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December, 2006

재미있는 명박씨의 과거

Friday, December 8th, 2006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7일 노무현 대통령의 최근 정치 행태에 대해 자신과 맞붙은 15대 총선 당시에 빗대 “노 대통령은 역시 3등”이라고 비꼬았다.

이 전시장은 이날 건국대 부동산 대학원 초청강연에서 “15대 총선에서 종로 지역구에 노 대통령과 함께 출마해 내가 압도적인 표차로 1등을 하고 노 대통령은 3등을 했다”면서 “당시 3등 하신 분이 결국 대통령이 됐지만 최근 하는 것을 보면 3등은 역시 3등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기사)

자기는 1등, 노무현은 3등이었다니...난 노빠로서 명바기의 저런 비열한 말에 속이 상했다. 그래서 나는 명바기의 과거에 대해 약간 공부를 해 보기로 했다. 조사 방법은 간단하다. 기사 검색 사이트 카인즈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럼 잠시 살펴보자. 이명박의 과거

명바기는 청계천으로 재미보더니, 대선 공약으로 경부운하를 들고 나온 바 있다. 그는 65년에 현대건설에 입사해서, 12년후 77년 현대건설 사장의 자리까지 오르고, 1991년 말 현대건설 회장의 자리에서 정계진출을 선언한다. 건설업자로서의 경험들이 정치인 이명박의 펀더멘털한 정체성을 형성한 것 같다. 거기서 뭘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카인즈 기사 검색도 안 되고, 아무리 짱구를 굴려봐도, 내가 초등학교 때 맨날 공차러 놀러 다닐 때라 별 기억이 없다. 머 암튼 좋다.

1992년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이 정치에 뛰어든다. 현대맨 명바기는 여기서, 중요한 결단을 한다. 정주영이 만드는 신당에 불참한 것이다. 이곳으로 가면, 왕회장님 꼬봉 노릇밖에 못할 것이라 판단했는지, 아무튼 다른 길을 선택한다. 왜 갈라섰는지에 대해서는 명바기 인터뷰를 조금 읽어보시든지.

암튼 명바기는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자당 전국구 25번에 발탁되고, 국회의원이 된다. 국회의원으로서 뭔 일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민자당 입장에서는 그 해, 대선에서 정주영을 견제하기 위한 카드로 명바기를 꼬셨던게 아닐까 싶다. 그러면 1992년 대선 유세 현장의 풍경. 김대중 쪽의 노무현도 슬쩍 보인다.

1993년 공직자 재산 공개가 있던 때, 국회의원인 명바기도 재산 공개를 했다. 2백74억2천만원이있다고 했다. 돈이 많았던 명바기는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재산 공개를 앞두고 서초동의 금싸라기 땅을 매우 싸게 팔기도 했다. 아깝겠다. 쩝. 명바기는 돈보다는 권력을 좋아한다. 암튼 오너도 아닌 자수성가 전문경영인이 어떻게 그리 많은 돈을 벌었는지에 대해서도 당시 많이 의심을 받았던 모양이다.

1995년, 명바기는 자전 에세이를 펴냈다. "신화는 없다" 95년에는 지방선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명바기는 3월 서울시장 출마선언을 한다. 대통령 겸 민자당 총재 빵삼이는 서울시장 후보를 골라줘야 하는데, 빵삼이는 이 때, 명바기보다는 정원식 전총리에게 마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초선의원 명바기는 여기서 경선안시켜준다면, 탈당한다고 버틴다. 빵사미가 직접 나서서, 명바기를 달래려고 했으니, 명바기는 끝까지 경선을 요구하고, 끝내는 경선을 얻어낸다. 빵사미를 명바기의 고집이 꺾은 것이다. 명바기는 그리 호락호락 만만한 초선의원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경선은 어찌되었을까? 졌다. 그리고 불만은 좀 있었겠지만, 승복도 했다. 졌지만 명바기는 그만큼 또 컸다. 절대권력 빵사미에게 맞짱 떠 가면서 컸다. 그 선거에서 명바기는 정원식의 러닝메이트로 뛰면서 부시장을 약속받았으나, 조순과 이해찬이 나선 민주당에게 졌다.

1996년,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이것이 바로 이명박 1등, 노무현 3등이란 말이 나오게 된 선거다. 정치1번지 종로에서 이명박, 이종찬, 노무현이 출마했다. 잠시 배경을 이해하자면, 1995년 지방선거가 끝나고, 은퇴했던 김대중이 97년 대선을 겨냥하고 돌아온다. 민주당의 사람들은 김대중의 국민회의로 옮겨갔고, 민주당에는 김대중의 정계 복귀에 반대하는 소수만이 남았다. 여기남은 노무현이 민주당 후보로 종로 국회의원으로 출마하고, 패한다. YS, DJ, JP의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지역분할이 유난히도 강력하게 작용한 이 선거에서 대패한 민주당은 미니정당이 되지만, 노무현은 이 꼬마 민주당을 잠시 이끌면서 성장한다. 아무튼 여기서 명바기는 자기 말대로 당선이 되었고, 이제 중진 못지 않은 2선 의원이 됐다. 명바기는 시작부터 50대 기수론 등을 주장하며, 대통령을 향한 자신의 포부를 밝힌다.

승승자구하던 명바기, 그러나, 곧 대반전이 시작된다. 15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이 된 명바기의 참모 하나가 명바기의 선거 자금 문제를 폭로한 것이다. 당시 법정선거비용은 9천5백만원. 명바기는 선관위에 7천백만원을 신고했다. 그런데 선거참모가 나타나서 자기가 확인한 것만 6억 8천만원이라고 폭로를 했다. 국민회의 정동영 대변인은 검찰의 수사를 촉구하고, 아무튼 폭로가 된 이상 검찰의 명바기 수사가 시작됐다. 당시 선거 참모와 이명박의 말을 들어보자.

아무튼 난감해진 민자당은 대책도 못 세우고 우왕좌왕 대고 있었다. 명바기를 감싸자니, 들통나면 또 큰일이 날 것같고, 그렇다고 또 야당의 집중 공격을 당하는 명바기를 그냥 팽개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파문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이 사건을 폭로했던 명바기의 참모가 돌연 해외로 출국을 한다. 이 자가 왜 갑자기 해외로 떠났는지 곧 2차 공방전이 시작된다. 아무튼 당시 명바기의 말도 들어보자. 그러는 가운데 동해안 무장간첩 사건이 터지고, 사건이 흐지부지되려 한다. 그런데 검찰은 곧 명바기의 참모들이 그 폭로참모를 빼돌렸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그들을 구속한다. 사태가 여기까지 진행되자 다급해진 신한국당은 이명박의 탈당을 권유하고, 출당 협박까지 한다. 당시의 신문 사설들을 읽어보자. 서울신문 "이명박 사건과 도덕성". 경향신문 "이명박 의원의 두얼굴" 야.. 명바기 더럽네 진짜... 반칙써서 1등하고 이렇게 뻐기기냐.

여당은 명바기의 탈당을 요구하고, 야당은 명바기의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지만, 우리의 철면피 명바기는 이러한 요구들을 거부하고, 버티기에 들어간다. 검찰은 곧 폭로자 출국에 대해 명바기도 관여했다는 것을 포착했고, 수사는 막바지에 접어든다. 아무튼 당시 수사의 한 단면을 살펴보자.

7일 오후 검찰에 소환돼 20시간여동안 조사받은 신한국당 이명박 의원은 시종일관 혐의사실을 부인해 검찰관계자들이 혀를 내둘렀다는 후문이다.이의원은 조사 초기에는 혐의사실을 부인하다가도 새벽쯤에는 혐의를 털어놓기 시작하는 일반 피의자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완강한 태도였다는 것.

명바기 안 되겠네... 아무튼 드러난 폭로의 이유는 '승진 안 시켜줘서' 였다. 그 참모는 그 앙심으로 국민회의 측에 자료를 가지고 접근했던 것이고, 사태가 커졌던 것이다.

이제 97년으로 접어들고, 명바기는 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게 7월에 징역 2년을 구형받고, 9월에 서울지법에서 700만원을 선고받으며 의원직 상실의 위기에 처한다. 한편, 97년 12월에는 대선이 있었고, 신한국당에서 딴나라로 화장을 고쳐봤으나 딴나라는 결국 고배를 들고 만다. 명바기에겐 이중삼중 시련의 계절일 것이다.

98년 2월이 되자 명바기는 6월에 있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 선언을 한다. 곤혹스런 딴나라의 반응을 보자. 명바기는 곧 한발 더 나가 의원직 사퇴를 선언한다. 의원직 상실 여부를 가리는 재판을 받는 와중에, 명바기는 전략적으로 의원직을 사퇴한 것이다. 꼼수정치 명바기의 전략도 참 눈부시긴 하다. 재판의 재미를 확 떨어뜨리면서, 재판 물타기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 선거법 위반은 의원직 상실 외에, 공직에 나갈 수 있는 피선거권도 제한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98년 3월 명바기는 현재 딴나라당 의원 주성영 검사에게 2년 6개월을 구형받고, 4월 서울고법에서 400만원 형을 선고받는다. 이대로 대법판결에서 확정되면, 피선거권마저 박탈될 지경. 그러나 철면피 명바기는 여기서 “법적 판결이라기보다는 정치적 판결로 보아 도저히 승복할 수 없다”면서 서울시장경선 출마를 접는다.

99년도에 대법원에서 현재의 대법원장인 당시 이용훈 대법관은 왜 항소심에서 벌금이 줄었냐고, 이걸 다시 고법으로 돌려보낸 모양이다. 끈떨어진 명바기 그 담부터 재판이 어케됐는지, 뉴스도 별로 엄따. 걍 돈 내고 만 것 같다. 명바기의 신화는 이렇게 서서히 막을 내리는가? 객관적으로 명바기의 정치인 생명은 위기에 처했다. 이렇게 다 죽었던 명바기는 어떻게 다시 살아난 것일까? 그런데 참 묘하게 그 이후엔 이를 설명할 수 있게 해주는 별 드라마틱한 반전이 없다.

드디어 2000년, 총선이 있다. 피선거권마저 박탈당한 명바기는 출마를 원했는듯 보이나, 사면이 된건대 안 나온건지, 사면이 안 되서 못 나온건지, 아무 기사가 없다. 암튼 그해 10월, 증권사 최고 경영자로 컴백한다.

2001년 11월 명바기는 무슨 사기로 고소를 당한 기사가 있다. 아무튼 별 기사 엄따.

2002년 1월이 되자, 명바기 '신화는 없다'에 이어 '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이 보인다'라는 책을 들고 나타나며, 다시 서울시장 후보 출마선언을 한다. 암튼 드디어 딴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가 된 명바기, 그 해 6월 청계천 권법으로 김민새를 격파하고 서울시장에 당선이 된다. 선거법 위반으로 피선거권도 잃었을 그가, 어떻게 다시 출마를 할 수 있었는지 잘 파악이 안 되지만, 암튼, 명바기는 그 후, 청계천 하나로 현재의 대선주자 1위까지 와 있다.

이상 명바기 종로에서 노무현 이기고 1등한 사연 찾다가, 알게 된 내용들이다. 대한민국이 조금만 정상적으로 된 나라였다면, 명바기의 정치인생은 이미 10년전인 96년에 끝났어야 할 것 같은데, 암튼 이렇게 돼 있다. 잘나가던 명바기 엎어지던 사건은 재미가 있는 드라마인데, 엎어지던 명바기 다시 일어나는 사건은 별 재미가 없다. 그냥 모두 다 까먹은 것일 뿐이다. 이러면 안된다. 정치인의 미래는 과거로 평가해야만 하는 것이다. 자수성가 샐러리맨의 신화까지였다면 참 매력있고 좋았을 건데, 그 이상 값을 쳐주긴 어렵지 않을까 싶다. 명바기의 정치철학...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명바기 머릿속엔 삽질과 권력의지 그 뿐이다.

보너스 : 이명박 - 김유찬 사건 일지

열린우리당에는 왜 싸움이 났는가

Sunday, December 3rd, 2006

요즘 열린우리당의 싸움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정치에 별 관심도 없고, 냉소적인 사람이라면 저러한 모습을 보며, 저 병신들이 또 왜 저러나 싶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문제를 좀 더 진지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좀더 장기적인 안목에서 문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단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금의 저 싸움이 사실 혀를 끌끌 차야 할 정도로 부정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과거로부터 이어져내려온 부정적인 정치문화가 성숙해 가는 과정의 진통으로 이해한다.

불과 몇년전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정치는 많은 심각한 질환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들어 보자면, 보스정치, 지역주의정치, 부정한 정치자금의 문제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보스정치라는 것은 과거 3김시대의 유물이라 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정당의 보스가 공천권을 독점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보스중심의 정치에다가 지역주의가 결합되면 굉장히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특정지역은 특정정당 보스의 나와바리이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되는 것이다. 이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인의 충성의 대상은 당연히 그 사회의 시민이어야 하지만, 이러한 조폭정치가 가동되면, 정치인의 충성의 대상이 당의 보스가 되어 버린다. 민주주주의 기둥이 시민들의 선거를 통한 정치인의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그선택의 주체가 나와바리를 차지한 보스가 되어버리고 만다. 이렇다면 선거는 그냥 악세사리일 뿐인, 무늬만 민주사회가 되는 것이다. 유권자 눈치안보는 저질정치인의 근원도 다 여기에 있다.

부정한 정치자금의 문제는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닌, 지난 대선에서도 크게 터진 문제였다. 자기는 더러운 대선자금을 딴나라당의 10분의 1만 받았다고 자랑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있기에, 지금은 이 문제의 그래도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고 볼 수 있다. 덕분에 선거법이 굉장히 엄하게 바뀌고, 이러한 문제가 혁명적으로 바뀌는 계기가 된 것이다. 과거 이 부정한 정치자금의 근원은 사실 돈많은 기업들일 수 밖에 없었고, 이것이 한국에 공정한 시장질서를 형성되는데 크게 방해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돈많이 갖다주면 권력은 기업의 뒤를 봐주고, 그런 기업은 또 그렇게 불공정한 경쟁으로 돈을 벌고, 그걸 또 권력에 갖다 바치고, 권력은 다시 그 돈으로 다시 유권자의 표를 매수하는 식으로, 심각한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것이다. 이런건 사실 시장경제가 아니라, 그냥 공산당 경제라고 보면 되는 것이다. 엄청 오래된 얘기인 것처럼 들리지만, 5년도 안 된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열린우리당은 왜 만들어졌는가? 바로 한국정치의 이들 고질적인 문제인, 보스정치, 지역주의정치, 부정한 정치자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창당선언문의 첫머리는 바로 이러한 문제들을 언급한다.

우리는 오늘 부패정치, 밀실정치, 지역분열로 얼룩진 구시대를 마감하고, 국민통합, 참여민주주의, 깨끗한 정치의 새로운 시대를 실현할 정당인 열린우리당의 창당을 엄숙히 선언한다.

그렇다면 열린우리당이 이 문제들을 해결할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이었는가? 공천권을 행사하는 보스가 사라진 자리, 지역주의가 사라진 자리, 부정한 정치자금의 공백을 무엇으로 메울 것인가 하는 것이다. 누가 공천을 할 것이며, 지역이 없으면 무엇으로 표를 끌어올 것이며, 부정하지 않은 돈을 어디서 구해올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이 바로 '추구하는 가치를 공유하는 돈내는 당원'이라는 것이다. 이 정도의 답이라면 직면한 문제에 대해 창조적으로 도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공천권은 당원이 행사하고, 지역은 이념이 대체하며, 돈은 당비로 조달하는 것이다. 장점은 이것뿐이 아니다. 나처럼 이렇게 인터넷 상에서 맞춤법도 마니 마추고, 알바들처럼 욕도 많지 않은 선동성 글을 써주는 사람도 있으니, 길거리에서 찌라시 뿌리는 비용도 절감하고, 고비용 저효율 정치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색깔이 분명한 당원들이 정당의 중추가 되어 정체성을 유지하니, 정책도 일관성이 있고, 철새들도 둥지를 틀 자리가 없어지니, 기간당원 제도가 잘만 실행되고 정착되면, 여러모로 과거보다 훨씬 나은 정치문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근본적인 정치문화가 좋아지므로, 질좋은 정치인이 더 많이 나올 수 밖에 없고, 질좋은 지도자들이 나라를 이끄니, 국운도 융성할 것이다.

버뜨, 그런데 현재 열린우리당에서 저 통합신당파라는 사람들을 나는 이렇게 평가한다. 그들을 이끌고 있는 정동영과 김근태는 그 동안 당원을 무시하고, 보스 흉내를 내면서 당을 자기 사람들로 장악하려 하였으며, 열린우리당의 실패의 근원을 당원이라 규정하고, 기간당원제도를 개정하려 하고 있다. 거기다가 지지율은 사정없이 떨어지고 정치자영업자들로서 밥줄이 끊어질 것 같으니, 그나마 예전에 있었던 전라도 표라도 잡아야겠고, 그래서 다시 예전의 지역당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여전히 그들을 딴나라사람들보다는 백배 더 아끼는 나지만, 지금은 그들을 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옳은 명분을 버리고, 어찌 젊은이의 마음을 움직이려 하는가?

열린우리당은 분명 그동안 창당의 기치로 내걸었던 당원 중심의 정당을 창조해내는 데 실패했다. 그렇다면 그동안 당을 이끌었던 사람들은 이제 자신들의 미숙한 리더십을 인정하고 물러나야 할 것이다. 당을 깨고 자시고 하는 것도 말이 되지를 않는다. 정당정치를 떠받들고 있는 책임정치라는 가치의 구현을 위해서도, 열린우리당은 끝까지 남아, 다가오는 대선에서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그 평가가 나오기도 전에 이미 자신들이 스스로 실패를 인정한다면, 대통합이네 어쩌네 쥐랄을 떨지 말고, 무능의 딱지를 이마에 붙이고 정계를 은퇴할 일이다. 나는 열린우리당이 창당선언문에 내놓은 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여전히 과거의 정치에서 진보한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을 한다. 방향이 잘 잡힌 계획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 더 열심히 실천할 일이다.

아무튼 이러한 근거들로 나는 신문에서는 친노파라고 표현되는 입장에서 쌈구경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