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를 만나다 제20강 : 선이란 무엇인가?
2005년 02월 06일 22시37분

제20강 : 선이란 무엇인가?


이제 오늘은 벽암록을 지난 시간에 오늘은 벽암록을 강의한다고 했으니까 하면서 금강경 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음이 바뻐요. 불교의 방대한 사조에 있어서 모습을 제가 노심초사 엉청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벽암록 오면 저는 아주 편해요. 한학, 한문으로 되어 있거든요.


아 무튼 그러니까 제 스승의 (후쿠나가 미쯔지(1918-2001) 일본 큐우슈우 태생. 동경대학 철학과 졸업. 동대학 교수. 도올의 동경대학 재학시에는 동경대학 중국철학과 교수로 봉직. 도가철학의 세계적인 권위.) 강의할 때부터, 노자할 때부터 쭉 소개하신 분인데, 제 인생에 깊은 영향을 끼치신 분이죠.


이 양반의 가설이 뭐냐면, 중국의 선불교는 인도의 불교가 아니라 노장사상이 변한 거라는 것이죠. (선불교는 인도불교가 아니라 철저히 중국적 격의불교의 소산이며, 궁극적으로 노장사상의 변용이다. - 후쿠나가 미쯔지-) 노장사상의 틀 속에서 벽이 되어서 나온 거지, 이건 인도에는 없는 거다. 라고 이 양반은 선불교를 보세요.


그 런데 노장사상 깊게 보면 일리가 있습니다. 한학의 세계. 한자가 가지고 있었던 간결성. 인도, 잔소리가 많아요. 중국의 한문의 세계는 간결한 시적인 본질적으로 산문적이지 않아요. 인도는 산문적, 지루하게. (인도인 - 산문적, 수필적 중국인 - 운문적, 시적) 중국 사람들 간결한, 시적인 어떠한 시적영감, 세계. 길게 따져서 뭐하느냐. 시적통찰을 향해 가는 거고, 인간 본성적 불성 고유, 극단화되어서 나타난 것은 본질적으로 중국적인 거다. (달마대사 - 중국에 선을 최초로 전한 인도인. 527년 광동성 광주에 도착. 중국 선의 제 1조.) 인도에서는 제 27조 달마대사를 여러분들, 달마 그 사람으로부터 선이 왔다지만, 그건 역사적으로 별 소용이 없는 거다. 중국 사람에게 선적인 것을 전해주었다는 건데.


벽 암론 책은 종문제일서라고 불러요. 선종 최고의 책이라는 건데. (설두중현(980-1052) 북송초기의 선승. 벽암록의 원본인 설두송고의 저자. 절강성 설두산 자성사에 주석. 운문종 사람.)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공적인 안건이라는 뜻이거든. (공안 - 공부의 안독. 공문서의 뜻. 선종의 헌법과도 같은 스님의 이야기라는 뜻.) 중국은 모든 게 관료화 돼있거든. 이 표현. 사실 별로 마음에 안 드는 표현이에요. 공안은 우리들에게 깨달음의 계기를 전달해주는 걸출한 스님들의 삶의 이야기이다. 공안이라는 게 딴 게 아니라, 과거 선사들이 삶 속에서 깨우침을 전달해주는 이야기이다.


설 두중현이라는 분이 최고의 공안을 100개 모은 거야. (본칙 - 백암록 공안 100개의 본문을 일컫는 말. 이것은 물론 설두 자신의 저작이 아니라 이전의 기록에서 모은 것이다.) 공안은 반드시, 거로. 이제 이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거 : 다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 이야기는 백개의 본측은 설두중현의 설두스님의 작품은 아니지. 그렇잖아요. 과거에 있던 것들을 거기서 모은 거니까, 그 분 꺼는 아니여. 여기에 대고 송이라는 것을 지었단 말이야. (송 : 설두스님이 본칙에 대한 자신을 느낌을 시로 읊은 것) 읊었어요. 깨달은 것을 뒤에 송으로.


송 과 본측은 설두 스님 건데, 뒤에 원오라는 분이 또 주석을 달아요. 수시라고. (원오극근(1063-1135) 북송말의 스님. 설두스님의 설두송고에 수시, 착어, 평창을 붙여 벽암록을 완성했다. 임제종 사람.) 그 본측에 들어가는 전체적인 인트로덕션이지. 원오라는 분이 썻어요. 12세기 초에 활약한 이분이 쓴 건데,


제 일에, 제 1칙 : 달마확연무성 원오스님이 쓰신 시부터 읽어보겠습니다. 이게 뭐냐면, 우리식 발음으로 읽으면 안되요. 당나라, 송나라 때 백화, 구어체로 되어 있다고. 백화(중국구어체)문학의 기원은 당대 승려들의 어록이나 당대백화소설에서 찾는다. 공안도 백화문학의 대표적인 것이다. 아주 시조라고. 일상적 깨달음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자기들 구어체로 적었다고. -- 중국말을 읽어야 맛이 나는 문장이에요.


수 시에 말하기를 저 산을 건너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본다. 뛰어가서 연기나는 것을 보고 뛰어가서 불이 났구나. 말이 안 되는 거지. 멀리서 보구도 알아야지. 선의 세계. 그럼 저기 불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지. 모르고 그냥 뛰어가서 확인해보면, 영원히 선의 경지에 못 온다는 거야. 이게 저 담 넘어 뿔만 봐도 소가 지나간다는 것을 알아야지, 선이라는 게 이해되는 거다. 그러면 하나를 들으면 3개를 알아들어야지. 아까 조주스님이 아침 먹었냐? 하면 우주적인 세계를 깨달아야지. 해석해달라면 안되는 거에요. 재미있는 동네에요. 눈으로 굉장히 세밀한 눈금. 눈으로 보면, 세밀한 눈금까지 알아볼 정도는 되야 선이 통한다는 것. 이게 중국인들이 말하는 선의 세계. 이 정도는 누더기 옷을 걸치고 있는 승의 다반사다. 그것을 대단한 진리다. 개똥같은 이야기하지 마라. 여기 저기 불이 흐르는데, 동쪽으로 솟았다 거꾸로 가게 했다가 순하고, 종으로 행으로 가고 이런 것들을 자유롭게 물길을 틀 수 있는 수준이 되야 한다. 말을 하면 논리적으로 하면 날 샌 놈들이다. 그냥, 자유자제로 주었다 빼었다. 굴리는 놈들이래야 비로소 선의 경지가 나온다. 이러한 상황에 그대가 도달했을 때, 과연 어떤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였는가? 보게나. 이제 설두스님의 갈등을 보게. 이게 원래 칡넝쿨이 뒤엉켰다고. 어디가 어디인지 알지 못하게 된 상태. 선이라는 건 갈등의 세계로 들어가서 그 갈등을 풀어내야 하는 거야. 설두가 공안이라고 써 놨는데 그게 갈등이라는 거야. 말장난이라는 거야. 본 강의의 내용은 도올 지음 -혜능과 세익스피어-에 실려있습니다. 얼마나 멋있어요. 이게 한학의 세계라는 건 셰익스피어도 읽으면 좋아해요. 그런데 한학의 깊이라는 건 헤아릴 수 없어요.


본 측으로 가는 것입니다. 설두스님 쓴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나오죠? 이걸 풀어봅시다. 처음에, 양무제라는 사람이 아주 미친 사람이에요. 불법에 미친 정도가 양무제가 남경 저쪽에 건강에다가 불사를 지은 것만 500개에요. (건강 - 양무제 시대의 남경의 이름) 남녀 출가시켜 스님 만든 것만 10만명. 황제 스스로 가사를 걸치고 강의했다. 또 자기를 절간에 팔어. 그래서 신하들 보고, 나를 빨리 사오라고. 그걸 3번이나 했어. 양무제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 법흥왕도 너무 좋아해서 양무제 이야기를 들었지. 자기는 진흥왕에게 왕을 물려주고, 출가한다고. 해동고승전에 이렇게 이야기했어. 우리 법흥왕은 양무제처럼 절에 들어가는 사람보다는 낫다. 그렇게 써있음. 그렇게 양무제가 유명한 사람.


이 사람이 저 멀리서 인도에서 이끄는 벽안의 달마대사가 온 거라. 그래서 딱 만난거야. 역사적인 선종의 최초의 계기입니다. 양무제는 달마대사를 만났는데, 잘 몰랐겠지. 인도에서 대단한 사람이라는 거 말고. 뭔가 질문을 고민을 했을 꺼야. 그러다 가장 불교의 으뜸가는 진리가 무엇입니까? 대사를 골탕도 먹이고, 이렇게 물으면 대답을 잘 하겠느냐? 그리고 내가 이렇게 불사 많이 했는데, 하면서 내가 이런 질문할 만 하다. 했을 건데, 달마가 텅 비었는데, 뭔 성스런 진리가 있겠느냐? 보세요. 텅 비었다는게 뭐에요? 공사상을 이야기해요. 텅 비었는데, 성스런 제일의 진리가, 그런 게 어디 있겠느냐? 성스럽다고 하는 것은 여기없소. 그러니까 양무제가 핏대 좀 났겠지.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짐을 마주하고 있는 그대가 누구뇨? 달마가 "몰라" 그러고서 사라졌어. 양무제가 뭔말인지를 알아듣지 못했다는 말. 달마는 양자강 이남에서 만났거든. 북쪽의 황하는 반드시 하라고 해요. 북쪽의 강이면 양자강을 말하는 거에요. 위나라로 갔단 말이야. 전설적으로 말하면 소림사를 갔다고 해. 가버렸어.


이 야기를 들어서 지공이란 사람이, 양나라 최고의 승이야. (지공 - 양나라 국사. 보지를 지칭?) 물어보니까, 지공이 깜짝 놀라면서, 폐하. 아직도 누구인지 모르십니까? 그러니까 양무제가 "몰라" 이런 게 공안이여. 앞에 달마한테 옥좌에 올라서, 짐을 마주하고 있는 그대는 누구냐? 하니까, 몰라 하고 사라졌단 말이야. 당신 그 분을 모르십니까? 그러니 여기 몰라. 나옵니다. 여기서 힌트를 얻어야 합니다. 같은 몰라 지만, 앞의 몰라와 뒤의 몰라를 깨닫는데서 선. 이분이 관음대사. 관세음보살의 현현이다. 부처님의 마음의 도장. 핵심적인 것을 우리에게 전해준 사람이올시다. 왕이 후회막급이죠. 그렇게 위대한 사람을 내가 놓쳤다니. 그래가지고 대군대를 보내서 모셔오라. 했단 말이야. 지공이 말하기를, 폐하. 사절을 보내서, 그따위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온 국민을 보내도 그 분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 게 선이여. 벽암록의 제 1강. 이게 공안이야. 여기서 생기는 의문을 가지고 풀어가는 거야. 이 이상 강의를 하면 선으로 못 들어가. 마지막에 설두스님이 괴승을 보자 이거야. 괴승이 끝내, 나는 이런 걸 읽으면 눈물이 나올 정도로 멋있습니다. 성스런 진리는 텅 비었다. 고 말했다. 누가 그걸 분별해서 과녁을 맞출 수 있느냐? 그렇잖아요. 비었는데, 과녁이 없잖아요. 하면서 말하기를 짐을 대하고 있는 그대가 누구냐? 불식이라 이야기했단 말이야. 그래가지고, 그래도 달마는 강을 건넜지. 쑥밭이 되었군. 성스런 진리는 텅 비었다. 누가 과연 과녁을 맞출 것. 나라 사람 몽땅 보내도 그는 돌아오지 않지. 천년만년을 그리워하네. 부질없다는 의미여. 말들이 기이하게 되어있어요. 이 녀석들아 무엇을 그리워하느냐. 시원한 바람이 땅을 스치는데, 어디 극한이 있다드냐? 갔잖아요. 그리고 달마대사 사라졌잖아요. 바람이 대지를 스치고 지나가는 붙잡아 보는 거랑 같은 이야기야. 거기 무슨 장소 방향이 있고 극이 있다는 거야. 갑자기 설두스님이 송을 쓰신 분, 좌우를 돌아보시며 하시는 말씀이, 여기 달마가 있느냐? 여기 달마라는 놈이 있느냐? 자기 혼자 시 쓰다가, 지금 대답할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요. 좌우를 보면서, 지금 달마대사가 있느냐. 그러면서 아무도 없는데, 설두스님이 하는 말이 자기 스스로 있습니다. 대답을 하는 거에요. 달마가 여기 있느냐? 하니까, 있습니다. 자기 혼자 독백. 그러면 그 놈 불러와 이 늙은 꼬락내 나는 발이나 씻게 하라. 이해가요? 지금 설두스님이 공안에 대해서 처음에 지금 뭐냐면, 나를 대하고 있는 그대는 누구뇨? 몰라라고 했잖아요. 그 몰라는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무분별의 몰라죠. 무분별의 나도 없다는 이야기에요. 텅 빈 우주 속에 나는 없다. 그러므로 달마는 몰라라는 화두를 양무제에게 던졌다. 달마가 너에게 특별한 진리를 전하는 것, 웃기는 이야기라는 거야. 몰라 라는 거야. 양무제에게 하니까, 또 똑같은 말을 받아다가 몰라. 이건 진짜 모르는 거지. 평범한 모르는 거지. 선종의 앞의 몰라, 양무제의 몰라 라는 것이 같은 건지 다른 건지 이것도 모르는 거다라는 거야. 설두스님, 달마를 다시 데려온다고, 그러다가 갑자기 달마야 있냐? 하니까, 갑자기 예 여기 있습니다. 달마에 대한 생각을 버리라는 거에요. 있어봐야, 내 발꼬락만 씻을 정도라는 거에요. 몰라로 끝냅시다.


선 의 세계라는 것은 이렇게 끝도 없어요. 잘못하면 말장난이 되요. 이건 반드시 언어의 미암을 깨우치는 경우에 한하여지, 이걸 넘어서면 말장난이에요. 선은 언어를 통하여 언어의 미망을 깨친다. 우리나라 선종은 또 불립문자를 말하며 지독한 문자적으로 가요. 우리 가나선의 의미 똑똑히 알아야 되요. 우리 삶에서 갖는 의문. 생활하면서 생기는 의문들이 진짜 공안이다. 직접 깨달아 나가는 그것이 진짜 공안이라는 거에요. (정형화된 공안은 있을 수 없다. 반복될 수 있는 화두는 없다. 삶의 의문,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공안이요 화두다. -도올-) 거기까지만 하세요.


자 그다음에는 금강경이라는 위대한 왜냐면, 저번에도 이야기했지만, 금강경은 혜능선사가 뭐냐면, 오조호인대사를 찾아가게 되는 계기가 뭐에요? 남방 광주지역에서 나뭇꾼을 했었는데, 팔다가 여관에 사는 사람이 방에 불을 떼기 위해 혜능의 나뭇짐을 가져다 사왔다고 했잖아요. 거기에 나뭇짐을 팔고 돌아가는 길에 누군가가 경을 읽는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듣고, 그 소리가 금강경 읽는 소리. 금강경은 선종의 조계종이라고 하는데, 혜능이 활약했던 곳의 산이름이 조계산이라고 하는 거거든. 사실 선이라고 하는 것은, 조의 별절이거든. (교외별전 - 선은 부처님의 가르침 이외로 따로 전해내려온 것이다.) 사실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기 보다는 교학불교라는 거지. 교학불교 밖으로 전해내려 오는 것이 선이다. 이심전심이라는 거야. (이심전심 - 마음에서 마음을 전해 내려온 법) 불립문자의 법을 표방했지만, 선종도 엉청난 공안의 문자를 만들어냈고, 우리나라 조계종의 소의경전이 금강경이다. 우리나라 불교는 금강경 불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402 년경 정도. 그걸 구역이라고 해요. (구역 - 쿠마라지바의 역경사업) 그 뒤로 현장법사 있잖아요. 현장법사가 인도 가서 공부해서 와서, 자기가 다시 번역을 했어. 쿠마라지바는 인도사람이 서역 사람의 입장에서 번역을 한 것이지만, 현장은 이전의 서역 사람들의 번역이 마음에 안 든다. 자기가 직접 범어를 공부해와서 번역한 거란 말이에요. 현장의 불교가 중국화된 불교 시작된 거라고 봐야죠. 그래서 이 사람의 번역을 신역이라고 해요. (신역 - 현의 역경사업)


쿠 마라지바, 현장 번역이 있는데, 오늘 현장의 번역이 중국입장에서 했으니 벌써 260년 후에 나온 것이니 더 좋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훨씬 쿠마라지바가 아름다운 번역이에요. 현장은 훨씬 인도식 스타일이에요. 인도에 충실하게 번역한 거에요. (현장의 번역 : 직역 스타일 쿠마라지바의 번역 : 의역 스타일) 직역이고 음사도 너무 심하게 하고, 그래서 중국인의 감정의 흐름을 봐도, 현장의 번역이 쿠마라지바의 번역에 비해 떨어진다는 거에요. 그러니 쿠마라지바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요.


구역본 중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판본이 우리나라 팔만대장경에 보관되 있는 그거에요. 현존하는 금강경의 최고본이 바로 해인사 장경각의 대장경판이다. 아무도 한국사람이 안보고 있다는 거에요.


그 리고 금강경이 유명하게 된 것은 사실은 세조에요. 세조가 그렇게 많은 사람 죽였잖아요. 꿈꾸면 죽은 사육신 나타나고 시달렸단 말이에요. 세조는 조카 단종을 죽였을 뿐 아니라, 천하의 명필이며 문장가였던 친동생 안평대군을 죽였다. 그러니까 마음을 바로잡기 위해, 금강경을 잡고 살았다고. 죄책감 때문에 금강경에 매달렸다고. 그래서 세조가 직접 언해를 했다고. 아시겠어요? (금강경언해 - 세조가 직접 토를 달아 1464년에 출간한 책. 김수온, 한계희, 노사신이 번역에 관여했다.) 그 금강경언해가 있다니까요.


그 금강경언해본의 금강경을 바보같이 해인사판을 안 썼단 말이에요. 해인사 바보같이 종이라 안찍고, 목판으로 만들어서, 명나라 명판본을 썻거든. 이게 상당히 후진 판본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나라 여태껏 금강경이 원래 쿠마라지, 원본이 없어요.


그 래서 내가 해인사판 그것을 갖다가 최초로 번역한 게 내꺼여. (도올 김용옥의 금강경강해 - 법정스님 서문 세계 최고의 판본인 해인사판, 금강경을 도올이 아름다운 우리말로 번역하고 주석한 책. 1999년 초판) 아주 본질이 다른 책이에요. 이게. 아니 역사적으로 이건 정확하게 봐야되요. (판본학 - 고전원본의 판본을 연구하는 학문) 어느 판본을 기초로 했냐에 따라서 경전이 달라져요. 금강경 시중에서 사본다, 웃기는 이야기에요. 판본학의 기초가 없는 고전번역은 사상누각이다. 오리지날은 원래 당시 몇 년에 발견된 것을, 무엇을 기준으로 이야기하느냐? 학문에서 반드시 따져야 하는건데. 그냥 펼쳐서 금강경이라고 하는 거야. 세조 잘못된 판본으로 썻기에, 모두 잘못된 거야. 세조의 언해본 이후 그 권위 때문에 한국의 금강경은 예외 없이 모두 후대의 판본을 썼다. 도올의 금강경강해는 세계최초의 쿠마라지바 구역본의 번역이다. 그러니까 전 세계적으로 유일한 판본이야. 유일한 쿠마라지바의 번역본이라는 것을 알아야해요.


이 것을 간단하게 해석을 시작하겠습니다. 여기 사위국이라고 하는 것은, `당대의 코살라왕국을 말해요. 코살라왕국의 수도가 슈라바스티 - 코살라왕국의 수도. 싯달타의 석가족은 바로 이 코살라왕국에 속한 작은 종족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현장이 음역을 한 것을 보면, 당나라 때, 현장이 이것을 뭘로 번역했냐면, 신라벌신저구라고 번역했다고. 슈라바스띠에. 그대로 나오죠. 여기서 재미난건, 이거를 빼면, 신라벌이죠. 이게 우리말 속의 신라에요. 신라라는 우리말이 원래 부처님이 가장 활약했던 사위성이라느 코살라국의 부처님 왕도 법의 도시였던 슈라바스티를 한국에 구현했다고 신라에요. 원래 설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볼 적에 너무 명백하단 말이에요. 서라벌. (슈라바스티 = 서라벌) 여기서 서라벌이라는 데서, 이거를 빨리하다보면, 서라벌을 서벌되거든. 이것이 서벌 서벌 -셔월 -서울 된 거에요. 서울이라는 이름도, 서울이라는 이름도, 금강경의 무대, 부처님 최대활약지인 슈라바스티의 정신을 구현하는 도시라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이것은 매우 확고한 성운학적 사실이다. 이게 우리가 무슨 기독교든 뭐든 간에 모든 역사가 불교와 관련되서 진행되온 역사에요. 우리나라 문화재 80% 불교관련이에요. 서울로 슈라바스티에요.


부 처님 처음 서울에 계실 때 말씀하셨다. 우리도 이것을 모델로 해서, 신라, 서울이 된 거에요. 금강경 하나를 이해할래도, 금강경은 슈라바스티(서울)에 세워진 기원정사(기수급고독원)에서 이루어진 설법이다. 다음 시간에는 기원정사가 세워진 설화로부터 강의가 진행될 것이다. 종합해서 대승경전을 만든 거에요. 대승경전이 복잡한 그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완성된 작품이기에, 금강경 깊게 읽을수록 맛이 대단합니다. 고려의 대장경의 판본을 처음으로 제가 번역했거든요. 본인의 입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다 강의할 수는 없습니다. 원전의 중요한 부분을, 조계종 경전의 금강경을 같이 읽으시면서, 깨닳음을 얻기 바라고, 더 많은 시청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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