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December, 2007

케플러와 정다면체

Saturday, December 29th, 2007

이 글은 오래전에 쓴, "플라톤의 구라에 대하여" 의 후속편이다.

독일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였던 케플러(1571-1630)는 17세기 천문학의 대발견 시대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코페르니쿠스가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당시만 해도 경천동지할 주장을 하고 세상을 뜬 것이 1543년 이므로, 케플러는 그야말로 혁명의 기운이 공기를 타고 떠도는 시대에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케플러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바로, 그가 곁에서 조수로 일했던 티코 브라헤의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행성운동에 대한 케플러의 세가지 법칙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 첫번째 법칙은 행성은 태양을 하나의 초점으로 하는 타원궤도를 돌고 있다는 것이다. 뉴턴이 제시한 만유인력은 거리의 역제곱이라는 사실이 맞는다는 증거를 이 케플러의 법칙이 제시해 준다.

그러나 케플러가 이러한 업적을 남기기 전, 케플러는 행성의 운동에 대한 여러가지 가설들을 만들고 테스트했는데, 그 중에 재밌는 것이 있다. 케플러의 시대만 하더라도, 알려진 행성이 여섯개였다고 한다.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이 바로 그것들이다. 여기서 케플러는 정다면체가 다섯개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먼저 큰 구를 하나 가져온다. 토성의 궤도가 이 구에 놓인다. 그 다음 그 구에 내접하는 정육면체를 그리고, 다시 정육면체에 내접하는 구를 그린다. 이 구에 목성의 궤도가 놓인다. 그 다음 구에 내접하는 정사면체와 정사면체에 내접하는 구를 그린다. 이 구에 화성의 궤도가 놓인다. 그 다음 정십이면체, 정이십면체, 마지막으로 정팔면체를 그려나가면서, 지구, 금성, 수성의 궤도를 만들어 간다. 케플러는 정다면체가 다섯개밖에 없다는 사실이 여섯개의 행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설명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마도 그는 관측결과를 바탕으로 행성운동에 대한 법칙을 세울 줄 알았던 위대한 과학자였으므로, 곧 관측 결과들이 궤도의 거리들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곧 깨달았을 것이다. 물론 나중에 천왕성이 발견됨으로써, 그의 이론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흥미롭게 보는 점은 바로 이것,

플라톤은 티마이오스에서, 각각의 원소를 각각의 정다면체에 대응시켜 놓았고 (불=정사면체, 공기=정팔면체, 물=정이십면체, 땅=정육면체 그리고 하나 남은 정십이면체는 우주전체), 케플러는 정다면체들의 배열로 행성운동의 법칙을 설명하려 했다는 점이다.

재밌는 것은 그들은 정다면체를 이용하여 그 시대의 한계 안에서 나름대로 "만물의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21세를 살고 있는 우리가 보기에는 얼토당토 않지만.

하지만 오늘날의 첨단과학은 어떤 방식으로 "만물의 이론"에 도전하고 있는지 들어본적이 있는가? 이 점이 바로 포인트이다. 놀라운 것은 여전히 플라톤과 케플러의 아이디어가 살아있다!!! 는 것이다. 어떻게?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된다.

수학문명의 시대

Thursday, December 27th, 2007

얼마전 OECD 에서는 각국의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읽기, 수학, 과학 분야에 대해 실시한 학업성취도 국제학력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성적표를 받아든 각국의 표정이 교차했다.

기사링크


한국의 경우 수학과 읽기 성적은 훌륭했지만, 과학 순위가 전보다 많이 떨어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한국의 교육열과 사교육 비용에 비해 성적이 저렇게 나오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겠다만은,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결과보다는 바로 이 사실, 즉 15세 아이들의 수학,과학 실력이 어느새 각국의 관심의 초점이 되는 국력의 지표 혹은 국력의 미래지표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500여년전 피타고라스는 음악의 비밀이 수학에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한옥타브는 2:1, 도와 솔은 2:3 ... 피타고라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종교 비슷한 조직을 형성했다. 그들의 믿음은 이것.

"만물은 수다"

이후 그리스문명의 절정기에, 그의 철학을 계승한 플라톤은 그 이후 오늘까지 이어져내려온 2000년 서양문명의 궤도를 제시한다. 그가 세운 학교의 이름은 아카데미아. 그 학교의 팻말에는 이런 말이 써있었다고 전해진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말라"

이들을 본류로 하는 그리스의 고전문명이 자양분이 되어 유럽에 르네상스가 일어나고, 마침내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문명의 한 축을 탄생시킨 혁명가 뉴턴이 등장한다. 영국, 프랑스, 미국의 민주주의 혁명이 우리의 시대에 가지고 있는 의미만큼이나, 뉴턴의 혁명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대학에 갓 들어온 모든 이공계 학생은 미적분학을 배운다. 이것은 전세계 대학의 공통 커리큘럼이다. 데모만 하고 수학공부를 안하는 학생의 지성을 나는 믿어주지 못한다. 우리는 학부 꼬맹이들에게 미적분학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전하고 있는 것일까.

인터넷 회선을 따라 숫자들이 움직이고 있다. 우리가 하는 경제활동의 가장 핵심에는 서로의 계좌에 있는 숫자의 교환이 자리잡고 있다. 피타고라스가 설파한 수의 비밀이 오늘날만큼 세상에 응용된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디지털혁명이 일어나기 훨씬 전인 17세기 유럽의 라이프니츠는 그는 그의 논리학 연구에 이진법의 응용가능성을 생각했다. 친구 선교사가 중국에서 가져다 준 주역책의 64괘를 보고 놀라게 된다. 그것은 의심할바 없는 체계적인 이진법의 언어였다.

우리는 지난 20세기 서양의 과학을 배우느라 힘겹게 달려왔지만, 겉에 보이는 것들만 카피했지, 그 밑바닥을 도도하게 흐르고 있는 수학문명의 합리주의 정신까지 가져오진 못했다. 어른들은 학생들의 수학실력만 보고 판단하고 있지만 학생들의 수학실력보다 더 중요한 국력의 지표는 바로 공적영역에서의 합리성이라는 것이다. 거짓이 진실을 이기는 세상에서 공부잘하던 아이들이 어떻게 커갈것인지 나는 그 점을 우려한다.

허나 그래도 국기에다가 디지털 신호를 새겨넣은 세계 유일의 나라이다. 이점에서는 희망이 보인다. 무엇부터 해야 하는 것일까.

사과는 별을 싣고...

Sunday, December 23rd, 2007

사과를 가로로 자르는 일은 흔치 않기 때문에, 사과의 이런 단면은 참 낯설다. 사과 속에 별이 있고 꽃이 있다. 세상엔 참 흔한데도 불구하고, 못보고 지나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계속되는 세미나 준비

Friday, December 21st, 2007

싸부의 제자인 친구와 둘이서 나의 연구실에서 세미나를 했다. 싸부가 스물여섯살일 때 쓴 (젠장!!) 역사적 페이퍼 Vertex Algebras, Kac-moody algebras, and the Monster 와 함께 학부 때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손때가 제법 낄 정도로 본 책 Vertex Operator Algebras and the Monster 의 내용을 리뷰하고 있다. (몬스터와의 대혈투) 그런데 예전에 학부때 이 책을 공부하면서 작성한 노트가 오늘 공부하는데 너무 유용해서 새삼 놀라고 있다. 돌이켜 보니, 이 책에 묻은 손때가 나를 밀어올려, 지금 싸부와 함께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유학준비를 하기전에 한 교수님께 찾아가 '선생님, 이걸 공부하겠습니다' 하고 돌아섰는데, 나중에 보니, 선생님도 이 책 제대로 안본것같더라는 -_-

그 동안 나의 무의식은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해왔는가, 이해도를 측정하며 확인을 해봐야겠다.

한 시대를 슬프게 떠나보내며

Wednesday, December 19th, 2007

대선이 끝났다. 오래전부터 이미 예정되어 있던 결과였지만, 맘이 그다지 편하지는 않다.

오늘따라 유난히, 수학의 역사를 통털어, 단 하나의 정리도 다수결에 의해 증명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그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음미해 보았다.

숨가쁘게 진행되온 지난 세월, 즉 노 대통령이 탄핵에서 복귀한 이후에 여당 쪽에 있었던 중요 정치적 사건들을 다시 한번 돌이켜봤다.

2004년 10월, 헌재, 수도이전 위헌판결.
2004년 12월, 열린우리당, 국보법 비롯한 4대개혁입법 실패.
2005년 4월, 열린우리당 당의장선거 문희상 당선, 보궐선거 열린우리당 23-0 전패.
2005년 7월, 대통령, 한나라당에 대연정 제안. 한나라 거부
2005년 10월, 열린우리당, 보궐선거 패배. 정세균 의장 선출
2005년 12월, 열린우리당 한나라당의 물리적 저지 뚫고 사학법개정안 통과
2006년 2월, 정동영 의장 취임
2006년 5월, 지방선거 열린우리당 참패, 김근태 당의장 승계
2006년 11월,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 실패
2007년 1월, 대통령 개헌 제안
2007년 1월, 열린우리당 의원 탈당 시작
2007년 4월, 한미 FTA 타결, 대통령 개헌 제안 철회
2007년 8월, 대통합민주신당 창당, 열린우리당 신당에 흡수합당 및 소멸
2007년 12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대통령 당선

2004년 후반기의 개혁실패를 기점으로, 열린우리당은 끊임없이 선거패배, 지도부 교체만을 반복하다가 망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2004년 4월 총선의 뜨거웠던 열기를 생각한다면, 바로 이 지점 즉, 2004년 말과 2005년초의 어딘가에서 거대한 민심의 이반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열린우리당의 개혁입법의 실패라 진단한다. 물론 책임자는 상생 및 실용주의를 외친 정동영과 그 졸개들이다.

내가 대한민국 역사에서 단 한번 찾아왔던 개혁의 찬스라 말하는 이 시기. 이 날이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앞으로 북한과의 관계 및 동북아시아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는가에 따라, 뼈가 사무치도록 후회할 날이 올런지도 모르겠다. 정조의 개혁이 실패한 이후 조선이 망하는 그날까지, 내리막길의 흐름은 한번도 되돌려진적이 없었다. 그 이후는 탐관오리의 득세, 그리고 계속되는 민란과 그것의 진압. 세기만 바뀌었지 다를것 같은가.

노무현은 이후 두번의 정치적 승부수를 더 던졌다. 2005년 7월의 대연정 제안, 2007년 1월의 개헌 제안이었다. 결과는 모두 실패. 정치인 노무현의 철학이 담겼던 제안들이었지만, 시대는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나의 결론은 노무현을 지도자로 갖기에는 한국이 아직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위에 나열한 사건의 진행을 보면, 무엇이 한국정치의 고질병인지가 드러난다. 첫번째, 행정권력과 의회권력의 끊임없는 교착. 두번째, 시도때도없이 해야하는 선거. 세번째, 선거의 유불리에 따른 정치인들의 무질서하고 원칙없는 이합집산.

바꾸어야 하는 것은 인물이 아니라, 제도였다. 그러나 혹세무민하는 언론과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처럼 생떼를 쓰는 민도 낮은 국민 그리고 거기에 대고 입에 발린 소리밖에 하지못하는 정치모리배들밖에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위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패키지 솔루션이 존재해야 한다. 건전한 정당들이 존재해야 하고,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할 수 있도록 행정권력과 의회권력이 일치해야 하고, 시도때도아닌 선거가 아니라, 일정한 주기의 선거를 통한 평가로 책임있는 정치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유권자가 던진 표들이, 의미있는 형태로 선거결과에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전제 조건이다. 왜 끊임없이 진흙탕 개싸움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직도 모르는가.

노무현은 대연정을 통해 무엇을 요구했는가. 선거구제의 개편을 요구하는 대신, 권력을 야당과 일정부분 공유하길 원했다. 설령 이것은 선거를 통해 잠시 양도된 권력을 자의적으로 사용한다고 하는 그리고 책임의 소재가 불분명해진다는 점에 있어, 책임정치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의 소지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을 받는 한이 있어도, 이것이 공동체 전체의 정치발전을 위해 반드시 한번은 지나쳐 가야할 단계이기에 이 제안은 나온 것이다. 한국에서 선거구제의 개편은 유권자들의 많은 표가 사표가 되는 작금의 불합리한 현상을 시정할 수 있다. 부패한 메이저 정당들의 독과점을 해소할수 있게 하고, 민주노동당 같은 마이너 정당들의 의회입성을 도울 것이다. 지역주의 해소에도 일조하게 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투표 행위가 정치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하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살려낼 수 있다는데 있다. 만연한 정치허무주의도 상당부분 허물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의회에 정당이 많아지면, 연정이라는 것은 필수적인 정치현상이 될수밖에 없다. 이 하나의 제안에는 이렇듯 여러가지의 것들이 논리적이고, 합당하게 결부되어 있다. 이런 제안에 대고 '민생이나 챙겨라' 이러면 결국 진흙탕 개싸움을 계속하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 보라.

노무현이 개헌을 제안할 때 무엇을 요구했는가.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제로 할 것을 요구했고,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주기의 일치를 요구했다. 이 개헌을 지금 하고 나면, 다른 헌법조항들은 좀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손볼수 있다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주장이었다. 이 개헌제안에는 행정권력과 의회권력의 교착을 누그러뜨리고,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할 수 있도록 하며, 일치된 선거를 통해 책임정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문제의식이 담겨져 있다. 87년의 헌법은 대한민국의 역사에 길이길이남을 중요 문서임에 틀림이 없지만, 한국이 가진 한국적 정치문제의 해결책까지 담고 있지는 못하다. 여러가지 정치적 문제들이 지난 20년간 드러내어져 왔다. 그러므로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가 거의 근접한 이 20년만에 찾아오는 개헌의 기회를, 대통령이 놓치지 않고 살려준 것은, 잘했다는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이를 다시 '민생이나 챙겨라'라는 말로 내팽개쳐 버린 것은, 결국 진흙탕 개싸움을 계속하라는 것과 역시 다르지 않은 짓이었다.

이 얼마나 집단적 등신짓의 악순환인가.

장담하건대, 향후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나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노무현 이상의 총명한 지도자는 한동안 한국에 나타나지 않는다. 역사적 찬스라는 것은 그렇게 흔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의 이 참담한 장면을 보고 망연자실하고 있을 수많은 젊은이들은, 우리가 지난 시기에 놓친 것이 무엇인지 잘 공부해서 기억해두었다가, 이 다음에 행여나 다시 기회가 찾아왔을때 현명한 판단을 내려줄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다시 강조해서 말하지만 지금의 한국정치는 아무리 좋은 정책을 트럭으로 싸들고 온다한들 당선되기는 어려운, 그보다 훨씬 이전의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모두가 그 점을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아무튼 외면하고 있다.

대통령 당선자가 된 이명박은 이제 의회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럼 명박이 이제 뭘해야 하는가. 대통령직 인수준비와 더불어,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 이러면 또 무슨생각나나. 선거법위반 생각나지. 대통령 탄핵 사태까지 불러왔던 바로 그 선거법이다. 우리는 모두 쳇바퀴 위에 올라탄 다람쥐인 것이다. 지겹게 반복해왔던 집단적 등신짓을 오늘부터 새롭게 또 시작하는 거다.

아 난 이제 다수결이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