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une, 2007

양주동의 '몇어찌'

Tuesday, June 12th, 2007

향가 번역으로 유명한 자칭 국보 양주동 선생의 수필 '몇어찌'를 소개한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맞꼭지각은 서로 같다'는 정리의 증명을 배웠을 때의 느낌을 그는 이렇게 쓴다.

멋모르고 "예, 예." 하다 보니 어느덧 대정각(a와c)이 같아져 있지 않은가! 그 놀라움, 그 신기함, 그 감격, 나는 그 과학적, 실증적 학풍 앞에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면서, 내 조국의 모습이 눈앞에 퍼뜩 스쳐감을 놓칠 수 없었다. 현대 문명에 지각하여, 영문도 모르고 무슨 무슨 조약에다 "예, 예." 하고 도장만 찌다가, 드디어 "자 봐라, 어떻게 됐나."의 망국의 슬픔을 당한 내 조국 ! 오냐, 신학문을 배우리라. 나라를 찾으리라. 나는 그 날 밤을 하얗게 새웠다.

수학 공부를 열심히 안하면, 나라를 빼앗깁니다.

내가 중학교의 전 과정을 단 1년 간에 수료하는 J중학 속성과에 입학한 것은 3·1운동 이듬해였다. 그 때까진 고향에서 한문학에 몰두하고 있었다.

한문학이라면 노상 무불통지를 자처하는 나였으나, ‘처녀작’, ‘삼인칭’ 같은 신식 말 때문에 크게 고심하던 중이어서, 나는 참으로 부푼 가슴을 안고 신학문을 배우러 들어갔던 것이다.

나는 개학 전날 , 교과서를 사 가지고 하숙에 돌아와 큰 호기심을 가지고 훑어보았다. 그러던 중, ‘처녀작’, ‘삼인칭’에 못지 않은 참 기괴한 또 한 단어를 발견했는데, 그게 곧 ‘기하’라는 것이었다. ‘기하’의 ‘기’는 ‘몇’이란 뜻이요, ‘하’는 ‘어찌’란 뜻의 글자임이야 어찌 모르랴만, 이 두 글자로 이루어진 ‘기하’란 말의뜻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기하’라? ‘몇 어찌’라니?

첫 기하 시간이었다. 나는 자리를 정돈하고 앉아서 선생님을 기다렸다. 이윽고 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 우리들의 예를 받으시고, 막 강의를 시작하여 하실 때였다. 맨 앞줄에 앉았던 나는 손을 번쩍 들고,

“선생님, 대체 ‘기하’가 무슨 뜻입니까? ‘몇 어찌’라뇨?”

하고 질문을 했다. 선생님께서는 이 기상천외의 질문을 받으시고, 처음에는 선생님을 놀리려는 공연한 시문으로 아셨던지 어디서 왔느냐,정말 그 뜻을 모르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나 곧,나에게 아무 악의도 없음을 알아채시고, 그 말의 유래와 뜻을 가르쳐 주셨다. 가로되, 영어의 ‘지오메트리(측지술)’를 , 중국 명나라 말기의 서광계가 중국어로 옮길 때, 이 말에서 ‘지오(땅)’를 따서 ‘지허(’기하‘의 중국음)’라 음역한 것인데, 이를 우리는 우리 한자음을 따라 ‘기하’라 하게 된 것이라고,

“알겠느냐?”
“예.”
“너, 한문은 얼마나 배웠느냐?”
“사서삼경, 제자백가 무불통지입니다.”
“그러데, ‘기하’의 뜻을 모른다?”
“한문엔 그런 말이 없습니다.”
“허허.그런데, 너 내일부터는 세수 좀 하고 오너라.”
“예.”

사실 나는 ‘기하’란 말의 뜻과 그 미지의 내용을 생각하는 데 너무 골똘했던 나머지, 세수하는 것도 잊고 등교했던 것이다. 나머지 시간은 일사천리로 강의가 계속되어, ‘점, 선, 면’의 정의를 배우고, ‘각, 예각, 둔각, 대정각’을 배우고, ‘공리,정리, 계’한 용어를 배웠다.

하숙에 돌아온 나는 또, ‘정리란 증명을 요하는 진리다.’와 같은 , 참으로 기괴한 문장을 뇌까리면서, 다음 기하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다음날의 기하 시간이었다. 공부할 문제는 ‘정리1. 대정각은 서로 같다.’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나는 또 손을 번쩍 들고,

“두 곧은 막대기를 가위 모양으로 교차, 고정시켜 놓고 벌렸다 닫았다 하면, 아래위의 각이 서로 같을 것은 정한 이치인데, 무슨 다른 ‘증명’이 필요하겠습니까?”

하고 말했다.선생님께서는 허허 웃으시고는, 그건 비유지 증명은 아니라고 하셨다.

“그럼, 비유를 하지 않고 대정각이 같다는 걸 증명할 수 있습니까?”
“물론이지. 음, 봐라.”

선생님께선 칠판에다 두 선분을 교차되게 긋고, 한 선분의 두 끝을 A와 B, 또 한 선분의 두 끈을 C와D, 교차점을 O, 그리고…AOC를 a,…COB를 b, …BOD를 c라 표시한 다음, 나에게 질문을 해 가면서 칠판에다 식을 써 나가셨다.

“a+b는 몇 도?”
“180도입니다.”
“b+c도 180도이지?”
“예.”
“그럼, a+b=b+c이지?”
“예.”
“그러니까, a=c 아니냐.”
“예,그런데,어찌 됐다는 말씀이십니까?”
“잘 봐라, 어떻게 됐나.”
“아하!”

멋모르고 “예, 예.” 하다 보니 어느덧 대정각(a와c)이 같아져 있지 않은가! 그 놀라움, 그 신기함, 그 감격,나는 그 과학적, 실증적 학풍앞에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면서, 내 조국의 모습이 눈앞에 퍼뜩 스쳐감을 놓칠 수 없었다. 현대 문며에 지각하여, 영문도 모르고 무슨 무슨 조약에다 “예, 예.” 하고 도장만 찌다가, 드디어 “자 봐라, 어떻게 됐나.”의 망국의 슬픔을 당한 내 조국 ! 오냐, 신학문을 배우리라. 나라를 찾으리라. 나는 그 날 밤을 하얗게 새웠다.

나는 지금도 첫 강의 시간에는 대개, 위에 적은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 주고,중학교에 들어가서 기하를 처음 배울 때, 그 말의 뜻을 묻는 학생이 과연 몇이나 되느냐 하고 농담삼아 질문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발의심’과 새 세계에 대한 ‘경이감’을 잃지 않았기에, 알량하나마 학적 저서 약간 권을 이룩했노라고 말한다

아래 영상은 "도올의 논술세대를 위한 철학교실 제07강 수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따온 해당 부분임.

어익후 싸부님 뉴스에 났네

Friday, June 1st, 2007

요건 한국일보 기사

자폐아 중에는 사회적 관계에는 서투르지만 수학 계산이나 암기에는 뛰어난 이들이 종종 있다. 유명인들 가운데도 고기능 자폐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이들이 많다. 수학의 최고 영예인 필즈 메달 수상자 리처드 보처즈 케임브리지대 수학과 교수의 경우는 이를 잘 보여준다.

뉴턴과 아인슈타인 역시 체계화 기술은 매우 뛰어났던 반면 공감 기술은 부족해서 사회에서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

요건 문화일보 기사

저자는 자폐를 극단적 남성 뇌의 경향으로 파악한다. 1998년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 메달을 받은 리처드 보처즈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자폐에 가까웠다. 보처즈와 같은 자폐의 경우 복잡하지만 체계가 있는 수학보다 체계가 없는(?) 사람과의 관계가 훨씬 어려웠다. 극단적인 여성 뇌의 경우 사람의 얼굴에 대한 주의력은 아주 뛰어나지만 학습이 불가능한 윌리엄스증후군으로 의심되기도 한다.

맨날 보도자료만 베끼는 기자놈들, 아무리 책리뷰 기사라고 해도 그렇지, 싸부님이 케임브리지 떠난지가 언젠데... 쯔쯔쯔. 이러니 언론탄압한다고 다같이 합창을 하고, 개떼처럼 청와대를 항의방문해도 여론조사 결과는 정부측 승리 ㅋㅋ

책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라함.

컴퓨터 게임과 스포츠 데이터에 목을 메는 남자, 전화로 수다 떨면서 별별 이야기를 다하는 여자. 남자는 화성에서, 여자는 금성에서 왔으니 당연하다고 넘어가면 그 뿐일까. 케임브리지대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남자와 여자가 다른 별에서 왔다는 식의 농담은 둘의 차이만 극단적으로 확대, 진실을 흐리게 할 뿐이라며 과학적 접근을 권한다.

책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의 행동과 성향이 다른 이유는 한 마디로 뇌가 다르기 때문이다. 저자는 첫 페이지부터 “여성의 뇌는 공감에 더 적합하게, 남성의 뇌는 체계를 이해하고 구성하는 일에 더 적합하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심리학버전인거 같음.

아무튼 이런데서 등장하는 싸부님. 그래도 결혼했다는 놀라운 사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수학적인 면보다도 결혼했다는 사실이 나를 더 압박한다는거. 기회가 되면 결혼하는 방법좀 물어봐야지. 체계적으로 알려달라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