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셔의 예술에 공헌한 수학

에셔의 작품 중에서 대칭과 테셀레이션을 주제로 한 것들을 체계적으로 모아놓은 미술책 Visions of Symmetry를 읽는데, 그의 예술에 공헌한 수학의 역할이 너무나 인상깊어 몇 자 적는다.

에셔는 평면을 채우는 것에 대해 이렇게 기록해 놓는다.

Filling the plane has become a real mania to which I have become addicted and from which I sometimes find it hard to tear myself away.

나는 평면채우기에 열광적으로 몰입했고, 종종 나를 거기서 떼놓기 어려움을 깨달았다.

원래부터 이러하였던 그의 마음에 불을 당긴 것은,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에 있던 장식문양들이었다. 이런 류의 문양들을 말한다.

이런 반복적인 패턴들이 에셔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다만, 우상을 금지한 이슬람 전통을 따르는 알함브라의 장식들은 거의 추상적인 것들이었으나, 나중 에셔의 작품에는 많은 동물들처럼 살아있는 것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어쨌든 알함브라에서 발견한 패턴들을 공부하며 더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에셔에게, 문을 활짝 열어준 것은 바로 수학자 폴리야(G.Polya)의 논문이었다. 에셔가 그 논문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지질학 교수였던 동생의 조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학의 지식이 없던 에셔에게 폴리야의 논문이 이해 가능했던 이유는, 거기에 담겨 있던 폴리야의 다음과 같은 그림때문이었다.

군론이라는 대칭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 수학자들은 평면을 채우는 방법이 본질적으로 17가지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이 것에 대해서는 Conway와 Huson의 "The Orbifold Notation for Two-Dimensional Groups"이 이제까지 내가 본 최고의 기호 및 증명을 담고 있다) 에셔는 수학과의 이 만남의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다.

A long time ago, I chanced upon this domain [of regular division of the plane] in one of my wanderings; I saw a high wall and as I had a premonition of an enigma, something that might be hidden behind the wall, I climbed over with some difficulty. However, on the other side I landed in a wilderness and had to cut my way through with great effort until ---- by a circuitous route ---- I came to the open gate, the open gate of mathematics. From there, well-trodden paths lead in every direction, and since then I have often spent time there. Sometimes I think I have covered the whole area, I think I have trodden all the paths and admired all the views, and then I suddenly discover a new path and experience fresh delights.

오래 전, 나는 방황 중에 평면의 규칙적 분할이라는 영역에 도달했다. 나는 높은 벽을 보았고, 벽 뒤에 무언가가 숨어있을 것 같은 예감을 가졌기 때문에, 어려움을 무릅쓰고 벽을 올랐다. 그러나 나는 그 반대편에서 황무지에 발을 디뎠고, 힘든 길을 가야만 했다. 그러다가 어느 우회로를 통해, 열린 문에 도착하게 됐는데, 그 문은 바로 수학의 문이었다. 거기서부터는 모든 방향의 길이 잘 닦여 있었고, 그 때부터 나는 그곳에서 종종 시간을 보냈다. 때때로 나는 모든 곳을 밟고, 모든 길을 걸었고, 그 모든 경치를 즐겼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갑자기 나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신선한 기쁨을 경험하곤 한다.

책에는 에셔의 백여개가 넘는 습작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문양들이 참 다양하다. 사자, 사람, 낙타, 여우, 말, 새, 물고기, 나비, 잠자리, 도마뱀, 악어, 딱정벌레, 개미, 게, 꽃, 불가사리, 천사, 악마, 나뭇잎 등등 수많은 가능성이 실험되었고, 이것들이 나중에 그의 실제 발표되는 작품에서도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한다. 그야말로 원천기술?

평면의 분할을 마스터 한뒤, 더욱더 다양한 무한의 가능성을 탐색하던 그는 이제 똑같은 크기의 반복이 아니라 점점 작아지는 반복에 도전한다. 초기엔 밖에서 중심으로 가면서 작아지는 경우를 시도하나, 이것은 별로 맘에 들어하지 않았고, 반대로 중심에서 밖으로 가면서 작아지는 것을 원했다. 헛된 시도 끝에 어려움에 봉착한 그에게 다시 돌파구를 만들어 준것은 수학. 이번에는 수학자 콕세터의 그림이었다. 아래것과 비슷한 류의 그림이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라 부르는 분야에 이런 그림들이 등장한다. 이렇게 하여 에셔의 다음과 같은 그림들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수학자들은 그래서 이러한 에셔의 그림들을 무척 뿌듯하게 여긴다. 비유클리드 기하학들 다루는 책들 중에는 에셔의 그림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책의 표지가 다음과 같은 경우도 있다.

우리 밖의 나라들에서는 이렇게 서로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큰 영향을 서로 주고 받으며, 서로를 살찌우고 더욱더 풍요로운 문화를 만들어 간다. 가능성이 창창한 어린 고딩들조차도, 문과 이과 예체능으로 나눠 키우는 우리의 풍토와는 너무 다르지 않은가. 우리는 무얼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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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sponses to “에셔의 예술에 공헌한 수학”

  1. 이재훈 says:

    그림들 정말 멋진데 :) 시스템도 잘 바꿨다. 예전보다 훨씬 깔끔해보여 ㅎ

  2. 호미니드 says:

    오... 저 유클리드 책은 제가 학부때 공부했던 책이군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