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May, 2007

보셔드 -_-

Wednesday, May 23rd, 2007

블로그를 시작했네 -_- 아이고.

보셔드가 포스팅하면 타오는 코멘트를 달아요. 난 몰라 -_-

석호필처럼 멋진 사람이 되려면

Wednesday, May 9th, 2007

Geometry, 지오메트리의 지오를 중국에서 소리를 그대로 옮겨 기하학이란 말이 탄생하였다.

도올은 며칠전 중앙일보 도올고함이라는 칼럼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고문명(古文明) 하면 가까운 데부터 중국의 황하문명을 생각하고, 갑골문 하면 인류 태고의 문자의 탄생인 것같이 생각한다. 내가 갑골문을 연구한다고 하면 아주 태초의 문자를 탐색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 웃기는 이야기다! 갑골문이 탄생한 것은 기껏해야 BC 1200년 언저리의 사건이다. 그리고 그 당대 혹은 그 이전의 문명유적을 살펴보면 그 규모가 초라하기 그지없다. 중국문명은 인류문명사의 전 스케일에서 조감하면 결코 고문명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최근세문명의 시발이라 해야 옳다. 지금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중국의 갑골문이 생겨나기도 전 1400년이나 앞선 사건인 것이다. 이집트라는 최고(最古)문명은 이미 최고(最高)문명의 수준을 과시하고 있었다. 21세기 컨템퍼러리 감각에도 조금의 손색이 없는 문명이 이미 4600년 전에, 황하문명이 여명의 꿈을 꾸기도 훨씬 전에 이미 나일강 주변에 완성되어 있었다는 이 엄연한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미스터리는 '범람'이라는 왜곡된 한 단어에서 풀린다. 나일강의 범람을 토인비가 '도전과 응전(Challenge and Response)'이라는 엉터리 도식으로 설명한 데서부터 이미 우리는 잘못 세뇌당해 왔다. 범람은 결코 도전이라 말할 수 있는 불운한 홍수(Flood)가 아니다. 나일은 적도 부근의 풍요로운 밀림지역의 극대의 강우량이, 강우량이 극소한 사막을 빠져나가는 유일한 문명의 젖줄이었다. 이집트문명은 나일의 선물이다. 이집트인은 하늘에 빌 필요가 없었다. 기우제를 지낼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일 년 내내 쨍쨍한 태양만 있다. 그 태양 아래 흘러가는 강물의 예측가능한 주기적 수위의 변화! 이것은 홍수가 아닌 이넌데이션(Inundation)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은 동양철리의 수화론(水火論)으로 풀린다. 극대치의 화와 극대치의 수가 만나는 풍요로운 평원, 그것이 나일 주변의 범람지역인 것이다. 이집트인들은 범람지역의 땅을 재기만 하면 되었다. 이 땅(geo) 잼(metry)을 지오메트리(geometry), 즉 기하학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희랍으로 넘어가 피타고라스학파를 잉태시키고 플라톤주의(Platonism)라는 서구문명의 홍류를 탄생시켰다.

예측가능한 수위의 변화와 일 년 내내 보장된 태양! 여기서 결과된 것은 인간의 기하학적 이성과 무한정한 하부구조의 축적이었다. 나일 주변은 인간이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잉여가치 축적지였다. 게다가 6월에서 10월에 이르는 아케트(akhet) 범람 시기에는 전 국민이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이 잉여를 모조리 문명의 건설에 투여한 것이다. 이집트문명의 성과를 우리는 파라오라는 독재자 밑에서 신음하던 노예들의 잔인한 노역의 결과로 왜곡해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구약의 출애굽드라마에서 유추된 그릇된 인상이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의 이념에 헌신한 공동체의 단합된 모습의 과시였다. 우리도 지금 이 시간, 여기 삼천리 금수강산에서 그런 문명의 성취를 이룩할 수 있는가 하는 것만을 반추해야 한다.

면접관:Sorry to keep you waiting.
필:Oh, it's, uh, not a problem.
면접관:Impressive resume.
필:Thank you.
면접관:Tell me why you chose to pursue a career in engineering.
필:Well, um...
I've always been interested in, uh, structure, geometry 샤방샤방.
How things fit together, how an object performs a function can...also be a work of art.

자꾸 공돌이 공돌이 하니까 애들이 기피하는 것이다. 공돌이란 말 앞으로 쓰지 말자. art는 곧 기술이며 예술이다.

숫자 24 와 Leech lattice

Thursday, May 3rd, 2007

보셔드는 이런게 기록됐는지도 모를꺼야. 아무튼 이런 좋은 말들은 좀 적어둘 필요가 있다.

Is it possible some interesting lattices like Leech lattice exist in higher dimension?
It doesn't seem to.
why is that so?
There can't be anything really like the Leech lattice because
the reason why lattices behave well up to 24 dimensions is becasue of the Leech lattice.
If a unimodular lattice of dimension most 24 or 25 or so, you can embed its Dynkin diagram into the Leech lattice in a natural way.

어떤 아이를 길러낼 것인가

Tuesday, May 1st, 2007

역사 속에 위대한 사람치고, 삐딱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요즘 사람들은 착하게 살자고 예수를 믿지만, 예수같은 사람이야말로 당대에는 하도 위에서 하는말 안듣고 개기다가 국보법으로 처형당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국가가 주도하는 교육은 늘 고분고분한 인간을 기르는데 목표를 둔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나라에 충성해 줄 말잘듣는 사람이 필요한 거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모두 그렇게 말 잘 듣는 사람만 있으면, 나라가 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대다수는 말을 잘 들어야 세상이 돌아가겠지만, 그렇게 어른말 무조건 잘 듣는 착한 아이들만 길러서야 어디 예수, 고흐, 다윈 같은 사람이 어떻게 나와서, 틀린 것을 바로 잡을 수 있겠는가.

민주주의의 장점은 자기 자신의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의 교육도 그러므로 이러한 사상을 반영해야 한다. 말 잘 안듣는 아이를 기를 필요성을 헌법이 암묵적으로 담고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우리에겐 끊임없이 기존의 것을 뒤엎으며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줄 혁명가가 필요하다.

수학교육이 여기에 중요한 몫을 담당한다. 저항하는 인간은 의심하는 정신에서부터 시작된다. 수학은 이러한 의심의 정신, 남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지 않는 정신을 길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과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