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anuary, 2004

연습문제에 대한 단상

Monday, January 26th, 2004

요즘 친구와 함께 공부하고 있는 수학책은 Jurgen Neukirch이라는 사람이 쓴 Algebraic Number Theory 이다. 정한 분량만큼 읽고 미리 정한 연습문제를 몇 개 골라 풀어보고 있다. 해당섹션의 내용을 읽고, 문제를 하나 풀려하면, 내용을 이해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문제가 술술 풀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앞에 읽었던 내용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면서 찾아봐야만 하는 성가신 작업없이 문제는 잘 풀리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예전에는 수학책을 읽을 때, 연습문제는 거의 풀어보지 않고 지나쳐왔었다. 문제를 직접 풀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명제가 참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아왔던 이유는, 문제를 푼다는 건 쓰여 있는 사실 내용을 읽는 것보다 몇 배 더 어렵고도 험한 작업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아마도 자신의 논리로 길을 터가는 것이, 남의 논리를 따라가는 것보다 피곤함의 강도가 훨씬 세기 때문일 것이다. 남의 얘기를 들을 땐 몰랐지만, 혼자 해 볼때는 여기저기서 예기치 못한 난점들이 많이 튀어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수학의 명제는 굉장히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성격을 갖는다. 구체적인 하나의 대상에 대한 진술보다는, 많은 대상들을 한꺼번에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한문장이 담고 있는 정보는 굉장히 크지만, 잘 와 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용어가 낯설고 추상적일수록 그런 경우가 많다. 수학책 읽는 속도가 소설책 읽는 속도와 같을 수 없는 이유는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추상적인 이해 이전에, 눈으로 볼 수 있고, 만져볼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쉬운 예로, '언어는 불완전하다'라는 말은 정보량이 많고, 적용범위가 넓긴 하지만 '다쓰고 난 연애편지는 언제나 허접하다'는 사실만큼 와 닿지 않는다. 거기다가 이런 것 하나를 생각하고 나면 이해의 폭이 확 넓어진다.
연습문제를 푸는 과정은, 결국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대상을 얻는 작업이다. 그러나 문제를 직접 풀을라치면, 책읽기는 배 이상으로 더뎌지는 법이다. 다른 것 볼 것도 많은데, 진도가 더뎌지는 것은 사람을 참 조급하게 하는 일이지만,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상기해 보면서, 마음을 다잡아 보자.
유체에 대한 베르누이의 법칙을 안다고, 바나나킥을 차지는 못한다.
멘델이 유전법칙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게 아니라 재수좋게 완두콩을 길렀기 때문이다.
가우스가 정규분포를 발견한 것은, 자는데 누가 알려준게 아니라, 그 자신이 실험하고 관측하는 과학자로서 통계자료를 뚫어지게 봤기 때문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