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February, 2008

세미나 한 장면 - 이러고 살아요

Friday, February 22nd, 2008

엊그제 있었던 등각장론 세미나 발표입니다. Virasoro algebra의 표현론에서 Kac determinant formula 라는 녀석을 증명을 했습니다.

뭐 재밌고 웃기고 그런 것은 없구요. 그냥 이렇게 살고 있다 하는 걸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이런게 수학과 대학원생의 일상입니다. 읽고, 생각하고, 정리하고, 발표하고...

퇴임하는 노무현 대통령님께

Wednesday, February 20th, 2008

당신이 대통령에 출마한다고 선언하던 날입니다.

제 어머니가 제게 남겨주었던 제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눈치보며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넘치는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고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의 육백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번 쟁취해본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수 있는 역사를 만들수 있다.

시간은 자꾸 가서 이제 날은 저물어 가는데, 아무도 정의를 얘기하지 않아요. 정에 맞던 모난 돌, 바위를 치던 계란의 시대는 누가 기억해주려나, 슬퍼집니다. 나는 가슴이 아픕니다.

2004년 3월 11일, 나를 세번 전율케 했던 탄핵되기 전날의 기자회견에서였습니다.

한번

이판에 제 형 노건평 씨까지 끼여들어서 참 미안하기 짝이 없다. 대우건설 워크아웃 기업인데 대우건설 사장의 유임을 청탁한다는 뜻으로 3천만원을 받았다, 어떻든 그 일은 성사되지 않았다. 돈은 이미 돌려주었다고 한다. 아울러서 1억원을 주는 것을 받지 않고 거절했다는 사실도 있다. 함께 모아서 판단해 주시기 바란다. 어떻든 죄송하다. 지금까지 제 형님 노건평씨는 저에게 세 번의 청탁을 했다. 결과는 모두 성사되지 않았다. 한 번의 청탁은 제가 관여할 일이 아니어서 외면하고 말았다. 성사, 불성사는 아직도 결론나지 않았지만 저는 일체 아는 척 하지 않고 있다. 또 한번은 청탁 때문에 불이익을 받았다. 잘 될 수도 있는 것이 안 됐다. 그냥 안된 것이 아니고 제가 안되게 했다.

두번

이 문제에 관해서 우리 참모들은 자꾸 돈 얘기하고 돈을 얼마 얼마 10분의 1 넘었다 안 넘었다 대통령이 직접 나가서 그런 시비하지 말라고 품위문제라고 그렇게 조언을 하고, 그래서 오늘 기자회견에서도 모두 발언만 하고 질문 받지 말고 그냥 끝내자고 그렇게 했다. 이 질문과 답변이 하도 구차할 것 같으니까 그렇게 고심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저는 대통령의 품위도 중요하지만 진실보다 더 큰 품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세번

저도 인간적인 수모, 대통령의 품위, 그리고 수사하는 내용과 과정에 불만이 있다. 그러나 불만요소는 작은 문제이다. 큰 것은 우리가 이번 이 일을 겪으면서 뛰어넘자, 뛰어넘자는 것이다. 이것을 거치지 않고 뛰어넘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문민정부도 국민의 정부도 이것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뛰어넘지 못했다. 이번에는 뛰어넘어야 한다. 이것을 거치고도 뛰어넘지 못하면 우리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나. 학벌사회이다. 연고사회이다. 일류학교 나온 사람들 사이에서 잘 짜여진 우리 사회 각계의 판에 제가 돛단배 하나 떠있듯이 떠있지 않나.

이제 곧 대통령에 취임할 사람은 모든게 의혹투성이인데도 저렇게 당당하게, 곰탕 먹어가면서 자기를 지켜가는데, '진실보다 더한 품위는 없다'고 말하던 사람은 실컷 두드려 맞다가 이제 귀양가듯 쫓겨갑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형님이 세번 청탁했다고 고발하던 당신은 끝나는 날까지 손주 장난감 골프채 들고 잔디밭 걷는 형님 하나를 못 지켜줍디다. 큰 교회만 잘 다녔어도 됐을 것을, 당신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끝까지 외로운 돛단배로 남아야 했답니까?

2007년 6월 참평포럼과 원광대 강연에서 당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왜 모였습니까?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불의에 대해 분노할 줄 알고, 저항합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탐구해서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도를 찾고 뜻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 행동합니다. 사람을 모으고 설득하고 조직하고 권력과 싸우고 권력을 잡고 그리고 정책을 실행하고 이렇게 정치를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성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만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랑하는 방법이 틀렸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하라고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이 쉽지를 않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아야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지요. 세상 사랑하는 이치를 읽고 배우고 경험하고 그리고 크게 보고, 또 깊이 생각해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동안의 가치가 무엇인가, 사상이 무엇인가 많은 고심을 하고 있습니다만, 모든 가치와 사상은 한 가지 공통성이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근원에서는 각기 다르게 얘기하고 있지만 근원이 어디에 있든 바라보고 있는 목표는 인간의 행복입니다.

사람은 빈곤과 침략으로 인한 고통과 불안을 극복하고자 공동체를 만들고 그리고 권력을 부여했습니다. 권력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지배와 억압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제는 빈곤과 무질서 대신에 지배와 억압, 전쟁이라는 새로운 고통과 불안이 불행의 새로운 근원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권력이 생긴 결과입니다.

빈곤과 전쟁, 지배와 억압으로 인한 고통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사에서 핵심적인 문제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사상을 창안하고 실험을 해 왔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가 도달한 결론은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근대 이후의 모든 사상은 결국 민주주의로 귀착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최고의 사상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들 당신이 막말한다고 해서 그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들어보니, 이 정맞던 모난돌, 바위치던 계란, 외로운 돛단배는 사랑을 말하고 행복을 말하더이다.

그런데 뜻밖이었다. 떳떳이 살아 걸어나갈 준비의 핵심이 공부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권력론, 민주주의론, 지도자론, 시민사회론에 대한 것이었다. 그 공부를 바탕으로, 자신의 체험과 연결해 “정치학 교과서를 쓰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퇴임 후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노무현 저(著) 정치학개론’을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왜 그가 참평포럼의 4시간 연설 후반부에 민주주의론을 설파했는지 그제서야 연결이 됐다.

(나는 왜 노무현 대통령을 8시간 만났나?) [오연호 리포트 : 인물연구 노무현①] 분노와 승부의 뿌리를 찾아서)

나는 이 정치학 교과서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 장에서는 시민주권론이 전개됩니다. 그 시민주권론은 깨어있는 한명 한명의 시민들이 대통령, 국회의원과 같은 정치인의 수준에서 사고하며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각성되어 참여와 책임의 의식을 가진 시민들은, 정당운동을 거쳐 생각을 모으고 가다듬는 방법을 배우고, 정론운동을 통해 언론을 개혁하여 생각을 나누고, 전하고, 남을 설득하는 방법을 배운뒤, 분권과 지방자치운동을 통하여, 그 생각들을 현실 속에서 구현해 나간다는 것이 그 골자입니다. 책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아느냐. 그건 바로 이것이 내가 속한 노무현 학파의 민주주의론이기 때문이지요.

대통령은 말했다.

“정치권력은 하나의 권력일 뿐이지요. 진정한 의미의 권력은 시민사회에서 나옵니다.” 그는 대통령이라는 권력에서는 퇴임을 하고 있지만 진정한 권력 속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대통령을 퇴임하는 나는 권력으로부터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권력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입니다. 시민사회 속으로.”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오는 당신 - 나에겐 당신이 버트런드 러셀이 말한 '자기 자신과 친구들 또는 세계에 유익한 삶을 사는 사람'의 모범이 되어주었다는 말을 전하며...

자기 자신과 친구들 또는 세계에 유익한 삶을 사는 이들은 희망에 의해 영감을 받으며 기쁨으로 살아간다. 그들은 가능한 사태를 상상해 보며 그것이 어떻게 실현될지를 생각한다. 사적인 관계에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받았던 애정과 존경을 잃지 않기 위해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유롭게 애정과 존경을 줄 수 있으며, 굳이 구하지 않아도 그 대가는 그들에게 저절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일을 할 때도 그들은 경쟁자들의 질투에 휘말리지 않으며, 실제로 해야 할 실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정치적인 면에서, 그들은 그들 계급이나 국가의 부당한 특권을 옹호하는 데 시간과 정열을 낭비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세계 전체를 더 행복하고 덜 잔인하게 하며, 경쟁적 탐욕의 갈등이 줄어들게 하고, 억압에 의해 인간의 발전이 저해되거나 움츠러들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헌법 아래 있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시민사회에서 만납시다. 진정한 권력 속으로 돌아오는 당신을 환영합니다.

리만의 제타함수 (4) : 지수법칙

Monday, February 18th, 2008

이 글은 다음 글들에 이어지는 시리즈의 네번째 글이다.

글 싣는 순서

리만의 제타함수 (1)
리만의 제타함수 (2) : 수의 체계
리만의 제타함수 (3) : 실수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한 것을 간략하게 요약해 보자. 첫번째 글에서 소수정리와 리만가설을 언급하면서, 앞으로 리만의 제타함수를 정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리만의 제타함수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복소수함수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두번째 글에서는 중고등학교 때 배우는 수의 체계를 복습했고, 세번째 글에서 실수가 무엇인지 논하여 보았다.

리만의 제타함수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게 느껴질 분들을 위해 잠시 말해두자면, 이제 얼마 가지 않아서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일러의 공식

[math]e^{i\pi}+1=0[/math]

의 의미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오늘은 중고딩 수학의 지수법칙을 복습해보자. 혹시나

[math]2^3=8[/math]

라는 표현이 가물가물하고, 어렵게 느껴진다면, 더 앞으로 진행하는 것은 의미도 없고 불가능. 이 정도는 안다고 믿고 진행한다. 이제 지수법칙이란 무엇인가?

지수법칙 (자연수버전)

실수 a>0에 대하여, m과 n 이 자연수일 때,
[math]a^m \times a^n=a^{m+n}[/math]

여기까지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제 저기에 쓰여져 있는 '자연수'라는 단어를 '정수'로 바꾸어도 성립하도록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지수를 정수범위에서도 정의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이렇게 정의를 한다.

[math]a^0=1[/math]
자연수 n에 대하여,
[math]a^{-n}=\frac{1}{a^n}[/math]

2를 0번 곱하면 0이지 왜 1이냐. 이것이 순진한 중학생들을 한번쯤 괴롭히는 질문이다. 답은 바로 지수법칙에 있다. 지수법칙을 정수에서도 계속 만족시켜주고 싶다면 [math]2^2 \times 2^0=2^{2+0}=2^2[/math] 에서 보듯이, [math]2^0=1[/math]가 유일한 선택지인 것이다.

만약에 그래도 끝까지 [math]2^0=0[/math]으로 정의를 하고 싶다면, 사실 그래도 된다. 하지만 이럴 경우, 지수법칙을 표현하기 위해서 또다른 표기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즉 그러한 표기법에 따르는, 불편함과 괴로움은 선택한 사람이 감수하는 것이다. 수학자들은 언제나 가장 적은 양의 표현을 통해, 가장 많은 양의 의미를 전달하려는 사람들이다. 앞으로 진행되는 지수법칙의 일반화를 보면, 이 말의 의미를 좀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math]2^{(-3)}=\frac{1}{2^3}=\frac{1}{8}[/math]

이건 또 왜 이렇게 정의를 해주어야 할까? 지수법칙을 만족시켜 주고 싶다면, 역시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즉,

[math]2^{3} \times 2^{(-3)}=2^{3+(-3)}=2^0=1[/math]

따라서,

[math]2^{(-3)}=\frac{1}{2^3}=\frac{1}{8}[/math]

이제 아까 썼던 자연수 버전의 지수법칙을 새로 쓸 수 있다.

지수법칙 (정수버전)

실수 a>0에 대하여, m과 n 이 정수일 때,
[math]a^m \times a^n=a^{m+n}[/math]

사실 자연수버전에서 달라진 것은, 자연수라는 단어를 정수로 바꿔준 것 밖에 없다. 여기까지의 작업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math]a^0= 1[/math]과 같이 정의를 잘하는 것이었다. 이 지점에서 정의라는 것도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이제 이 지수법칙을 유리수까지 확장하고 싶다. 그러면 또 유리수 지수에 대해서도 정의를 해주어야 한다.

자연수 n 에 대하여

[math]a^{\frac{1}{n}} [/math]

를 어떻게 정의하는게 좋을지 약간 고민이 된다. 친숙한 예를 하나 생각해 보자.

[math]2^{\frac{1}{2} [/math]

는 정의가 뭐였드라? 이것은 바로 루트 2, 즉 제곱해서 2가 되는 양수인 실수이다.

[math]a^{\frac{1}{n}} [/math]

도 그렇게 정의를 하자. 즉 n 제곱해서 a가 되는 양수인 실수로 정의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렇게 정의하는 것이 좋은가?
답은 역시 지수법칙에 있다. 지수법칙을 유리수로 확장시켜 주기 위해서는,

[math]b=a^{\frac{1}{n}} [/math]

라고 정의했다면,

[math]b^n=a^{\frac{1}{n}+\cdots + \frac{1}{n}}= a^{\frac{1}{n}\times n}=a[/math]

를 만족시켜 주어야 한다. 즉 b는 n제곱해서 a가 되는 실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정의를 하면, 이제 유리수 지수를 정의할 수 있다.
자연수 n과, 정수 m에 대하여,

[math]{(a^{\frac{1}{n}})}^m [/math]

는 이제까지 얘기한 것으로 이미 정의가 되었다.

따라서,

정수 m과 자연수 n에 대하여,
[math]a^{\frac{m}{n}}= {(a^{\frac{1}{n}})}^m [/math]

로 정의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다. 이제 이 정의들을 통하여, 지수법칙은 유리수까지 확장이 되었다.

지수법칙 (유리수버전)

실수 a>0에 대하여, m과 n 이 유리수일 때,
[math]a^m \times a^n=a^{m+n}[/math]

만약 지금까지의 작업에서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그에 따른 결과인지 정확히 구분할 수 있다면, 잘 이해한 것이다. 이제 한 발을 더 내딛으려 한다. 지수법칙의 '유리수'를 '실수'까지 확장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까지 한 작업을 통하면,

[math]2^{1.41}=2^{\frac{141}{100}}[/math]

가 무슨 뜻인지를 알 수 있다.

이제 실수지수는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가령

[math]2^{\sqrt{2}}[/math]

는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다음 포스팅이 올라올 때까지 잘 생각해 보자. 먼저 말하자면, 이 작업은 지금까지의 작업들과 질적으로 다르다. 그리고 잊지 말자.

[math]e^{i\pi}+1=0[/math]

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지수를 자연수를 넘고, 정수를 넘고, 유리수를 넘고, 실수를 넘어, 복소수까지 확장해야 하는 것이다.

학교 우산

Thursday, February 14th, 2008

2차원의 기하학은 다음의 세 가지 종류로 분류된다.

1. 구면기하학 (Spherical geometry)
2. 평면기하학 (Euclidean geometry)
3. 쌍곡기하학 (Hyperbolic geometry)

주어진 곡면을 잘 변형시켜서 모든 점이 일정한 곡률을 갖도록 해주면, 그 곡률은 양수가 되거나, 0이 되거나, 또는 음수가 되는데, 이는 가우스-보네의 정리에 의하면, 곡면의 위상적 성질에 따라 결정된다. 즉, '위상적 성질이 기하학을 결정한다'. 뭔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다 생각되지만, 이 위상수학과 기하학의 이야기는 언젠가 다시 때가 되면 차근차근 다루겠다는 것을 약속하며 나중으로 미뤄둔다. 아무튼 곡률의 부호에 따라 각각의 곡면을 위에 나열한 세가지 종류의 기하학으로 분류한다. 이 중에서 쌍곡기하학을 일컬어, 보통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라 하는 것이다.

아래의 도표는 구면을 똑같이 생긴 삼각형들로 채울수 있는 경우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다.

구면기하학
Td Oh Ih
*332 *432 *532

( 3 3 2)

(4 3 2)

(5 3 2)

이 표의 그림속에 구면 위에 그려진 삼각형들이 바로 구면삼각형들인데, 예를 들어 가운데 (4 3 2)라는 녀석은 그 삼각형의 세 각이 각각

[math]\frac{\pi}{4},\frac{\pi}{3},\frac{\pi}{2}[/math]

라는 것을 말한다. 이 삼각형의 세각을 더해보면,

[math]\frac{\pi}{4}+\frac{\pi}{3}+\frac{\pi}{2}=\frac{13\pi}{12}[/math]

가 되어 180도 보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면기하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삼각형의 세 각을 더하면 180도보다 크게 된다. 이는 곡률이 양수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들이라면, 이 삼각형들이 정다면체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수 있을 것이다.

아래의 도표는 각각 평면기하학, 쌍곡기하학에서 공간을 똑같은 삼각형으로 채울수 있는 그림을 그려놓은 것이다. 쌍곡기하학의 그림은 예전의 포스팅 '에셔의 예술에 공헌한 수학'과 'Hurwitz의 정리: Compact Riemann Surface의 Automorphism group'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다.

평면기하학 쌍곡기하학
p4m p3m p6m
*442 *333 *632 *732 *542 *433

(4 4 2)

(3 3 3)

(6 3 2)

(7 3 2)

(5 4 2)

(4 3 3)

구면기하학에서 했던 것을, 평면기하학의 (6 3 2)라는 녀석에 대해서 해보면,

[math]\frac{\pi}{6}+\frac{\pi}{3}+\frac{\pi}{2}=\pi[/math]

가 되어 삼각형이 세 각의 합이 180도가 됨을 확인할 수 있다. 평면의 곡률이 0 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편 쌍곡기하학에서도 예를 들어 하나 해보면, (7 3 2)라는 것은 그 삼각형의 세 각이 각각

[math]\frac{\pi}{7},\frac{\pi}{3},\frac{\pi}{2}[/math]

라는 것을 말한다. 이 세각의 크기를 모두 더하면,

[math]\frac{\pi}{7}+\frac{\pi}{3}+\frac{\pi}{2}=\frac{41\pi}{42}[/math]

가 되어, 180도보다 작게 된다. 쌍곡기하학에서의 곡률은 음수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위의 그림들처럼 그 공간을 똑같이 생긴 삼각형으로 채운 그림은, 지금 나온것만 해도 위상수학, 미분기하학, 군론 등등 많은 수학을 이어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가령 아래 그림 역시 쌍곡기하학의 그림인데, Modular group이라고 하는 수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대상을 공부할 때, 반드시 등장한다. 참고로 이 그림에 등장하는 삼각형은 [math] (2, 3, \infty)[/math]이다.

이제 제목과 관계있는 결론. 얼마 전에 쓰던 우산이 망가져서 학교에서 파는 우산 하나를 샀다. 이제 이곳 버클리에서는 비내리는 겨울이 다 지나가고, 비 안오는 계절이 도래했기에 앞으로 한동안 쓸일이 없을것 같아, 구석에 밀어 두기 전에 사진을 올려둔다. 우산의 기하학은 구면기하학. 우산을 구면으로 늘린다면 아마도 정팔면체의 대칭. 어쩜 이렇게 색깔도 수학자들이 하듯이 하나하나씩 번갈아가면 칠했는지. 며칠 안 썼다고 조금 구겨진게 흠이네. 그래도 예쁘죠?

p.s. 우산에 새겨진 Cal 이라는 것은,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를 줄여쓴 것. University of California 중에 제일 먼저 세워졌기에 가능한 일. 서울대학교 교내신문을 '대학신문'이라 하는 것과 좀 비슷한가.

수학의 대중화를 생각한다 (3)

Saturday, February 9th, 2008

개인의 수학에 대한 인식 및 태도가 대부분 학창시절에 결정된다면, 수학의 문화적 토대를 가꾸고, 수학의 대중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내가 보기에는 바로 중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다.

도구로 수학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수학에 대한 지식 그 자체로 밥을 벌어 먹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수학과 계열에 몸을 담고 있으며, 연구 활동을 주로 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하나는 중고등학교 수학선생님들과 같이 수학교육과 계열로, 수학 교육의 활동에 주력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돈을 제일 많이 벌고 있을 학원강사님들은 여기서 제외.

나는 '수학이 아름답다'라는 표현을 대학교에 가서야 처음 들었다. 많은 수학과의 교수들과 수많은 수학책들은 수학이 아름답다는 말을 매우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한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학창시절 내내 수학에는 남들보다는 좀더 많은 호기심을 가졌을 나였지만, '수학이 아름답다'라고 하는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법한 괴이한 표현을 했던 단 한 명의 사람이 생각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말했던 사람이 실제로 없었던 것 같다.
왜 이 말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은 한번도 들을 수 없었던 것일까?

이 사실은 수학과와 수학교육과가 가진 어떤 문화적 차이 및 소통의 장벽을 암시한다. 일반적으로 교수를 교사보다 사회적 지위에서 더 높이 쳐주는 사회의 인식 때문일까? 어쨌든 이 사실은 사회내에 바람직한 수학적 토양을 가꾸는 데 있어서는 재앙에 가까운 일이다. 수학이 창조되는 현장이 수학을 가르치는 사람들과 괴리되어 있고, 수학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문화적 토대를 구축하는 일에 소홀하다면, 이 나라는 언제까지나 문제의 해결없이 이공계의 위기만 말하는 학문의 수입국에 머무를 것이다. 학계에서 수학의 연구를 진행하는 사람과 현장에서 수학을 교육하는 사람들의 대화 채널을 만들 필요가 절실하다.

수학의 대중화를 활발하게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이런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수학과나 수학교육과에서 수학 교사들을 대상으로한 석사학위 수준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사실 보통 대학의 석사 학위라는 것은, 거의 아무데도 쓸데없는 아무도 읽지 않는 논문 하나 쓰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렇다면 석사 학위 정도는 사람들이 읽을만할 수 있는 책 하나를 쓰는 것 정도로 주어도 큰 문제가 없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1-2년 정도면 가능할 것이다. 교사들에게 안식년이 있다면 좀더 현실성이 있을 것이다.

학위의 결과물이 교육현장에서 더 나아가, 사회에서 유통되는 것은 장려할 만한 일이다. 대학의 정식 프로그램에서 이를 실행한다면, 타학과에서 획득해야 하는 이수학점 같은 것을 두어, 더 폭넓은 학제간 주제를 다루는 것도 가능해 질 것이다. 품질도 대학에서 일정수준 이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연구를 업으로 삼는 대학과 중고등학교 교육 현장, 더 나아가 사회 사이의 수학을 위한 대화의 창구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교사의 입장에서는 학위도 얻고, 또한 결과물이 가져다줄 개인적인 경제적 이익, 사회적 이익을 고려할때, 여러가지 동기 부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을 몇년만 꾸준히 성실하게 실행하면, 수학적 담론의 생산에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좋은 토대가 될수 있지 않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