대를 이루는 철학과 사상은 빈곤한 시대에, 그에 어울리는 천박한 지도자가 들어서면서 시대를 앞선 과분한 지도자는 물러나는군요.

  2. 고율 says:

    공감합니다. ㅜㅜ

  3. mars says:

    다시 한번 우리는 자유당의 암흑기를 견뎌야하는가...

  4. pythagoras says:

    연설 오디오 파일 땜시, 트래픽 초과로 블로그가 다운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여 답변이 늦어졌습니다. 그래서 오디오 제거하고 비디오로 찾아 바꾸었습니다. 세번이라고 된 부분은, 방송된 자료를 찾지 못했습니다. 저도 다시 한번 보고 싶은데 말이죠

  5. 폐인트김씨 says: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6. 고미생각 says:

    안녕하세요? 고미생각입니다. ^^;;

    1.

    서프에 댓글을 쓰고 나서도 하루에도 몇번씩 유학생 수학도님의 대문글을 읽고 읽고 또 읽습니다. 그러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모난 돌이 정맞는다는 대목을 보며.. 한동안은 가슴을 치고 치고, 또 치면서 노래를 한 곡조 뽑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싸우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의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싸우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싸우라..

    그렇습니다. 제가 요새 부르고 부르고 또 부르는 노래는 백기완 선생의 '님을 위한 행진곡'입니다. 그런데 요즘 20대 중에서 저 노래를 아는 사람이 과연 있는지 가끔은 궁금해집니다.

    2.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저는 고향인 부산에서 광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9살 때까지 광주에서 죽 살아
    왔습니다. 제게는 경상도 사투리보다는 전라도 사투리가
    더 익숙합니다. 누가 당신 전라도 사람이요? 경상도 사람이요? 하고 묻는다면 저는 떳.떳.하.게. 전라도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요즘 유인촌 문화부 장관 내정자가 본적이 전라도라고 우긴다면서요? 그 기준대로라면 저는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870-36 번지라는 본적을 가지고 있으니 저는 응당 부산사람 입니다마는..)

    제가 전라도 사람, 광주 사람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만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님을 위한 행진곡'을 초등학교 6학년 때 배울 수 있었다는 겁니다.

    기억 하십니까? 80년 5월을 처음으로 생생하게 다뤘던 MBC의 '어머니의 노래'라는 다큐멘터리를요. 그 어머니께서 부르시는 노래가 바로 '님을 위한 행진곡'입니다. 제가 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되뇌이는지 이제 이해가 가시는지요?

    3.

    모난 돌이 정을 맞고,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웃.으.면.서. 그 길을 갔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군부독재를 반대하고 전두환 개새끼를 외치던 광주시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어느 누가 그들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강풀 선생님의 '26년'과 작년에 영화 '화려한 휴가'가 반짝 성공을 거두기는 했지만 다들 쉽게 잊혀져 버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유학생 수학도님의 절절한 외침, "모난 돌이 정맞는 역사, 계란으로 바위치던 역사는 그 누가 기억할까요?" 라는 말씀이 그냥 쉽게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꺽꺽 거리는 가슴으로 부르고 또 부릅니다. 그 옛날 '어머니께서 부르시던 노래를. 지금도 잊지 않고 저는 또 다시 부릅니다.' 그것이 역사이며, 그것이 삶입니다. 교과서에 문자로 갇혀 있는 역사는 역사가 아닙니다.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이 바로 역사입니다.

    4.

    하지만 우리는 쉽게 주저 앉지 않습니다. 당장 겉으로 보기에 우리는 패배한 것 같아 보이지만.. 우리에게는 사상이 있고 가치가 있습니다.

    사상과 가치로 완성을 이루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죽어도 다시 살아서 돌아옵니다. 우리는 그 증거를 조광조를 통해서 보고 예수 그리스도 (요새 개신교들이 엉뚱한 소리를 해대서 참 가슴아픕니다만. -_-;;)를 통해서 봅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면서 28년전 목숨을 걸고 그 노래를 부르며 쓰러져간 분들이 다시 살아 돌아와 웃으며 우리를 반겨주는 상상을 합니다. 그 상상이 현실이 되는 지점에 노무현이 있고, 제가 있고, 유학생 수학도님이 게시고, 서프앙이 있고, 노사모가 있고, 대한민국 국민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4.

    이런 글을 쓸 수 있고,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대통령의
    '퇴임'을 축하할 수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기쁘고 행복합니다. 잠시나마 '어둠의 시간', 앙시앵 래짐을 살겠지만, 그 시간은 결코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저와 우리 모두가 깨어 있음을 절대로 잊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대한민국 제 16 대 대통령 노무현 님의 퇴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고미생각 드림.

  7. 민주주의II 시민주권이론 Rev.1.2...

    조금 길어요 17분22초Rev. 1.2에 관하여이번 갱신1.2판은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있었던 주요 강의 3개를 혼합하여 완성하였습니다. 노무현 님의 공개된 동영상 파일 중에서 시민주권에 관한 이론...

  8. [...] 2월 20일에 퇴임하는 노무현 대통령님께 라는 글을 쓴 바가 [...]

  9. [...] 퇴임하는 노무현 대통령님께 2008/02/20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오는 당신 - 나에겐 당신이 버트런드 러셀이 말한 ‘자기 자신과 친구들 또는 세계에 유익한 삶을 사는 사람’의 모범이 되어주었다는 말을 전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