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anuary, 2008

블로그 소개 및 아끼는 예전글 선

Wednesday, January 30th, 2008

이 블로그를 만든지도 4년 이상이 됐다. 물론 최근에 블로그의 이름까지도 모두 바꿔버린 큰 변신이 있었지만, 옛 블로그의 글들은 모두 이 곳으로 옮겨지고 계승되었으니, 이곳의 역사는 옛날것까지 쳐주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워낙 혼자 조용하게 노는 곳으로 설계되고 운영되다보니, 처음 만든 때부터 지금까지 방문객 숫자가 별로 크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전 있었던 대선에서 '거짓'이 승리하는 모습을 목격하며 충격을 받아, 나의 어리석고 짧은 생각이나마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조금 생겼다. 그래서 밖에다가 이 곳의 존재를 좀더 알리려고 하던 때였는데, 어제는 '모기불통신'이라는 유명한 블로그에 링크가 되어, 짧은 시간이나마 방문객 숫자가 평소보다 많이 늘어났다. 그래서 이 참에 좀더 고정독자층을 늘려보고자, 이 블로그를 소개하는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2002년 내가 대학교 학부생때의 일이었다.(현재는 대학원생) 그 해에 프랑스 대선이 있었다. 우파의 시라크와 좌파의 죠스팽의 대결이라 여겨졌던 대선 1차 투표 결과, 시라크 19%, 죠스팽 16% 그리고 극우파의 르펜이 17%를 얻어, 2차 결선 투표(1,2위가 진출)에 좌파후보가 사라지고 우파의 시라크와 극우파의 르펜의 대결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내가 감동을 받았던 사건은 바로 이 이후부터 벌어지기 시작했다. 극우파의 결선투표 진출에 충격을 받은 프랑스인들이 극우파를 반대한다는 하나의 의견으로 똘똘 뭉치기 시작한 것이다. 고등학생들까지 길거리에 나와서 반대시위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 결선투표에서, 시라크는 82%의 지지로 승리한다. 결선투표가 프랑스를 구한 것이었다. 최근에 한 칼럼에서 본 사실은 이러했다. (내가 아직 직접 출처를 찾아본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 대혁명 당시 활약했던 수학자이자 철학자, 정치가인 콩도르세는 ‘다수결 확률해석 시론’에서 이같은 다수결 방식의 함정을 지적하고, 역설적 결과가 나올 확률을 줄이는 방법으로 결선투표제를 제안했다([씨줄날줄] 다수결 선거)

듣고 나니 그럴듯도 했다. 보통 사람들의 마음 속에 수학이 어떤 학문일지 모르겠으나, 사실 수학이 발을 뻗치고 있는 영역이란 이루말할 수가 없다. 의사결정의 영역도 예외가 아니다. '투표의 수학'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니 결선투표가 프랑스를 구한 것이었다면, 이것은 곧 프랑스의 수학자 조상님께서 프랑스를 구한 것이나 다름없는 이야기였다.

수학자, 더 일반적으로 과학계 및 이공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학문을 발전시키고, 더 나은 기술로 세상에 기여하는 것만이 그들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다가 아니다. 이들에게는 이것 직업적인 역할만큼이나 중요한 또다른 사회적 의무가 있다. 힘을 써서 지켜야 하는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 하나는 바로 '의심하는 정신'을 사회에 주입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주의 깊은 사색을 거쳐, 균형있는 근거를 찾아내어 얻어진 것이라면, 그 결론이 아무리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받아들이는 자세'를 사회에 가르치는 것이다. 그나마 수학을 더많이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이런 역할을 해줄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의무를 알지 못하고서는, 맨날 수학도 모르는 멍청이들에게 놀림받아가며 '이공계를 살려달라'고 찌질거리며 외치는 것밖에 못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 나의 이 블로그 '피타고라스의 창 : 수학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추상적인 수학뿐만 아니라, 사람사는 세상에 대해 얘기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곳에서 전개되는 정치이야기조차도 '수학의 눈으로 보는 세상'의 모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새로 오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요즘에 쓰여진 글 몇개만 읽기 쉬울 것이므로, 이 블로그를 좀더 친절하게 소개하는 차원에서 예전에 그래도 당시에는 나름대로 공들여서 썼다고 생각하여 애정이 가는 글 몇 개를 뽑아 보았으니, 관심있으신 분은 한번씩 읽어보시면 좋겠다.


집에서 전하는 생태학 강좌(2002.5.18)

당신이 마시는 우유는 소똥을 거름삼아 자라난 그 풀을 먹은 소에서 난다.

입대하기 이틀전날 시골집에서 만든건데, 글은 아니고 포토에세이라 할까. 나름대로 공들어간 작품이었으나, 블로그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작성한 것을 옮겨온 것이어서, 본 사람이 별로 없을것 같아서 여기에 끼워줬다.

나는 왜 정치에 관심을 갖는가(2003.12.2)

위의 사실들은 모두 나에게 닥친 문제이면서도, 이 사회에 공적인 마인드 부재라는 정치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결론을 나로 하여금 이끌어 내게 하였다. 정치에의 무지와 무관심이 언젠가는 심각한 형태로 자신의 문제가 되어 돌아올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신의 일상의 문제가 언론에서 현안이 되고 있는 정치적 문제와 결코 분리될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 정치에로의 관심을 갖게 하는 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또 그래야만 그 정치적 주장의 논리가 힘을 가질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왜 내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가 하는 주장을, 나의 문제들로 시작해서 펼쳐보았다. '공공성'이라는 것에 대하여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이 즈음 어느 때인가가 나의 정치에 대한 각성이 시작된 때이기도 하다.

헌정 최초 민주적 절차를 표방하는 쿠데타(2004.3.10)

소위 ‘개혁’이 성공한다 한들, 세상이 천지개벽할 듯 바뀐다고 생각하면 나는 좀 틀렸을 것이라 본다. 민주사회에서도 밥 안 먹으면 배고프고, 밥먹으면 똥눠야하는, 웃긴 일에 웃고, 슬픈 일에 우는 사람 사는 모습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통령 한명 잘 뽑고 국회의원 잘 고른다고, 바로 거지가 부자되고, 없었던 일자리가 생겨날 리가 없다. 크게 부당할 것 없는 정도의 사회만 성립된다면,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은 대부분 그 자신에게 돌아가는 것이 옳다고 본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발의되려 하던 때라고 생각된다. 그러니까 아직 세상이 확 분노로 뒤집어 지기 전에, 오랜 사색을 거쳐 공들여 썼던 글이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마음에 드는 글.

열린우리당에는 왜 싸움이 났는가(2006.12.3)

그렇다면 열린우리당은 왜 만들어졌는가? 바로 한국정치의 이들 고질적인 문제인, 보스정치, 지역주의정치, 부정한 정치자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대선 1년전 열린우리당의 풍경을 보고 쓴 글이다. 계속되는 선거에서 연전연패하던 열린우리당이었지만, 그래도 긍정할 것이 있고, 여전히 지켜야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제는 이해찬 의원이 이런 발언을 했다.

이 의원은 “전국정당의 꿈을 가지고 만든 열린우리당을 해산하고 대세에 밀려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한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오류였다”고 토로하기도 했다.(이해찬 “총선 불출마·정계 은퇴, 그런 말 한 적 없다”)

다시 시작합시다.

재미있는 명박씨의 과거(2006.12.08)

대한민국이 조금만 정상적으로 된 나라였다면, 명바기의 정치인생은 이미 10년전인 96년에 끝났어야 할 것 같은데, 암튼 이렇게 돼 있다. 잘나가던 명바기 엎어지던 사건은 재미가 있는 드라마인데, 엎어지던 명바기 다시 일어나는 사건은 별 재미가 없다. 그냥 모두 다 까먹은 것일 뿐이다. 이러면 안된다. 정치인의 미래는 과거로 평가해야만 하는 것이다.

대선 1년전, 김유찬이라는 자가 등장하기 이전이었다. 나는 명바기가 “15대 총선에서 종로 지역구에 노 대통령과 함께 출마해 내가 압도적인 표차로 1등을 하고 노 대통령은 3등을 했다”면서 “당시 3등 하신 분이 결국 대통령이 됐지만 최근 하는 것을 보면 3등은 역시 3등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따위 말을 하는 것을 보고 꼭지가 돌아서, 당시 선거에 대해 좀 알아보았다. 조사 결과는 완전대박. 나는 이것으로 명바기의 정체를 완전히 알 수 있었다. 이 글은 세상밖으로 좀 퍼지기도 했다.

한 시대를 슬프게 떠나보내며(2007.12.19)

오늘의 이 참담한 장면을 보고 망연자실하고 있을 수많은 젊은이들은, 우리가 지난 시기에 놓친 것이 무엇인지 잘 공부해서 기억해두었다가, 이 다음에 행여나 다시 기회가 찾아왔을때 현명한 판단을 내려줄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다시 강조해서 말하지만 지금의 한국정치는 아무리 좋은 정책을 트럭으로 싸들고 온다한들 당선되기는 어려운, 그보다 훨씬 이전의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모두가 그 점을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아무튼 외면하고 있다.

이번 대선결과를 보고 마음아파하며 쓴 글이다. 정치발전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라 여겨지는 것들을 기록해두었다.

이런 녀석들 말고 수학을 주제로한 포스팅들도 생각나는게 좀 있지만, 이들은 차차 또 돌아볼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오늘은 생략. 손님들은 눈치보지 말고 코멘트 남겨주시면 감솨.

과학을 기념하는 북한의 우표들

Saturday, January 26th, 2008

수학에 관련된 세계 각국의 우표들을 모아놓은 Stamping through Mathematics 라는 책을 재미로 보고 있었는데, 뉴턴과 관련된 장에서 다음과 같은 북한의 우표를 발견했다. 두둥!!

이런 표현도 아마 북에 이로운 발언으로 평가할 수 있으므로, 국가보안법 위반일수 있겠지만. 나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 이거 멋지다

호기심이 생겨 구글 서치 가동. 이미지의 출처는 아래의 사이트들.
Physics-Related Stamps
Isaac Newton on Postage Stamps
Images of Mathematicians on Postage Stamps
Meteorite Stamps and Coins

그럼 북한의 과학 우표 콜렉션 시작 두둥!!!

(more...)

개강

Wednesday, January 23rd, 2008

봄학기 수업이 시작됐다. 듣고 싶은 수업이 많은데, 시간과 능력을 고려하여 현실적인 판단을 하자니, 결국은 포기를 해야하는 것들이 있다. 방학을 지내고 났더니, 수학이 좀더 재밌어진것 같다.

지난학기 퀄을 보고난 후, 싸부가 생각해볼꺼리를 주면서 이런말을 해줬다.

You can't learn mathematics abstractly.

세상에서 제일 추상적인 학문이라할 수 있는 수학을 추상적으로 배울수 없다는 말이 무엇인지, 수학 세상의 밖에 있는 사람들은 감이 잘 안올지도 모르겠다. 싸부가 해준 또 하나의 말은 바로 이것.

The best way to learn mathematics is through concrete examples and problems.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 말을 절감하고 있고, 그 실제적인 효과를 조금씩 느끼고 있다. 수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 달통했던 19세기의 대가들은, 지금의 학생들이 배우는 수학의 추상적인 언어를 모르고도, 그렇게 풍요로운 수학을 했다. 모든 것을 다 배운 다음에야,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아는 공부의 순서가 있고, 열을 배워도 하나를 모르는 공부의 방법이 있다.

모리스 클라인 - '수학, 문명을 지배하다'

Monday, January 21st, 2008

책이 좀 두꺼운 점이 약간 망설여지지만, 그 점만 뺀다면, 모리스 클라인의 '수학, 문명을 지배하다'(Morris Kline, Mathematics in Western Culture) 은 아주 좋은 수학 교양서라고 할 수 있다.

수학이 어떻게 서구문명에 영향을 미쳐왔는가를 잘 얘기해 주고 있다. 수학 자체가 옛날부터 어떻게 성장해 왔는가를 다루는 수학사책이 아니라, 수학이 서양의 문화와 문명에 어떤 의미를 갖고 어떠한 영향을 미쳐왔는가를 말하고 있는 책이다. 물론 중심테마는 이 블로그에서 끊임없이 외치고 있듯이, 수학이 킹왕짱이라는 것.

현장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읽으면 작금의 중고딩들이 경험하고 있을 깝깝한 수학시간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물론 지금까지 수학교육을 통해 '짱나는 수학, 도대체 수학 왜 배워야 하나'라는 질문에 답이 없거나 혹은 부정적인 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고, 수학이 이런것이었구나 하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필요가 있다.

파인만 강의 - 태양 주위의 행성 운동에 관하여

Friday, January 18th, 2008

인류의 지성사에서 가장 큰 발견 몇 가지를 꼽는다면,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타원궤도로 돌고 있다는 사실'을 빼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것으로 인하여 인간의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라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신화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파인만 강의 - 태양 주위의 행성 운동에 관하여는 유명한 일반 물리학 교과서인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에는 담겨지지 못했던 파인만의 행성운동에 대한 강의를 담은 책이다. 뉴턴이 활약한 시대 즈음의 간략한 역사와 더불어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타원궤도로 돌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발견이 아무리 세계사를 뒤흔든, 인류지성사의 보석같은 것이라 해도, 이것은 지금에 와서는, 공부를 성실히 한 보통의 이공계의 대학 1학년 정도면 미적분학의 언어를 사용하여 눈깜짝할 사이간에 해치울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소개하는 이 책은 그런 표준적인 증명을 담고 있는 책이 아니다.

수학에서 소위 쓰는 말로 '초보적인 증명(elementary proof)' 이라는 것이 있다. 이 말에는 분명한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고등학생 수준의 수학에서 따로이 더 난이도 있는 공부를 하지 않고, 미적분학을 사용하지 않는 정도면, '초보적인 증명'이라고 불러줄 만하다. 그러나 그것이 꼭 쉽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쉬운 언어를 사용하는 대신, 번뜩이는 아이디어들이 요구되는 것이다. 포크레인으로 할 일을, 삽으로 하라고 시키면, 어쨌든 짱구를 좀 굴려야 하지 않겠는가?

이 책은 행성이 타원궤도를 돌고 있다는 사실을 기하학의 언어를 사용하여 '초보적인 방법'으로 증명하고 있다. 그러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책에 수록되어 있는 파인만의 강의록 부분에는, 실제로 타원궤도가 된다는 것을 증명한 후, 파인만의 이런 말이 담겨 있다.

It is not easy to use the geometrical method ro discover things. It is very difficult, but the elegance of the demonstrations after the discoveries are made is really great. The power of the analytic method is that it is much easier to discover things than to prove things. But not in any degree of elegance. It's a lot of dirty paper, with x's and y's and crossed out, cancellations and so on.
기하학적 방법으로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어렵다 할지라도, 일단 발견한 후에는 그 증명의 우아함의 정도가 매우 크다. 해석적인 방법(즉 미적분학을 사용하는 방법)의 힘은 증명하는 것보다는 발견하기가 훨씬 쉽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어떠한 우아함도 없다. 그것은 단지 x,y, 줄 그은것, 지운것 등등이 난무하는 지저분한 종이뿐이다.

이렇듯이 '초보적인 증명'의 매력은 바로 우아함과 아름다움에 있는 것이다. 뉴턴 역시 이 증명을 기하학적으로 했는데, 파인만은 뉴턴의 증명을 따라갈 수가 없어서, 스스로 고안했다고 말하고 있다. 책의 저자들이 파인만의 증명을 많은 그림과 함께 친절하게 설명해 놓았다. 고등학교에서 타원을 비롯한 이차곡선을 배웠다면, 차분하게 읽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교양으로서의 수학책을 좀 읽고 싶긴 한데, 시간만 투자하면, 페이지 넘어가는게 보장되는 날로 읽는 책말고, 읽고 난 후 정말 보람이 느껴지는 책에 한번 도전해보고픈 사람에게 추천한다. 나도 타원에 대해 몰랐던 것을 배워가면서 즐겁게 읽었는데, 다만 솔직히 말하자면 증명의 중요한 부분에서, 좀 명확히 이해를 못한 부분이 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약간 은근슬쩍 날로 먹는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은 좀더 생각을 해봐야 정확히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소개해 봐야, 실제로 읽을 사람이 별로 없을 거라 확신하지만, 사실 대중을 겨냥한 과학책으로서는 상당히 대담한 것이다. 생각해 보라. 수학이나 과학 대중서라는게 보통, 이런저런 등장인물들 가십이나 섞어서 짜집기하는 그런거 아니겠는가. (나는 이미 이런 책 정도는 트럭으로 쓸수있는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다 하하하) 당당하게 수학적인 '증명'에 책의 대부분을 할애하다니, 이런 용감무쌍한 시도는 한번 음미해 볼만한 사실이다. 대중들이 알아들을 만한 언어로 '증명'을 쉽게 해설한 책을 내놓아서, 과연 출판시장에서 얼마나 경쟁력을 갖출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