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August, 2000

바로잡힌 오류

Friday, August 25th, 2000

식당에서 홀로 밥을 먹고 있었다.
혼자 있는 밥을 먹는 시간엔 언제나 그렇듯이, 나의 머릿속은 여러가지 잡다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밥을 먹고 외출을 해 볼까, 이번엔 머리를 조금더 짧게 깍아볼까, 그 때 보다만 만화책이나 가서 마저 볼까, 아 띠발 할 거 없어, 심심해라 등등.
생각이 어제 풀었던 문제의 증명에 이르렀을 때,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풀었다는 기분에 도취되어, 거기에 있었던 오류를 당시에는 발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증명이 완전히 부서져 내린 것은 아니었으나, 틀린 점이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위협적이다. 너무나.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는 것과도 같은 기분.
먹던 밥을 그냥 꾸역꾸역 입속에 넣고 일어나 버렸다.

수학적 진리는 다른 학문의 진리와는 조금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진리의 진위가 시간의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
2000년 전에 발견된 정리 하나는, 오늘에 와서도 여전히 참이다.
이러한 영속성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정리라는 것이 엄밀한 증명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영원함 아래에는 엄밀함이 있다.

어제 한 생각들이 아무것도 아닌것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깝다는 생각.

책상 앞에 앉아 다시 펜을 들고, 끄적대 본다.
다행히도 오류는 바로잡혀졌고, 아이디어는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다시 한 번 만족감이 파도처럼 밀려들어 온다.

혼자 기뻐 날뛰다가, 애가 타는 기분을 느끼게도 하는 것.
누구처럼 혼자 낄낄대다가 갑자기 심각해 지는 모습을 상상할 때 - 내가 이상한 사람처럼 생각되기 직전.
내겐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역시나 젊을 때나 해 볼 수 있는 값진 경험일 뿐.

소중한 경험

Thursday, August 24th, 2000

무엇인가를 스스로 해냈다는 것만큼 강렬한 자극을 주는 것은 그리 흔치 않다.
내 손으로 증명을 했다는 짜릿함.
무엇인가를 배우려면 항상 좋은 책을 봐야한다는 사실은 지난 세월에서 내가 얻은 교훈이다.
책에 나온 해밀턴 회로에 대한 정리와 그 증명을 읽어보았다.
증명이라고 쓰여진 말들은 그럴듯하긴 했지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누구에게는 직관적으로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아둔한 이에게는 그저 멍하게 보이기만 하는 것이 있듯이.
책의 저자에게는 명확해서 그야말로 trivial한 내용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난 거기서 그냥 멈추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손가락을 깨물고, 펜을 물어보았다. 앉아 있던 몸을 벌떡 일으키고, 침대에 가서 벌렁 누워도 봤다.
그렇게 누워 있던 시간 속에, 한 줄기의 밝은 빛을 보았다.
- 가장 드물고, 신비스러우며, 소중한 경험-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되는 아이디어는 결코 필연적인 일련의 과정에서 얻어지지 않는 법이다.
그것이 바로 수학을 어렵게 만들어 버리는 이유이다.
또한 그 때문에,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해서 천재가 되지 못하며, 상상을 초월하는 천재가 탄생하기도 한다.
그림 하나와 단 세줄의 식으로 나는 문제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고 나선 내가 써내려간 그 증명을 스스로 감상한다.
음..귀류법이군..좋지..음.. 그럴듯해..음..우아하군.. 끄덕끄덕.

그야말로 산더미 같이 쌓여진 정리의 돌이 있다.
바라보고 있노라면, 와르르 무너져 내려 깔려 질식할 것만 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나를 질식시켜버릴 것 같은 산더미 주변에서 쭈뼛거리고 있는 이유는, 혹시나 아까 본 것과 같은 한 줄기의 빛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이고, 그 산더미 언저리에다가 나의 정리가 쓰여진 돌멩이 하나를 던져 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램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